- 2016년 설에도 이어진 제1217차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
“사람이 잊히는 게 제일 무서워” 설 파일럿 예능 프로그램 MBC <미래일기>에 출연한 안정환이 했던 말이다. 선수 시절 부와 명예를 누린 그도 80세 체험을 하고 나서 느낀 점은 ‘잊히는 게 무섭다’는 것이었다.
하물며 평범한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떨까. 오랜만에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친구가 나를 기억하지 못하기만 해도 서글픈 것이 우리네 삶이다. 그만큼 사람에게 ‘기억’이란 개념은 중요하다.
‘기억’이란 개념이 우리만큼, 아니 우리보다 훨씬 더 중요한 분들이 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다. 사건이 벌어졌을 때부터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우리가 잊을 수 없고 잊어서는 안 되는 분들이다. 일어났으면 안 될 일들이었지만, 현재 불행 중 다행인지 모르게도 그 분들을 기억하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24년이나 이어진 세계 최장기 시위,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시위다.
작년 말 사회문제에 뒤늦게 관심을 갖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오늘 처음으로 수요시위를 찾았다. 특별히 오늘은 설 연휴에도 이어지는 수요시위였다. 날씨는 한파 때보다 나았지만, 여전히 살을 에는 바람이 이따금씩 불어왔다. 2016년 2월 10일 수요일 오후 12시, 딱 맞춰 도착한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화로는 시위 준비로 분주했다. 할머니 두 분은 소녀상 옆 중심이 되는 자리에 꼿꼿이 앉아계셨다. 눈에 띄는 색의 한복을 입은 수원청소년평화나비의 청소년 두 명의 사회로 시위는 시작됐다. 중고생 아이들이 가벼운 옷을 걸치고 두 분의 할머니 앞에서 율동을 하고, 순서가 이어졌다. 뒷사람을 배려하기 위해 자리에 앉아달라는 시위 참여자들의 목소리가 뒤섞였다. 윤미향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상임대표의 경과보고가 이어질 때 즈음엔 300명 남짓한 사람들이 시위장소 주변에 모여 있었다.
윤 대표는 막힘없이 발언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희망을 이야기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과 달리 결국은 ‘반드시 해방을’ 꿈이 아닌 현실로 이루자는 이야기로 이어졌다. 더불어 할머니들의 연대 의지와 성금들이 모인 나비 기금을 통해 후원한 첫 후원자, 콩고의 ‘마시카’라는 분이 말라리아로 어제 숨을 거뒀다는 비보까지 전해지자 분위기는 숙연해졌다. 이어진 <정의와 기억재단> 모금에서 나도 마음을 담아 작은 금액을 드렸다.
이어지는 자유발언들, 그리고 집회 마지막에 이어진 참여자들의 세배까지. 중고생 아이들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할머니를 잊지 않고 기억하겠다는 의지가 다양한 입말과 행동으로 전해졌다. 할머니들은 이따금씩 웃으셨고, 박수를 쳐주기도 하셨다. 또 세배를 하러 나온 어린 아이들에게까지 쥐어줄 세뱃돈도 준비하셨다. 참 고맙고 감사한 일이었다.
내가 할머니를 기억하기 위해 했던 일은 단 하나, 그 분들을 위한 연대의 자리에 마음을 더한 것뿐이었다. 조금 더 보탠다면 현장의 분위기를 기록으로 남기고 전달하는 것이다. 이 부족한 글로 한 명이라도 더 연대의 자리에 나올 수 있길 바란다. 나의 참여도 너무 뒤늦었다. 그래서 이제부터라도 한 걸음씩 행동하고자 한다.
세상은 지금 ‘기억’해야 할 것이 너무 많다고, 아니 ‘기억’하기에도 버거운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말한다. 당장 입에 풀칠할 것이 문제고, 크게는 전쟁 위협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기억’으로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존재들이다. 그리고 그 ‘기억’ 때문에 힘든 삶을 버티며 살아가는 분들도 있다. 그 분들의 삶을 조금 더 편하게 만들어드리는 방법은 기억을 나누고 새로운 좋은 기억을 덧입혀드리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수요시위가 이어지고 있고, 2월에는 14년 만에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귀향>이 개봉한다. 우리의 기억과 삶 또한 더 의미 있게 만들고 싶다면, 평소와는 조금 다른 행동과 참여를 해보는 건 어떨까.
음력 새해가 지나도 여전히 날은 춥다. 날씨보다 더 추운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 할머니들과 우리들의 요구를 전달하며 글을 마치고자 한다.
- 일본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게 공식 사죄하고 법적 배상하라
- 한국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국가의 자존심을 걸고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라
- 한일 정부는 12.28 협상을 무효화하고 정의로운 해결을 위해 재협상하라
by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