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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고구마와 사이다 사이

겨울하면 군고구마다. 아버지가 퇴근길에 군고구마를 사오시면 그걸 까먹으면서 드라마를 보는 재미가 있었다. 대입시험을 마친 고등학생들이 돈을 벌어보겠다며 뛰어든 일이 군고구마 장수 일이기도 했다. 그만큼 고구마는 우리에게 추억이 가득한 존재다.

요즘 드라마에 고구마라는 수식어를 붙이곤 한다. 아무리 맛있는 고구마라도 몇 개씩 계속 먹다보면 목이 턱턱 막히기 마련이다. 물이 그렇게 생각날 수가 없다. 드라마에서도 전개를 위해 일부러 주인공을 엇갈리게 하고, 끊임없이 심장을 졸이는 갈등이 일어나는 상황을 시청자들이 ‘고구마 먹는다’라고 표현을 했다.

 

<그녀는 예뻤다>의 11회가 딱 고구마 같은 장면들이 뒤덮은 날이었다. 성준(박서준 분)의 사랑 고백에도, 친구를 생각하며 망설이는 바보 같은 혜진(황정음 분)의 모습에 아마 시청자들은 심장을 쳤을 것이다. 그래서 어제 방영될 12회에서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는 기분을 누리길 원했다. (사이다를 마신다는 표현은 고구마와 반대로 시청자가 꿈에 그리던 장면을 시원하게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하지만 12회에서도 여전히 제작진은 고구마 같은 장면을 주는 경향이 없지 않았다. ‘모스트 코리아’를 살리기 위해 밤낮없이 일하며 무리하던 성준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혜진은 적극적이지 못했다. 결국 돌아온 친구 하리(고준희 분)에게 구두를 선물 받으며 진심이 담긴 마음을 듣고 나서야 그녀는 성준에게 가기로 결심했다. 게다가 혜진에게 차인 후 회사를 떠나려했던 신혁(최시원 분)도 성준의 요청에 언제 그랬냐는 듯 돌아왔다. 혜진은 무기력한 여자 주인공이 되어버렸다. 여전히 우리는 고구마를 들이키고 있었다.

 

시청자들을 설레게 하면서 동시에 답답하게 만드는 장면들이 있었다. 그 대사들을 잠깐 들춰보자.

 

“10초만 가만히 있어봐. 10초만 봐도 힘이 난다.”
지성준, 일명 과로한 남자가 일을 하다 찾아간 혜진에게 내달라고 한 시간이다. 10초만 봐도 힘이 난다는 그의 고백은 여성 시청자들을 설레게 했고, 눈만 반짝이며 성준을 바라보던 혜진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했다.

“가, 짹슨. 고마워. 망설여줘서. 얼른 안 가면 마음을 바꿀 수 있는 경향이 없지 않은데?”
김신혁. 여자의 마음도 챙기면서 동시에 상황을 어색하지 않게 만드는 능력이 있는 멋진 남자다. 그는 또다시 자신을 두고 성준에게 갈까 말까 망설이는 혜진에게 평소 하던 동전 던지기를 통해 보낸다. 자신의 마음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걸 알면서도 혜진의 마음을 존중한다. 이 때도 혜진은, ‘기자님...’ 이라는 말밖에 남기지 못한다.

 

결국 12회는 혜진의 주변 인물들이 모두 의기투합해서 온 힘을 다해 혜진과 성준을 이어주려는 노력을 한 회차였다. ‘모스트 코리아’를 살리자는 구호 아래 온갖 노력을 다한 성준은 결국 과로로 쓰러지고, 마음을 정한 혜진은 다행히도 병원에서 성준을 만난다. 그리고 그토록 수많은 고구마를 시원하게 내려 보낼 사이다 한 잔을 제작진은 시청자들에게 선사한다.

13회에서는 본격적으로 둘의 로맨스가 펼쳐질 것을 예고했다. 이제 4회가 남았다. 13회에서는 둘의 알콩달콩한 모습들이 계속 펼쳐질 것이다. 하지만 결말은 알 수 없다. 13회가 끝날 즈음에 시청자들은 분명히 그동안 먹은 사이다가 다 잊힐 만큼 커다란 고구마 한 입을 먹게 될 것이다. <그녀는 예뻤다>의 작가는 <거침없이 하이킥>을 쓴 작가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데는 일가견이 있는 분이다. 하이킥에서 그녀가 내놓았던 결말을 기억하는가. 일명 ‘카페베네’로 불리던 장면 말이다. <그녀는 예뻤다>는 시트콤의 문법과는 분명 다를 것이지만 마지막까지 시청자의 마음을 졸이게 하는 건 여전할 것이다. 앞으로 4회동안 고구마와 사이다 사이에서 밀고 당길 <그녀는 예뻤다>의 활약을 기대해본다.

 

- by 건

 

사진 출처 : M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