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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추석을 함께할 4권의 책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이다. 그러나 올해는 여러 이유로 시골로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가족들에겐 참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나 홀로 추석이다. 특별히 무언가를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 추석은 그저 그런 연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노는 것도 이젠 지겹다. 어차피 홀로 보내는 추석, 뭐라도 남겨야겠다. 그러려면 무언가 읽어야 한다.

지금 추천하려는 4권의 책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 선정됐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아닌 나를 위한 책들이다. 책장에 오랜 시간 ‘새 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것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도전의식이 불현 듯 발현됐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언제까지 저들을 낯설면서 낯설지 않은 존재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므로. 굳이 4권을 선택한 이유는 추석연휴가 임시공휴일 포함해 4일이기 때문이다. 별 뜻은 없다.

1. 뉴스의 시대

 

바야흐로 뉴스의 시대다. 이 책은 내가 본격적으로 기자를 꿈꾸며 구입한 책이다. 매일 신문을 읽고 뉴스를 보면서도 정작 뉴스 자체에 대한 고찰을 깊게 해본 적이 없다. 그래서 종종 수박 겉핥기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뭔가 제대로 정리하지 못한다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부끄럽게도 이 책은 서문만 읽고 본문을 펼쳐보지도 않았다.

 

이 책은 언론인이 아닌 철학자가 쓴 책이라 더 관심이 간다. 좀 더 거리를 둔 채 뉴스 자체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을 유지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여타의 언론 관련 서적보다 더 솔직할 것이다. 책을 다 읽을 때쯤이면 윤곽이 드러날 것이다. 뉴스의 알맹이가 무엇인지, 또 왜 사람들은 그토록 뉴스에 집착하는지.

 

2. 미움받을 용기

 

아들러 심리학을 설명하는 자기계발서적이라지만 내가 이 책을 구입한 데 마음을 굳힌 건 온전히 제목 때문이었다. 미움 받을 수 있는 용기, 참 멋진 말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한 아들러의 가르침이라는 부제도 매력적이다.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원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청년과 철학자의 대화 형식을 빌렸다는 점에서 책도 그리 딱딱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물론 아직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터라 비판을 가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부디 용기만을 강조하는 책은 아니었으면 한다. 내 생각엔 미움을 온전히 받아들이는 용기도 필요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게 미워할 수 있는 용기다. 또 정확히 반대급부에서 미움 받는 걸 도저히 용납하지 못하는 그런 두려움도 일부 필요한 게 사실이다(선천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을 실패자로 분류하는 뉘앙스의 책은 아니길 바란다. 책 표지에 환경이나 능력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그저 용기가 부족할 뿐이라 말하는데, 한국사회에서 그 말이 얼마나 유효할 수 있을지 역시 조금은 난센스다.

 

3. 코끼리는 생각하지마

 

가장 저명한 언어학자 중 하나인 조지 레이코프 교수의 저서다. 사실 나는 이 책의 반은 읽었다고 자부할 수 있다. 10주년 전면 개정판이 나오기 전 버전의 책을 읽었기 때문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사실 책의 주요 골자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 것 같다. 그런데도 굳이 전면 개정판을 다시금 읽으려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처음 책을 접했을 때 미국의 보수와 진보는 한국의 그것과 엄연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었다. 물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당시엔 그 차이를 알면서도 비슷하겠지 뭐, 하는 식의 태도로 대충 넘어갔다. 그 결과 이 책은 한국 정치를 이해하는 데 별반 도움이 되지 않았다. 책을 마치 처음 읽는 듯 다시 읽어봐야 할 이유다. 결국 정치의 핵심은 언어 프레임에 있다는 명제를 한국정치 사례에서도 적극적으로 적응시켜 봐야겠다.

 

4. 체호프 희곡 전집

 

추석연휴의 마지막을 장식할 책은 안톤 체호프의 희곡 전집이다. 700페이지를 넘는 압도적인 분량이다. 솔직히 다 읽을 수나 있을지 조금 걱정이다. 앞서 살펴본 3가지 서적과는 다른 영역(문학)인 만큼 도전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다. 게다가 체호프는 내게 항상 이름만 낯익고 늘 거리감이 있는 작가였다. 그가 희곡에 앞서 소설을 집필했다는 사실도 최근에야 알았다.

 

그런데도 내가 그의 소설이 아닌 희곡을 선택한 데에는 새로움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사실 나름 국문학도라 시나 소설은 가끔이라도 들여다봤는데(물론 그것도 미미한 편이지만) 희곡은 늘 관심사 밖이었다. 희곡은 연극이다. 요새 연극을 보는 이가 적어졌다지만 그 갈래에서 파생된 영화, 드라마, 뮤지컬 등은 여전히 인기가 좋다. 그러니까 나는 극이라는 장르의 본류를 찾기 위해 체호프 전집을 읽어보려 한다.

 

거창한 듯 보이지만 사실 그간 핑계 대며 읽지 못한 4권의 책을 읽는 데 불과하다. 추석 독서는 지식을 채우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는 지나간 게으름에 대한 반성이 될 것이다. 가능하다면 4권의 책 모두 조만간 리뷰로 담아내보려 한다.

 

by 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