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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송곳>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당신들이 공감할 이야기가

<송곳>은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단행본이 출간된 웹툰이다.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 원주민>과 같은 시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담아낸 작품을 만든 최규석 작가의 웹툰 데뷔작이기도 하다. 노동조합, 사용자, 정의감이 담겨 있는 노동 문제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다룬 웹툰에 이미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었다.

드디어, <송곳>이 드라마로 세상에 나왔다. 인턴, 비정규직의 애환을 담아 세상을 뒤흔들었던 작년 이맘때의 tvN 드라마, <미생>처럼. 드라마는 철저히 웹툰의 서사를 그대로 따른다. 첫 장면에서부터 인물들의 대사, 화면 구성, 장면의 순서까지 말이다. 보통 웹툰을 영상으로 만들 경우 새로운 문법에 맞게 고쳐야 하는 경우가 생기는데 <송곳>은 그렇지 않다. 웹툰의 서사가 워낙 드라마의 문법에도 맞게 잘 설계된 덕분일 것이다.

지난 주말 방송된 <송곳>의 1, 2부는 전혀 가볍지 않은 이야기들의 향연이었다. 꼿꼿하다 못해 부러질 것 같은 주인공 이수인(지현우 분)과 노동 문제가 있는 곳이면 나타나는 사회적 약자들의 수호자 구고신(안내상 분)이 만나기 전까지 각자의 이야기를 교차되는 방식이었다.

 

대형마트 푸르미의 과장 이수인은 그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인물이었다. 학창시절 동급생의 폭력에 정면으로 맞섰고, 선생님의 촌지 요구에 맞서다 자신의 몸과 가족을 힘들게 했다. 정직함을 꿈꾸고 들어간 군대에서도 부정 투표 권유에 괴로워하고, 비리를 눈감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뛰쳐나오고 만다. 그리고 들어간 대형마트 과장 자리에서 그는 다시 한 번 부당한 정리해고 요구에 송곳 같은 자신을 일으켜 세우고 만다.

 

피가 튀기고, 잔혹한 행위들이 오가지 않았지만 드라마는 충분히 잔인했다. 아니 보기 불편했다. 우리네 삶과 참 많이도 닮아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부당한 일이 일상이 되어 버린 세상. 그 세상을 너무 정직하게 표현해서였을까. 그래서 마음이 참 불편했다. 오가는 상황들에서 배경음악이 거의 깔리지 않는 것도 현실과 닮아 있었다. 우리의 삶은 대부분 배경음악이 없는 숨막히는 상황들이지 않은가.

여백이 많은 서사여서 반가웠다. 흐르는 장면들을 보며 계속 생각했다. 송곳 같은 인생이 과연 세상을 바꿀 수 있을지, 송곳들이 모여 달려오는 차를 막는 기둥이 될 수 있을지, 아니면 결국 혼자 버티다 차에 치여 부서지고 말 것인지.

 

드라마에서 두 번 나왔던 대사가 있다. 송곳 같은 인간에 대한 본질적 이야기가 담긴 대사였다. 이 대사는 두 번, 이수인과 구고신의 목소리를 통해 전달됐다. 드라마의 전체 흐름을 관통하는 말이다.

 

“분명 하나쯤은 뚫고 나온다. 다음 한 발이 절벽일지도 모른다는 공포 속에서도, 제 스스로도 자신을 어쩌지 못해서 껍데기 밖으로 기어이 한 걸음 내딛고 마는, 그런 송곳 같은 인간이.”

 

확실히 이수인은 송곳 같은 인간이다. 구고신도 이미 송곳의 길을 택한 사람이다. 이 둘의 활약이 기대가 되면서 다시 한 번 내 삶을 돌아봤다. 과연 나는 송곳이 될 수 있는가. 송곳이길 거부한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세상을 향해 뚫고 나오는 용기가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가. 

자신이 없다. 하지만 조금씩 힘을 내보려 한다. 드라마를 보다보니 작년 우리의 마음에 깊게 닿았던 <미생>이 떠올랐다. 비정규직이었지만 ‘송곳’처럼 정직한 인물이었던 장그래와 그를 진심으로 봐주고 함께 연대했던 또 다른 ‘송곳’인 김동식 대리와 오상식 차장 말이다. 우리의 삶 곳곳에는 의외로 송곳 같은 인물들이 있다. 그리고 그 인물들이 세상을 바꾼다. 올해는 <송곳>의 이수인 과장과 구고신 소장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숨은 송곳들을 일깨우는 기폭제가 되길 진심으로 바란다.

 

“서는 곳이 바뀌면, 풍경도 달라진다.” 우리의 서는 곳이, 바라보는 풍경이 부디 정의와 올바름을 향하길.

 

- by 건

 

사진 출처 :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