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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심판론을 버려야 야당이 산다

2석만 가져와도 사실상 승리라 했던 야당의 구호가 무색하게 됐다. 4‧29 재‧보궐 선거 결과 야당의 무력함은 다시 한 번 여실히 증명됐다. 문제는 연속성이다. 지난해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 때도 야당은 사실상 패배했다. 그리고 이번 선거에선 완패를 당하고 말았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이번 선거에서 완패한 이유는 심판론에 있다. 심판론은 확실히 매력적이다. 상대방을 깎음으로써 상대적으로 자신의 존재감과 정당성을 부각시킬 수 있다. 그 공식에 따라 새정연은 ‘성완종 리스트’를 부각시키며 정부여당의 비리를 척결해야 한다며 심판론을 꺼내들었다. 정부여당의 비리를 국민의 표로 심판하자는 메시지였다.

그러나 이 심판론에는 맹점이 있다. 첫째, 정부여당의 비리나 잘못은 선거에서 유권자가 표를 행사하는 데 더 이상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점이다. ‘성완종 리스트’ 관련한 의혹이 점점 드러났음에도 해당 이슈가 선거의 흐름을 좌지우지하지는 못했다. 예전처럼 ‘정부여당의 잘못=정당 후보의 잘못’이라는 도식이 성립되지 않는 것이다.

 

둘째, 심판론의 대안이 새정연이라는 사실에 사람들은 공감하지 못했다. 실제로 국민들은 ‘성완종 리스트’에 실망했지만 그 실망이 새정연에 대한 기대로 뒤바뀌지는 않았다. 이는 정당지지도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한국갤럽에 따르면 ‘성완종 리스트’ 파문 후 새정연의 정당지지도는 27%에서 29%로 소폭 상승했다. 냉정히 말해 ‘성완종 리스트’는 새정연에게 최적의 카드는 아니었던 셈이다.

셋째, 프레임의 늪에 빠졌기 때문이다. 조지 레이코프는 그의 책 <코끼리는 생각하지마>에서 누군가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라고 하면, 사람들은 그의 의도와 무관하게 자동반사적으로 코끼리를 생각한다고 이야기했다. 사실 심판론의 가장 큰 딜레마는 여기에 있다. 정부여당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겠다고 선거 메시지를 선택하면, 보수 지지층은 정부여당의 위기를 먼저 생각하고 결집하게 된다. 반대 진영을 공격하는 것에 힘을 쏟은 탓에 상대적으로 새정연의 후보들에 대한 인식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심판론은 네거티브 전략이다. 적의 약점과 잘못을 파고들어 공격하는 건 어쩌면 자신의 장점과 매력을 어필하는 것보다 더 쉽고 빠른 방법이다. 이는 개인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의 치부를 비판하는 건 쉬워도 자신의 허물은 가리고 뛰어난 점만 강조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방법이 어렵다고 쉬운 길을 선택해 버리면 질 수밖에 없는 선거가 된다. 하다못해 학급선거에서도 누군가를 비판하기만 하는 후보보다는 자신이 반장이 되면 실천할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가 더 믿음직스럽지 않던가.

 

아무리 새정연이 도덕적인 면을 강조하더라도 선거만 치르면 필패하는 정당이라면 무능한 정당일 뿐이다. 문재인 대표와 우윤근 원내대표는 재‧보선 결과에 대해 기자회견을 통해 잘못을 시인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나는 그것이 심판론의 폐기였으면 한다. 어설픈 심판론은 상대 당의 세력만 결집시켜줄 뿐이다. 정당은 정책으로 승부해야 한다. 문 대표가 경제‧안보 정당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포부를 밝힌 만큼 차후 선거에서도 심판이 아닌 정책으로 승부하기를 기대해본다.

 

*사진 출처: 한국갤럽,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