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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썰전>, 익숙한 듯 생경한 날것의 즐거움

지난 월요일 기사가 된 이후 한 동안 이슈가 된 리뉴얼된 <썰전> 1부 149회가 14일이었던 목요일 10시 50분 방송되었다. 진보와 보수, 보수와 진보의 대표적 논객으로 손꼽히는 유시민과 전원책의 섭외 소식에 방송 전부터 기대를 드러낸 사람들도 많았다. 보면서 느꼈던 것은, 뭔가 익숙한 듯 익숙하지 않은 이들 둘의 조합이 보여줄 '가능성'의 폭이 굉장히 넓을 수 있겠다는 점이었다. 그 시작은 기대보다는 조금은 아쉬었음에도 말이다. 

1. 긍정적 요소


일단 긍정적인 측면은 이들의 출연으로도 <썰전>이 가진 예능으로써의 정체성이 무너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들에 출연에 대해 가장 우려 했던 "예능감" 측면에서 볼 때, 유시민과 전원책은 그러한 대중들의 걱정을 불식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풍부한 지식과 데이터베이스로 무장한 이들은 시사토론이나 종편, 라디오 등에서 보여줬었던 기존의 날카로움이나 공격적 성향만을 강조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좀 더 유하고 부드러운 모습을 보였다. 


항상 대중들의 기억 속에서 호통치고 말을 끊는 등 다소 공격적으로 보였던 전원책이나 날카로운 논리와 이성으로 문제를 분석하며 조근조근 상대방한테 파고들어가는 모습을 주로 보였던 유시민은, <썰전>에서는 그러한 자신들의 강점을 유지하면서도 예능적인 요소들을 살려냈다. 김구라에게 "좌파"를 연발하는 등 모두를 까면서도 도에 지나치지 않으며 상대방을 띄웠다 공격하는 것을 반복하는 전원책의 익살스런 화법이나, 화제가 됐던 열연을 통해 조폭 비유를 보여준 유시민의 연기는, 첫 방송임에도 불구 이들이 다소 딱딱하게만 굳을 것이라는 사람들의 예상을 깨는 데 한몫했다.


또한 유시민과 전원책은, 기존 출연진들의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던 측면에서 벗어나 보다 객관적이고 날카로운 비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강점을 가진다. 현실정치와는 빗겨나 비평가적 삶을 살고 있기에, 이들의 비판 대상은 성역이 없다. 이해관계가 없기에, 제약도 없는 것이다. 실제로 두 번째 주제였던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대한 비판 과정에서 "단두대" 발언으로 전원책이 보여줬던 '모두까기 인형'적 모습은 향후 방송이 진행될수록 이들의 비평이 좀 더 광범위하게 전개될 여지를 보여줬다.


보수를 지향하지만 정치 사회에서 있어서는 이상주의적 정치모델을 추구하는 전원책과 진보의 대표논객이지만 현실주의적 정치모형을 제시하는 유시민의 대조 또한 흥미롭다. 이는 보수가 좀 더 현실적이고, 진보가 다소 이상적이라는 기존 대중들의 정치 인식과 대비되는 부분이다. 쏟아지는 말들 가운데서도 곱씹어볼만한 촌철살인을 던지는 전원책과, 유한 듯 사근사근하게 말하면서도 핵심과 본질적 의미를 전하는 유시민의 말들 또한 보는 이들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겨줄 가능성 또한 한껏 드러냈다. 출연 소식 이후 한 회만에 0.8%이 오른 시청률은, 이들의 말의 향연이 충분히 대중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셈이다. 


2. 아쉬운 요소 


다만 첫 방송으로써 <썰전>이 가지는 아쉬움은 없을 수 없다. 첫 번째로 느꼈던 아쉬움은 아직 정제되지 않은 방송으로써의 한계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기존의 방송을 진행해왔던 제작진 입장에서, <썰전>은 기존의 포맷이 정해져있는 정제된 프로그램이었다. 1,2,3개의 소주제를 가지고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려주며 다소 가벼운 예능적 요소를 가미해왔던 프로그램은, 다소 무겁고 진지한 얘기들을 쏟아내는 두 패널의 말들을 따라가는데 벅차한다는 느낌을 줬다. 깔끔한 정리와 편집 대신 자막이나 배경 설명 없이 이들의 말을 그저 보여주기만 하는 장면이 여럿이었으며, 대화의 맥락을 보여주는 대신 MC인 김구라의 당황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장면의 반복은 지나치게 많다는 느낌을 줬다. 뭔가 통제되지 않는 인물들이었던 것은 분명하지만, 통제할 수 있는 변수들조차 조정하는 대신 방임적으로 프로그램을 전개한다는 느낌을 주는 요소들이었다. 


물론 자막과 사진 설명 등을 통해서 프로그램이 의도했지만 전하지 못했던 요소들을 제시해 제작 의도는 알렸지만, 뭔가 제작진 스스로 당황했다는 점이 드러났다는 점은 아쉬웠다. 의도된 것일 수도 있지만, 제작진 스스로 우리가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드러낸 것이 편집력의 결핍으로 비춰졌기 때문이다. 차라리 기존 방송 구성 대신 한 개의 주제와 인트로 정도만을 가지고 미팅 형식으로 방송을 제작 편집했거나 세 개의 구성요소 전부를 제시하는 대신 최대 두 개 정도의 요소들만 방송으로 제작하는 등 첫 회에 한해 구성 요소에 변화를 줘봤다면, 보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쫓기는 듯한 느낌은 줄었을 것이다. 


또한 MC의 역할이 기존 방송분들에 비해 지나치게 축소됨으로써 대화 자체가 산만하고 방만해지는 경향 또한 곳곳에서 드러났다. 맥락에서 벗어난 주제나 대화들이 오가는 와중에 MC인 김구라는 평소의 이미지와는 달리 흐름을 쫓아가지 못한 채 당황해하는 모습들을 자주 노출했다. 


전원책의 경우 평소의 화법 스타일 상 대화의 흐름이 없어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 얘기 와중에 국내 석유 물가 얘기로까지 이야기를 전개해갔지만, 이에 대해 MC가 통제를 전혀 하지 못한 채 끌려 다닌 것이 그 대표적인 예다. 실제로도 이러한 전원책의 화법에 "꼰대" 같아 불편했다는 반응들을 보였던 사람들이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앞으로 프로그램의 진행에 있어 MC의 진행력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해질 것이다. 이번에 보여준 김구라의 모습은, 향후 몇 달 간 프로그램의 정착 과정까지 이 산만함을 자제하기 어려울지 모른다는 우려를 안겨줬다. 이는 초기에 프로그램에 집중됐던 주목도가 떨어지는 과정에서 고정 시청자층을 다시 형성하는 과도기에 있어 부정적인 요소다. 기존 MC가 가지는 한계를 프로그램 측면에서 보강하고 보충을 해줘 이를 극복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출연진의 교체로 화제의 전문성은 깊어졌지만, 상대적으로 대중성에서 벗어날 여지가 드러났다는 점이다. 북한 수소탄 논의에서 드러나듯, 유시민과 전원책의 기본 전개 논리는 기존의 대중들이 기시감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익숙한 논거들 위에서 전개되는 경향을 보였다. 전문성이 있지만, 그만큼 참신성은 상대적으로 적어보일 가능성도 있다. 이 영역의 부족함을 뒷받침해줘야 하는 것이 바로 MC와 제작진 역량에 의한 구성의 관건이 될 것이다. 보다 대중성을 가미하기 위해서는, 출연진에게 모든 것을 의지할 것이 아니라 신선함, 참신성 등을 보완해주기 위한 프로그램 전반에 대한 세팅이 추가적으로 가미돼야만 한다. 토론, 대화 등에 능숙한 이들에게 더 놀기 좋은 판을 깔아주는 일이 향후 프로그램 성공의 관건이 될 가능성이 크다.


3. 총평 & 기대하는 부분 


면면이 화려했고 대화의 질과 양 또한 풍부했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이 나는 <썰전> 리뉴얼 1화였다. 말을 잘하는 대표 논객 둘의 시너지는 생각보다 많은 예능적 요소들을 자아냈지만, MC-두 논객으로 이어지는 3명의 합이 잘 이뤄지지 않은 채 비교적 한쪽으로 편중된 듯한 이파전 양상으로 흐름 없이 기계적 구성으로만 흘러간 것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제작진 스스로도 MC를 통해 밝혔듯, 이는 첫 회 <썰전>이 보여줬던 시행착오의 반복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일 수도 있지만, 148개의 방송을 제작하면서 쌓인 노하우의 발현이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하지만 이번 방송은 그 과정이 어찌됐든 재미있었던 것만큼 분명하다. <썰전> 제작진 스스로 자신들이 가진 날 것 그대로의 재료가 얼마나 신선하고 좋은 것인지를 보여준 프로모션적 성격이 강한 회차이기도 했다. 많은 방송 매체에 출연해왔음에도 이번에 유시민과 전원책이 보여준 조합은 이번 방송을 통해 그들이 보여줄 수 있는 더 많은 가능성들을 충분히 보여줬다. 매우 익숙하지만, 동시에 생경하고 신선하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재료들을 가지고 요리사가 얼마나 맛있는 요리로 승화시키느냐에 달려있다. 유시민과 전원책, 유시민과 김구라, 김구라와 전원책, 그리고 3명과 프로그램 밖의 제작진 사이의 '약속겨루기'가 잘 이뤄질 때 프로그램의 기획의도를 드러내는 날은 한층 더 날카로워 질 수 있다. 임팩트는 충분했다. 이제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즐거움을 위해서 합(合)을 맞추는 과정이 더욱 중요해지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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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