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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의 재발견

[서평] 지승호 더 인터뷰

 

15년 동안 전문 인터뷰어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지승호가 서문에 밝히듯 그건 ‘운명’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장인정신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에겐 인터뷰를 계속해서 해야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전문 인터뷰어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을 것이다.

<지승호 더 인터뷰>는 지승호가 만난 7인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집이다. 강준만, 강풀, 김난도 박순찬, 오지은, 이상호, 한희정과의 인터뷰가 차례로 수록돼 있다. 다른 인터뷰들과의 다른 점은 단연 압도적인 분량이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는 방증이다. 또 지승호가 7인에게 세세한 질문들을 던졌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서평에 7인의 이야기를 모두 다 담을 수는 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이의 답변들을 뽑아보고 그 답변이 나오는 데 있어서 지승호의 어떤 역량이 두드러졌는지 짚어보려 한다.

 

언제까지 조중동 탓만?

 

“진보 언론하고 보수 언론 사이에서 박근혜 정부의 문제를 누가 잘 지적하느냐. 당파적인 편파성은 있을망정 진보 언론이 훨씬 더 잘 지적하죠. 마찬가지로 진보라든가 새정치민주연합의 문제라든지, 이걸 누가 잘 지적하느냐는 거예요, 보수 언론이 더 잘 지적하죠.”

 

‘태초의 논객’ 강준만 교수의 지적이다. 사실 이전에 <싸가지 없는 진보>를 읽었던 터라 그가 주창하는 담론들은 대략적으로나마 알고 있었지만 인터뷰 형식으로 드러난 그의 지적들은 한층 더 울림이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는 지승호의 자연스러운 질문들이 있었다.

 

지승호의 질문들은 공격적이지 않다. 솔직히 좀 의아하기도 했다. 새로운 이야기를 끌어내고, 자연스러운 대답들을 듣기 위해선 어느 정도 도발적인 질문들이 나와야 한다는 선입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굳이 그런 방식을 취하지 않는다. 공세를 취하지 않더라도 들을 이야기는 다 들을 수 있다는 걸 몸소 보여준다.

 

“예전에 ‘전 제 이름을 소중히 여깁니다. 먼 훗날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선진적인 언론을 갖게 된다면 그때 가서 가장 큰 공로자로 기억되기를 바랍니다’라고 하셨어요. 「인물과 사상」을 만든 것도 한국 언론이 좀 더 선진화되고 개혁되기를 바라기 때문이었을 텐데요. 그럼에도 언론 환경은 더 악화된 상황입니다.”

 

공세적 질문을 하지 않는 대신 그는 철저하게 인터뷰이에 대해 분석한다. 상대가 쓴 책이나 논문은 말할 것도 없고 그가 SNS에 올린 글까지 꼼꼼하게 확인한다. 김규항 선생이 일전에 언급했듯이 그는 인터뷰어의 기본을 지킨다. 대략 약력을 훑는 것을 넘어 인터뷰이의 인생을 들여다보고 질문을 준비한다.

 

그 덕분에 인터뷰이는 긴장을 풀고 담소를 나누듯 이야기한다, 마치 대화하듯이. 그래서인지 <싸가지 없는 진보>를 열독했음에도 지승호와 강준만의 대화를 더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었다. 인터뷰라는 형식 자체가 갖는 장점일지도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생생하게 대화하듯 진행된 지승호의 인터뷰였기에 그런 효과가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니, 그렇게 보수 언론이 힘이 세서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우리 쪽 언론을 키워주면 될 텐데, 그걸 안 하잖아요. 저쪽에 대고 욕해서 효과가 있다면 모르겠다는 거예요. 없다는 것이 충분히 입증됐잖아요. 똑같은 논리 구조거든요. 아니, 지지율이 경쟁 정당의 반토막이면 ‘아, 이쪽에 문제가 있구나’ 해서 여기서부터 문제의 원인을 찾고 들어가야 할 텐데, 그럴 시간과 힘이 있으면 저쪽을 공격해라? 그건 계속해온 모델 아닙니까?”

 

‘아니’라는 말이 2번 쓰일 정도로 강준만의 답답함이 드러나는 답변이다. 그리고 이 명쾌한 답변이 나오는 데에는 지승호의 “<한겨레>나 <경향신문>이 버티고 있는 부분은 있지만, 조중동에 비해서 힘이 작은 데다가 종편까지 생겼습니다”라는 질문 아닌 지적이 크게 작용했다고 생각한다.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다

 

“팽목항에 나타난 인간 말살의 현장에서 아무도 잘못되어 가고 있는 구조를 막아서지 못하는 현실이 제일 마음 아팠어요. 거기에는 단 한 명의 전문가도 없고, 단 한명의 책임자도 없고, 단 한명의 어른인 기자도 없었던 거예요.”

 

책 속에서 또 하나의 인상적인 인터뷰이를 꼽자면 이 인물을 빼놓을 수 없다. 최근 MBC의 해고 조치가 부당하다는 판결을 이끌어 낸 후 복직한 <고발뉴스>의 이상호 기자다. 세월호라는 국가적 재난 상황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현장을 지키며 있는 그대로의 이야기를 전하려했던 기자였고, 국가권력의 부당함을 어떻게든 드러내기 위해 영화 <다이빙벨>을 만든 감독이었기 때문이다.

 

지승호는 에둘러 질문하지 않았다. 그는 “다이빙벨이 실패를 했고, 이종인 알파잠수기술공사 대표도 인터뷰를 통해 그것을 인정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언급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할 질문을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상호 기자는 답변을 회피하지 않는다.

 

“이 양반은 해경과 거의 40년 가까이 일한 사람이고, 해경에 찍히면 먹고 사는 길이 끊어지는 사람이에요. 실제 팽목항에서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지금 모든 정부 일거리가 끊긴 상태거든요. 그런 입장에서 이종인 씨는 자기가 다이빙벨 투입에 대해 방해를 받고, 심지어는 살해 협박을 받고 쫓겨났다는 이야기를 편하게 할 수 없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돌려 말했던 것인데, 언론들은, 실패를 바랐던 언론들은 그 말의 진실을 이해하지 못했죠.”

 

이어진 대화들을 눈으로 쫓다 보니 자연스레 영화 <다이빙벨>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영화를 본 보수 언론도, 일베 유저도 별 말 없이 가만히 자리를 떴다는 이상호 기자의 말 덕분이었다. 영화의 정치성은 차치하더라도 어떤 울림이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그들이 침묵한 것 아닐까. 적어도 해당 영화를 봐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점에서 지승호의 인터뷰는 성공적이었다.

 

“절대 진실은 다수결이 아니거든요. 마찬가지로 지금 세월호와 관련해서 거짓이 세상을 덮고 있지만, 저는 진실이 가진 폭발력과 확산성을 믿기 때문에 계속 영화를 알리기 위해 노력할 것이고, (후략)”

 

그는 앞으로의 계획으로 외국 사람들에게도 영화 <다이빙벨>을 알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언론 현실이 여의치 않자 영화라는 대안을 찾아낸 그의 아이디어와 열정이 새삼 대단하고 부러웠다.

 

인터뷰이가 중심이 되는 인터뷰

 

지승호의 인터뷰는 보는 이를 편안하게 하는 인터뷰다. 좋게 보면 자연스러운 구성을 취하고 있는 인터뷰이고 나쁘게 보면 전복과 반전이 없는 인터뷰다. 인터뷰는 공격적이어야 재미가 있을 거라는 편견이 있었는데 책을 완독한 후에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인터뷰는 자연스러워야 술술 읽힌다.

 

각양각색의 7인의 이야기가 담겼고 그걸 통해 간접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책은 매력적이다. 굳이 아쉬운 점을 꼽자면 역시 단조로움이 아닐까 싶다. 좀더 치고 들어갈 수 있는 질문을 던지지 않고 기다리는 것이 지승호의 내공이겠지만 그걸 지루해하는 독자들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편으론 디자인이나 사진 등에서 아쉬운 부분이 꽤 있었다. 꽤 두꺼운 분량이기 때문에 사진 등이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책의 대부분은 글씨로 도배되어 있었고 그 덕분에 인터뷰이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을 수 있었지만 심심한 느낌이 있었다.

 

하지만 지승호의 작업은 충분히 유의미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이 유명해서라기보다는 그가 끌어낸 대답들이 진실성 있게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인터뷰어보다 인터뷰이를 중요시하고, 질문보다 대답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지승호의 인터뷰는 빛날 수 있었다.

 

*사진 출처: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