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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별밤러, 천우희를 인터뷰하다!

7월 8일 수요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천우희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필진으로 참여하고 있는 ‘브로큰에그’에서 마련해준 자리였다. 나를 포함하여 다섯 명의 블로거들이 인터뷰에 참여했다. 약간의 편집을 가한 인터뷰 전문을 싣는다. 인터뷰가 동시에 진행되어서 모든 블로거들의 질문이 뒤섞여있는 점 양해부탁드린다. 

Q. 아무래도 청룡영화제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청룡영화제 여우주연상이라는 ‘사건’ 전후로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어떤 인터뷰에서 연기에 대한 부담감 혹은 대중의 반응에 대한 부담 걱정이 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6개월여가 지났고, 새로운 영화 개봉을 앞둔 지금, 그러한 감정들이 여전히 남아있는지. 말하자면 외부적 요인들이 여전히 부담으로 다가오는지 궁금하다.

 

A. 그런 부담감 같은 경우는 사실 그리 오래 가진 않았던 것 같다. 주변 반응이 변화하는 데서 온 순간적인 감정이랄까 순간적인 불안감이었던 것 같다. 지금에 와서는 뭐랄까, 초연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고. 사실 그런 데에 부담을 느끼다보니까 여러모로 갇히곤 했다. 일상적인 생활도 그렇고 작품에서도 기대에 부응해야한다는 부담감에서 자유로워지자 다짐했다. 받은 것은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예전과 똑같이 연기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작품 선택이나 연기에 있어서. 그래야만 제가 연기를 하는데 있어서 배우의 길이 흔들리지 않고 갈 거 같다.


Q. 그렇다면 그 이후로 내적인 측면, 예컨대 연기에 대한 철학이 변하거나 하지 않았나?

 

A. 그렇다. 변화에 대해서 별로 연연하지 않으려 하는 편이다.


Q. 전환점, 혹은 단절을 강조한 이유는 이번 <손님> 속 천우희라는 존재가 아무래도 <써니> <한공주> <카트> 그리고 <마더> 등의 천우희와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 그리고 실제로도 이전의 작품들과는 다른 점들이 많아 보인다. 공포라는 장르도 그렇고, 미숙이라는 캐릭터도 그렇고. 본인이 생각하는 공포영화로서 <손님>의 매력은 무엇인가?

 

A. 지금까지 장르가 다 같진 않았다. 독특한 장르라서 다르게 다가올 순 있겠지만, 연기하는 입장에서는 장르적인 것은 그렇게 크게 와 닿진 않는다. 시나리오 전체적인 느낌이 중요하다. 장르는 하나의 표현 방법이고, 분류를 위한 것이지, 크게 중요하진 않다. 관객 분들은 다르게 느끼실 수도 있겠다.


Q. 미숙이라는 캐릭터는 이전 역할들과 여러모로 단절된 느낌을 받는다. 우선 외적 특성부터 그렇다. 미숙은 과부다. 20대를 연기했던 <카트>를 제외하면 모두 10대였다. 이전 인터뷰에서 나이 대에 맞는 역할들을 맡고 싶다는 얘기를 한 적이 있다. 그런데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듯, 10대 역할들에서 20대 역할에 비해, 20대 역할에서 과부 역할 사이에는 양적으로든 질적으로든 간극이 커 보인다. 이 도약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겠나?

 

A. 나잇대 같은 경우는 사실 다 어려움이 있다. 원래 나이보다 어린 역할을 하다보면 그런 나잇대가 지났기 때문에, 그때 갖고 있던 풋풋함 등을 잃어버린 상태에서 연기를 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있다. 겪어보지 않은 나잇대는.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지 않나. 그런데 미숙이라는 역할은 예전 시대로만 생각해보면 제 나잇대에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다.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나이가 성숙하게 연기해버리면 인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 목소리 톤이라든지. 나이 듦을 연기하는 것 같아서. 그런 것은 다 뺐다. 변화를 주려 했던 것은 외적으로 살을 찌워봤다. 처음에 접근했을 때는 살을 빼볼까 했는데, 그게 오히려 맞아 떨어졌던 것 같다.

 

Q. 미숙과 영남의 관계에서 미숙에게 영남이란 잃어버린 자식에 대한 욕망을 대리하는 존재이자, 망연한 애정을 내비치는 존재다. 당연히 모성애라는 감정도 천우희에게는 낯설다. 과부로서 미숙의 모성애와 영남에 대한 시선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A. 영남이와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 편집됐다. 그 부분이 더해졌다면 미숙에 대한 설명이 더 편했을 것 같다. 영남에 대한 마음이 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에 미숙이 결정하게 될 때, 마음을 굳히는 순간은 우룡에 대한 마음보다는 영남에 대한 마음이 더 컸다고 생각한다.


Q. 미숙은 과부이기도 하지만 선무당이다. 선무당은 말하자면 완전한 무당이 되지 못한 존재로서, 일종의 과도기적 존재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이전에 맡았던 역할들과 겹치는 부분도 있다. 선무당으로서 미숙을 이해할 때 이전의 역할들을 참조하기도 했었나?

 

A. 전혀 생각을 못했다. (웃음) 공통점이라고 할 순 없을 것 같다. 그렇게 따지면 모든 인물이 동일할 수밖에 없다.

 

Q 그렇다면 기존에 찍었던 작품들은 잊는 편인가?

 

A. 전혀 생각지 않는다. 아예 새로운 시나리오다. 기존 작품의 연장선상일 순 없다.

 

Q. 마지막 접신하는 씬이 인상적이었다. 촬영은 어땠는지?

 

A. 그런 연기를 해본 적도 없고, 모습이 어떨까를 인식하다보면 연기 집중하지 못할 거 같아서 모니터링 하기 부담스러운 부분이 있다. 표정 등 여러 부분을 미리 연습했는데, 막상 현장에 와서는 준비했던 거 다 잊고 했다. ‘그분이 오신다라고 생각해야지.’ (웃음) 생각했다. 끝나고 모니터링 하지 않았고 분위기로 괜찮게 나왔나보다 했다.


Q. 씬이 짧았는데 원래 분량이 짧았나, 아니면 편집으로 잘랐나?

 

A. 씬 자체가 간략했다. 보여줄 수 있는게 한정되었다. 순간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Q. 쥐, 고양이등이 많이 나오는데 그런 것에 대한 힘든 점은 없었나?

 

A. 없었다. 쥐랑 맞닥뜨리는 씬도 없었고. 경기도 이천 출신이라, 산, 벌레, 동물들과 친화적으로 살았다. 쥐가 이만했는데 (팔뚝 길이정도) 오히려 ‘귀엽다’, ‘신기하다’ 생각했다.(웃음)

 

Q. <한공주>, <써니>, <카트>에서 여자배우들과 많은 작품들을 찍다가, 이번에는 남자배우들에 둘러싸였다. 촬영현장에서 분위기가 달랐다든지 느낌의 차이는?

 

A. 맞다. 이번엔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웃음) 이번에 류승룡, 이성민, 이준씨와 같이 작업을 할 때 남달랐다거나 그렇진 않았다. 배우대 배우로 만나는 거니까. 나이가 훨씬 많지만 그거에 대한 어려움이라는 없었다. 멜로라인에 대한 두근거림은 있었지만. (웃음)

 

Q. 아무래도 여자들 사이가 좀 더 편하지 않은가?

 

A. 혼자 여자들이다보니 혹시나 불편할까 배려도 해주고 많이 챙겨줬다. 다른 점이나 어려운 점은 없었다.


Q. 촬영이 끝날 때 정신적으로 힘든 부분은 없었나?

 

A. 없다. 배우마다 스타일이 다르다. 어떤 분들은 헤어 나오기 힘든 경우가 있는데, 저 같은 경우는 잘 나오고 들어간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배우가 그런 컨트롤이 안 되면 되게 힘들어질 때가 많다. 연기가 감상적으로 될 때가 있기도 하다. 본인 스스로가 심취해버리면 남들이 봤을 땐 과할 수 있고, 공감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컷하는 순간에는 저로 돌아온다. 그렇지 않으면 작품을 해나가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연기를 다 하고 나서 영화 개봉했을 때서야 제3자의 눈으로 볼 때 더 힘들다.


Q. 선배들과의 연기에서 기가 눌리진 않았나.

 

A. 그런 생각자체를 하지 않았다. 미숙으로 연기할 때만큼은 억압하고 강압적인 거에 눌리지만, 배우 대 배우로서 그런 거에 연연하거나 신경을 쓰지 않는다.


Q. 류승룡이나 이성민에 대한 평소 느낌과의 차이는?

 

A. 좋은 상대 배우로만 생각했었다. 그런데 작품 하고 나서 더 좋아진 것 같다. 두 분 다 남자다운 모습이 더 많은데, 굉장히 섬세하고 자상하시다.


Q. 두 분이 오히려 촬영장 분위기를 이끄셨다고

 

A. 류승룡 선배님이 굉장히 재밌으시다. 농담하면 저는 리액션을 취할 뿐. (웃음)

 

Q. 첫 작품 <어린신부>를 찍게 된 계기는?

 

A. 아무생각 없이 오디션을 봤다. (웃음) 연기를 해야겠다, 라는 생각은 없었다. 막연한 생각만 있었다. 사촌오빠 중에 연출 공부하던 오빠가 있었다. 제안이 들어와서 오디션을 봤는데, 됐다. 아무생각 없이 갔다. 그때 기억은 별로 없다. 처음 겪어 본거라. ‘어떻게 해야 되지?’ 하다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그러고 나서 학교만 열심히 다녔다.

 

Q. 본격적으로 연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작품은?

 

A. <마더>. 많은 선배님과 감독님과 스탭들을 보면서 제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프로의 세계를 봤다. 평생 직업으로 삼아도 굉장히 매력적이겠구나 생각했다. 그때부터 진지하게 접근했다.


Q. <한공주>로 뜨기 전이나, <한공주> 개봉 전까지도 우여곡절이 많았다. 배우로서 자기에 대한 회의감에 빠지진 않았는지.

 

A.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오히려 저는 운이 좀 좋은 편이었다. 오디션 볼 때마다 잘 되었고, 그래서 항상 편하게 생각했다. 그러다 <써니> 이후로 처음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다.  처음에는 인연이 아닌가보다 생각했다. 그런데 연달아 그러다보니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닌가? 나는 나에게 믿음이 있고 긍정적인 마인드가 있었는데, 착각한 건가?’ 자기에 대한 의심이 생겼다. 그렇지만 그때도 세상에 대한 원망은 하지 않았다. 저에 대한 인식을 다시 했다. 하지만 그렇게 좌절하진 않았다. 언젠가는 될 텐데 지금은 시기가 어렵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으니. 힘들어도 ‘얼마나 잘 되려고 그러나’(웃음)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다. 그때 친한 친구가 ‘네가 그렇게 힘들고 어렵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 죽을 것 같은 불안감이 들 때 나는 네가 걱정인 안 된다. 왜냐하면 너는 그만큼 살 고자 하는 본능이 강하니까.’라고 말했다. 그 순간 <한공주>가 나타났다. 그래서 <한공주>는 저한테 굉장히 큰 의미가 있는 작품이다.


Q. 평소 연기에 대해서나 심도 깊은 얘기를 하는 지인이 있다면?

 

A. 저는 얘기를 잘 안 하는 편이다. 주변사람들에게. 고민이가 궁금한 거를 스스로 해답을 찾으려고 한다. 결정적인 선택은 결국 본인 자신이니까. 항상 제 안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는 편이다.


Q. 앞으로 해보고 싶은 캐릭터는?

 

A. 엄청 많다. (웃음) 안 해본 게 너무 많다. 사람들은 다 저보고 센 역할만 한다고 하는데. 밝은 역할을 해보고 싶다. 갑자기 변하면 이질감을 느끼실 수 있을 듯싶다. 그래서 영역을 차츰차츰 넓혀가고 싶다. 배우가 하고 싶다고 바로 오는 것도 아니고,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작품이 왔을 때의 느낌이 더 중요하다.


Q.  마지막 질문. 최근에 가장 인상 깊게 본 영화와, 영화계를 떠나서 인생의 롤모델은?

 

A. 가장 최근에 본 영화는 <매드맥스>였는데, 배우들한테는 다르게 다가온다. 시장 자체가 다르니까. 부러움이 있다. 제가 하고 싶은 장르 중 하나가 액션이다. (웃음) 언제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롤모델은 엄마다. 가장 경이로운 존재다.

 

* 인터뷰 자리는 처음이라 하루 전에 미리 여러 질문들을 준비했다. 마침 천우희의 영화들을 인상 깊게 본 터라 질문거리를 만드는데 어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막상 대면하여 얘기를 나누다보니 질문이 많이 부족하고 허술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애초에 나는 이전에 찍은 작품들과의 연관성(연결이든 단절이든) 속에서 <손님>을 위치해놓고 질문을 마련했다. 인터뷰를 보면 알겠지만, 그런 전제는 오류였다. 그녀에게 작품들은 어디까지나 개별적으로 존재할 뿐이었다. 작품은 그 자체로 충만하고 충실해야하는 대상이지, 작품들 사이의 관계는 그녀에게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나만의 잣대는 천우희라는 존재를 이해하는데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 

 

그럼에도 성심껏 대답해준 천우희씨에게 감사드린다. 매순간에 몰두하는 그녀에게 어제는 이미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아직 오지 않은 오늘이다. 늘 오늘을 살아가는 그녀는 분명 ‘롱런’하는 배우로 남을 것이다. 더불어 좋은 기회를 마련해주신 ‘브로큰에그’와 같이 인터뷰를 진행하신 ‘무비럽웅’, ‘뽀’, ‘솔이’, ‘지니그’님에게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