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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1일에 방영된 단막극 <아비>는 제목을 붙인 이유가 궁금해지는 단막극이다. 아비보다는 어미의 왜곡된 사랑으로 인해 광기를 품은 아이의 모습에 더 눈이 간다. 어쩌면 아비의 부재라는 사실을 더 강조하기 위해 붙였는지도 모르겠다. 아니면 살인마의 누명을 쓰기까지 자식을 위하던 또 다른 아비를 부각하려 했는지도.

누군가의 글에서 이런 주장을 읽었다. 아비가 없다는 사실에 아들이 나약해지는 것은 아니다. “아비가 없으니…”라고 편견을 갖고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문제였다는 것이다. 나도 이 말에 동의한다. 우리는 사실보다 의견에 더 휘둘리는 세상에 살고 있다. 사실이 존재해도 그 사실이 아니라고 내 눈을 가리는 남들의 의견에 마음이 뒤집히는 것이 우리다.

 

<아비>는 입시 대리모를 할 만큼 뛰어난 자녀 교육력을 지닌 엄마에게서 자란 아들의 광기로 갈등이 전개된다. 이야기는 한 살인 사건에서 시작한다. 엄마는 아들을 명문고에 보냈고, 그 과정에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일이 그녀의 발목을 잡아 신변의 위협을 받고 만다. 결국, 엄마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다.  

드라마가 전진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아들은 피범벅이 된 엄마를 보고, 상황이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챈다. 그리고 그의 눈빛은 180도 변한다. 마치 게임에 진입한 캐릭터처럼 그는 전장에 뛰어들 듯 이성적으로 변한다. 당황한 엄마를 두고 그는 모든 상황을 차분하게 정리한다. 엄마를 보호하겠다는 미명 아래 말이다.

 

상황은 급속도로 전개된다. 아들은 증거를 회수하기 위해 온갖 애를 쓴다. 하지만 딱 하나, 엄마의 구두를 찾지 못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엄마는 살인 용의자로 지목되지 않는다. 대신 엉뚱한 동급생의 아버지가 피의자가 된다. 동급생인 여자아이는 명문고에 다니고 있지만 형편이 어려워 학생들 사이에서 ‘은따(은근한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그녀는 아예 ‘전따(전교의 왕따)’가 되고 만다. 아들은 여기서 상황을 이겨낼 키를 발견한다. 그녀의 아비는 그녀만 알 수 있는 곳에 구두를 숨겨두었을 것이다. 그녀와 가까워진 후 구두를 몰래 빼내야 한다. 아들은 새로운 퀘스트에 뛰어들었다.  

동급생 여자 아이는 아들의 뜬금없는 호의에 당황스러웠지만 이내 마음을 내준다. 아들은 호기롭게 그녀의 집까지 입성한다. 그리고 구두의 위치도 알아낸다. 마지막 증거 탈취 계획을 실행에 옮기는 순간, 그는 어쩔 수 없는 계기로 여자 아이와도 엄마와도 마주친다. 당황할 수밖에 없는 순간, 그런데 여기서 아들은 무서운 반응을 보인다.

 

여자 아이의 아비는 딸이 무사히 공부할 수 있게끔 도와달라는 전제로 살인자의 누명을 썼다. 살인자 엄마와 목격자 아비와의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것이다. 아들은 그 사실을 알아챈다. 그리고 구두를 탈취하던 순간에 들킨 와중에 그 사실을 기억해낸다. 그리고 딸에게 뻔뻔히 자신의 주장을 늘어놓고 네게 사건 해결의 키가 달려있다며 선택은 알아서 하라고 한다. 무슨 미친 짓이냐며 화를 내는 엄마에게는 눈을 반짝이며 다 해결될 것이라는 식의 말을 한다. 이 때, 아들의 표정은 확실히 ‘괴물’의 그것이었다.  

두 사람은 이후에 드라마의 핵심이 될 만한 이야기를 나눈다. 이 모든 사건이 일어나게 된 계기인 엄마의 입시 부정사건. 엄마는 아들이 보게 될 명문고 입시 면접 문항을 먼저 입수한다. 물론 부정행위다. 이걸 어떻게 구했냐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목표만 올려다 봐, 지나가서 보면 울고불고 했던 일이 사소해 보일 거야”라는 말을 건넨다. 일단 과정은 생각하지 말고 목표를 이루는 데 집중하라는 그 말. 아이는 엄마의 살인 사건을 덮기 위해 저지른 온갖 미친 짓을 하고 나서 엄마에게 다시 이 말을 건넨다. “목표만 올려다 봐, 지나가서 보면 울고불고 했던 일이 사소해 보일 거야”라고. 결국 그는 괴물이 되고 말았다.

 

엄마는 끝까지 살인 사건의 용의자가 되지 않은 대신, 아들은 방학 때 해외 연수의 길에 올랐다. 함께 가면 좋았을 거라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할 일이 많다며 안녕을 고한다. 그리고 택시에 올라탄 그녀는, 경찰서로 가달라고 말한다. 쓸쓸하고 씁쓸한 결말이었다.

 

이렇게 드라마는 목표만 추구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성장을 극단적인 표현으로 그려냈다. 요즘 세상의 흐름을 보면 그렇게 극단적이지도 않은 것 같다. 슬프게도 심심치 않게 들려오는 소식들이 서로를 아무렇지 않게 죽이는 현실이니까. 결국 드라마는 비극을 통해 문제 제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광기는 타고 난다기보다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것도 한 순간에, 라고.

 

- by 건

 

사진 출처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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