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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두 마리 토끼 잡기의 어려움 <두번째 스무살>

화를 내야 할 때에 적절히 화를 내지 못하는 것만큼 화가 나는 상황도 없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나를 포함한 우리들 대부분은 화를 내지 못한다. 자식이 있다는 이유로, 좋은 기억으로 남고 싶다는 이유로 등등의 다양한 이유로 우리는 스스로의 나약함에 대해 변명한다. tvN의 금토드라마 <두번째 스무살>에 등장하는 하노라(최지우 분)의 처지 역시 마찬가지다.

잘나가는 심리학 교수 김우철(최원영 분)의 부인으로서 노라는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우철은 몇 년 전 만난 김이진(박효주 분)과 내연 관계로 발전했고, 그로 말미암아 노라의 결혼생활은 곧 끝이 날 판국이다. 우철의 외도는 생각지도 못했던 노라는 우철의 바람대로 이혼공증을 이행했고 순순히 이혼을 받아들이려 한다. 여기까지는 흔한 레퍼토리다.

 

하지만 노라는 그 이름(헨릭 입센의 <인형의 집> 주인공 이름은 노라)답게 참 순종적인 캐릭터였다. 그녀가 고등학생 때 덜컥 임신해 김우철의 아내로 20년을 살아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참 답답할 정도로 ‘착한’ 인물이다. 그래서 노라는 처음 남편이 이혼을 요구했을 때도 그 책임을 자신에게 전가했다. 심지어 남편의 외도 장면을 목격하면서도 노라는 남편에게 따지지 않는다. 이쯤 되면 헷갈리기 시작한다. 노라는 착한 걸까? 아니면 미련한 걸까?

아마도 드라마이기 때문에 노라 같은 인물이 설 자리가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이혼을 앞둔 노라에게 차현석(이상윤)이라는 백마 탄 왕자님은 타이밍 좋게 등장한다. 거기에 노라가 죽을병에 걸린 줄 오해한 현석은 까칠하면서도 다정다감한 태도로 노라를 대한다. 현석의 첫사랑이 노라니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같은 남자로서) 생각하면서도 너무 40대의 판타지를 자극하는 설정이 아닌가 싶기도 한 지점이다.

 

사실 이 드라마의 핵심 스토리라인은 38세인 노라가 대학에 입학하면서 겪는 다양한 에피소드들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6화까지만 봐서는 그 전략이 그리 신통치 않은 느낌이다. 요즘 20대 대학생들의 생활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만우절 교복데이, 수강신청 조기마감, 도서관 예약 서비스 등을 그려낸 건 그럴 듯하지만 사실 그게 전부다. 20대 대학생의 삶은 늦깎이 대학생의 시선에만 머물기 때문에 신기함 그 이상의 의미를 도출해내지 못한다. 마치 20대 새내기가 40대 직장인의 삶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뒤 ‘참 힘들겠어’ 하며 어렴풋이 느끼듯 말이다.

 

<두번째 스무살>의 한계와 가능성은 동시에 존재한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시청자의 주 타깃층은 20대(스무살)와 40대(두번째)다. 최지우가 대학생이 되어 캠퍼스 라이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또 이상윤이라는 멋진 배우가 백마 탄 왕자의 모습으로 현현한다는 점에서 40대 시청자는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20대 시청자까지 유인할 만한 전략은 크게 보이지 않는다.

노라의 아들인 김민수(김민재 분)와 그의 여자친구 오혜미(손나은)가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연애는 어딘지 모르게 너무 극단적이다. 학자인 아버지의 영향이라 해도 민수의 학업 열기는 과하다 못해 부자연스럽고(물론 새내기 때부터 그렇게 공부하는 사람도 있기는 하겠지만), ‘취집’이 꿈이라는 혜미의 천연덕스러움은 과연 스무살 나이에 저렇게 말하는 친구가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불러일으킨다. 한마디로 둘은 (분명 20대임에 틀림없지만) 20대 느낌이 별로 들지 않는다. 마치 20대 시청자를 위해 준비한 코너의 일부처럼 드라마의 주요 서사와도 유리된 느낌이다.

 

거기에는 마땅한 이유가 있다. 먼저 아들 민수의 어머니 노라에 대한 태도다.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무심하고 무신경하다. 그렇기 때문에 기시감이 든다. 우철이 노라에 대해 갖는 태도와 기본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에 민수와 노라 사이에는 모자 관계 이상의 극적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민수가 아버지 우철에게 대드는 모양새도 아니다. 주요 인물과 각을 세우지 않으니 민수와 혜미의 이야기는 자연 비주류로 격하된다.

 

그렇다고 해도 이 드라마엔 아직 희망이 있다. 민수와 혜미 외에도 노라가 다니는 우천대엔 20대가 차고 넘친다. 현석의 조교인 신상예(최윤소)도 있고, 노라의 댄스동아리 선배인 복학생 나순남(노영학 분)도 있다. 이들은 각각 20대 후반과 중반의 나이로 설정돼 있어 새내기의 삶과는 또 다른 20대의 삶을 보여줄 여지가 있다. 게다가 주인공 노라와 더 부딪힐 일도 많다. 상예는 현석을 좋아하고 있고, 순남은 수업이나 동아리에서 항상 노라를 마주친다. 노라와 이 두 인물의 갈등을 적절히 녹아낸다면 <두번째 스무살>의 ‘두번째’뿐만 아니라 ‘스무살’도 잡아낼 수 있을 것이다.

한 가지 더. 노라의 위기는 현석의 도움이 아닌 노라 스스로의 힘으로 극복되길 기원한다. 백마 탄 왕자님의 등장으로 갈등이 해소되는 설정보다는 “자기 자신에 대한 의무”를 강조하는 <인형의 집> 노라의 대사가 현실의 시청자들에게도 더 드라마틱할 테니 말이다.

 

사진 출처: tvN

 

by 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