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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심'의 은화 30냥

category 이슈/미디어 2016.01.12 00:46

기부가 거부당한다. 벌써 4차례다. 심지어 기부를 받은 후에도 기관이 기부자를 확인한 후 이를 돌려주기까지 한다. 자동차 트렁크 속 청 테이프로 감긴 다리 사진을 올려 성범죄를 미화하는 듯한 화보를 실었던 맥심 코리아가 겪고 있는 일이다.






2015년 9월의 맥심 코리아는 발간 후 곧바로 (안 좋은 의미에서) 화제가 됐다. "The real bad guy"란 표제를 붙인 잡지의 앞면에는 누가 봐도 납치 감금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컨셉 화보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여성 단체들의 항의에 본사까지 규탄을 표해 결국 맥심 코리아가 잡지 전체를 회수하고 9월호 수익금 전액을 기부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후에야 사태는 누그러졌다. 그 후 메갈리아와 같은 여성 커뮤니티들은 꾸준히 맥심 코리아의 약속 이행 여부를 감시했다. 그러나 약속 이행 여부에 관련된 우려는, 전혀 엉뚱한 방향에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2016년 1월 현재, 맥심 코리아는 약속 이행의 의지가 있음에도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진퇴양난에 빠져있다. 16년 1월 11일 현재까지 맥심 코리아의 기부에 거부 또는 기부금을 반환한 단체는 총 4곳이다. 15년 12월 국제 앰네스티에 기부하려는 첫 번째 시도 이후, 유니세프와 국제여성가족교류재단, 사회복지공동모금회까지 모두 맥심 코리아의 기부임을 확인하자 기부금을 거부했다. 이들 재단은 모두 공익성을 목표로 행동하는 재단으로 기부금이 그들의 사업의 주 근간이 되는 것이 자명한 곳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그럼에도 맥심 코리아의 기부금은 철저하게 거부했다. 이유는 단순하다. 여성의 인권을 건드린 이들의 돈은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맥심 코리아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주로 군 장병 등이 보는 이미지로 그려지는 맥심 코리아의 화보는 세미누드 위주다. 적나라한 노출 대신 컨셉과 이미지로 남자들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이 그들의 모토였고, 화보 또한 그렇게 구성됐다. 많은 옐로우 저널리즘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모두가 공감할 수 없는 B급 정서로 그들의 작업을 진행했고, 이는 암암리의 마니아 층의 지지로 유지됐다. 교사, 간호사 등 수많은 페티쉬들을 강조하며 수익을 창출했던 잡지로써는 "나쁜 남자"의 이미지 또한 선택 가능한 영역의 문제 정도로만 여겼을 공산이 크다. 그것이 사람들한테 어떤 이미지로 받아들여질지, 특히 그들의 시선 '아래'에 있던 여성들이 어떻게 자신들을 바라볼지는 고려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런 맥심 코리아의 시선은 그들의 구성원 중의 여성 편집자 스스로 피-범죄 모델로 참여하는 데서도 알 수 있듯 '그들 안에서의 보편성'으로 인정받으며 문제의 화보를 진행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이와 같은 맥심 코리아의 행보를 욕했던 많은 대중들(특히 남성들)의 시선이 사실은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데 있다. 이번과 같이 일이 해결된 경우는 매우 드문 편이다. 페미니즘의 전개 이래로 페미니스트들은 (대다수 한국 남성들의 시시선에서) 언제나 "쌍X"이었고 괜히 오버하고 예민하게 받아들인다며 피곤하게 생각하는 생각들이 대부분이었다. 여성 비하 개그에 발끈하는 여자들은 유머 코드를 이해하지 못하는 편집증 환자며, 보편적 평등을 주장하는 이들을 그저 예민한 여자들의 히스테릭 정도로 받아들이는 경우들도 다빈사다. 진보적 성향과 보수적 성향을 나누는 것이 불필요할 정도로, 남성들 대다수는 이와 같은 일에 공감하지 못한다. 최근 방영 중인 SBS 스페셜 '엄마의 전쟁'이 보여주는 시각은, 아직까지 우리가 그러한 프레임 안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상징하는 일일지도 모른다. 문제는 이와 같은 남성 중심적 프레임의 구조에 편입되는 여성들도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즘이 너무 과격하다며 오히려 기존의 남성주도적 사회 구조에 무의식적으로 동조하고 따르는 여자들 또한 많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말이 가능할 정도로, 여성의 인권은 그렇게 존중받지 못했다. 맥심 코리아의 '나쁜 남자' 화보는 그러한 남성 중심적 분위기 아래서 이에 동화된 여자 편집자 스스로도 '즐거이' 촬영에 임하게 되는, 우리 사회 구조가 낳은 기형적 산물인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중요하게 생각해봐야 할 것은 이와 같은 무의식적 폭력의 화보가 다시 등장하지 않는 일일 것이다. 같은 여성조차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과격한 운동이 널리 퍼질 일은 전무하지만, 인식 변화의 필요성조차 남자들이 감지하지 못한다면 제 2의 맥심 화보의 등장은 명약관화다. 지금의 맥심 코리아가 겪는 '고난'이 웃기면서도 슬픈 이유는 이러한 그들의 고난이 그들에게 얼마나 깨달음을 줄 수 있을지를 장담할 수 없다는 데 있다. 


배신자 유다는 예수를 판 은화 30전을 성전에 던지고 목을 매달아 죽는다. 은전을 피 묻은 돈으로 여긴 제사장들은 이를 성전에 둘 수 없다며 땅을 사고는 '피밭'이란 무덤을 만든다. 맥심 코리아의 은전 30냥은 그를 받아 줄 제사장조차 없이 한국사회를 떠돌지만, 그 은전으로 땅을 사 손에 피를 안 묻힌다한들 유다의 이름이 사라지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역사는 증명한다. 맥심 코리아의 은전이 올바르게 쓰이는 날이 온들 그들의 '죄'는 덮어지면 안 된다. 그저 씁쓸한 해프닝으로 지켜보기만 할 일은 아니다. 우리 또한 같은 죄를 뒤집어 쓴 제사장으로 이름 남지 않기 위해선 말이다. 


by 9


* 사진 출처 : 맥심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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