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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성완종 리스트를 풀어낼 주심과 부심, 검찰과 언론

얼마 전 축구심판 4급에 도전했다. 평소 축구를 즐기기 때문에 무난하게 따낼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착각이었다. 필기시험과 체력시험을 우여곡절 끝에 간신히 통과했다. 실기에서는 보다 집중해서 교육에 임했고 그 결과 심판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아직 자격증이 나오지는 않았다). 지난 주말, 친구들과의 축구 경기에서 연습 삼아 주심을 봤는데, 선수로 뛸 때보다 배는 힘들었다.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반칙과 오프사이드를 보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팠지만, 무엇보다 어려웠던 건 휘슬 불기였다. 조금이라도 늦게, 혹은 애매한 상황에 휘슬을 불면 선수들이 반발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검찰의 특별수사팀 구성은 시기적절해 보인다. 너무 이르지도, 늦지도 않은 타이밍에 수사가 이뤄져서 일단 다행이다. 혹자는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만큼 검찰 수사가 제대로 되겠느냐고 의문의 눈초리를 보낸다. 지난 사건들을 견주어 유야무야 식으로 수사가 진행될 수 있다는 식의 논리다. 그러나 검찰 수사를 건너뛴 채 특검을 도입하자는 의견에 동의할 수 없다. 그런 식의 특검은 기존 검찰에 대한 불신이자, 또 다른 정치논쟁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막말로 지금 당장 특검을 도입한다면, 특검을 누구로 임명할지부터 여야가 정쟁으로 다툴 공산이 크다. 그런 소모적 논쟁이 이어질 경우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진상 규명은 요원해질 것이다.

 

성완종은 휘슬블로어가 될 수 있을까?

 

휘슬블로어는 내부고발자를 의미한다. 흔히 조직 내부의 구성원이었던 사람이 조직 내부에서 저질러지는 부정부패, 불법 행위 등을 알게 된 이가 사실을 알리는 게 휘슬블로어다. 통상적으로 휘슬블로어는 이러한 비리 등과 동떨어져 있다는 점에서 ‘성완종=휘슬블로어’라는 등식은 성립하기 어렵다. 경향신문이 공개한 녹취에 따르면 당사자들에게 돈을 건넨 주체가 성완종이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검찰의 자원외교 수사로 인해 궁지에 몰리던 순간에 진실(혹은 허언)을 폭로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럼에도 나는 그가 휘슬블로어로 기록될 가능성에 주목한다. 물론 전제조건이 뒤따른다.

 

우선 최우선적인 전제조건은 그의 말이 진실인 경우다. 그가 언급한 리스트에 해당하는 인물들이 정말로 그의 돈을 받았다면 그는 휘슬블로어가 될 자격이 있다. 적어도 진실을 말했다는 점에서 말이다. 그의 말이 진실일 경우, 그가 휘슬블로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그가 언급한 인사들이 모두 현 정권의 실세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그가 아무리 죽음을 결심했다고 해도, 정권의 전‧현직 실세들을 겨냥하는 말을 내뱉기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 말이 지닌 파급력을 충분히 예상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경향신문>에 있는 그대로 세상에 전할 것을 주문했다. 그의 말이 진실이든, 진실이 아니든 그의 마지막 행동은 거침없이 날이 서 있다. 진실과 용기는 휘슬블로어의 필수 조건이다.

공은 특별수사팀에게로

 

 이제 공은 특별수사팀에게로 넘어왔다. 박근혜 대통령이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했고, 김진태 검찰총장도 대검 간부 회의를 열어 끝까지 수사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검찰 내 특수통인 문무일 대전지검장이 특별수사팀을 지휘한다. 수사팀이 꾸려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검찰은 성 회장의 비자금 32억이 현금화된 사실을 밝혀냈다. 또 성 회장의 메모가 자필임을 확인하는 등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모양새다.

 

아직 수사가 종결되지 않은 상황에서 검찰 수사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논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건 마치 휘슬을 분 주심이 카드를 꺼내들기도 전 주심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것과 같다. 검찰은 공적이고 그 존재 자체로 명예로운 조직이다. 만일 그들의 수사가 미진하다면 어떤 식으로든 검찰의 명예는 훼손될 것이고,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 또한 추락할 것이다. 검찰 스스로 그런 우에 빠지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대통령과 검찰총장이 강도 높은 수사를 지시했다. 그럼에도 의혹을 짚어내지 못한다면 검찰은 스스로 무능한 심판임을 입증하는 꼴이 되고 말 것이다. 검찰 특별수사에서 특검 수사로의 전환은 주심과 대기심 사이의 교체와도 같다. 축구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알 것이다. 그런 일은 좀처럼 일어나지 않을 정도로 드물다.

 

또 다른 부심, 언론의 역할

 

주심의 눈은 천리안처럼 시야가 넓어야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경기장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다 들여다볼 수는 없다. 그래서 주심을 돕는 이들이 부심이다. 그들은 경기장의 터치라인에서 공의 움직임을 쫓는다. 주심의 사각지대에 놓인 선수들의 충돌과 오프사이드를 가려낸다. 그들에게 휘슬은 없지만 대신 깃발이 있다. 공을 주시하다가 반칙이나 오프사이드가 일어났을 때 깃발을 여지없이 든다. 뭔가 문제가 일어났다는 주심에 대한 신호다. 이를 받아들이는 건 주심의 재량이지만, 대개 주심의 부심의 판정을 존중한다.

 

우리나라의 언론이 맡아야 할 역할은 바로 이 부심의 역할이다. 누군가는 언론이 왜 주심이 될 수 없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답은 간단하다. 언론은 사법권이 없다. 잘못된 걸 지적할 수는 없어도 선언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부심의 역할은 결코 가볍지 않다. 지난해 정윤회 문건 파동이나 이번 ‘성완종 리스트’의 이상 신호를 제일 처음 알린 건 <세계일보>와 <경향신문>이었다. 주심이 휘슬을 불 때 힘껏 불 듯, 부심도 깃발을 들 때 번쩍 들어야 한다. 그래야 선수들과 관중들의 신뢰가 생긴다. 검찰 수사와 동시에 언론사의 집요한 취재도 함께 빛나길 바란다. 돌이켜보면 일전에 미국에서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어났을 때 핵심적인 역할을 도맡은 것 역시 언론이었다. 재차 강조하지만 주심은 부심의 신호를 묵살하기 어렵다.

진실을 밝히는 건 현실정치에서나, 축구에서나 마찬가지로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어려운 일이라고 어물쩍 넘어갈 수는 없다. 그런 심판은 조롱당하기 십상이다. 심판이 존재하는 이유는 선수들이 경기규칙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다. 또 한편으로는 경기장을 찾은 수많은 관중들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이기도 하다. 국민들이 지켜보고 있다. 일단 휘슬은 울렸다. 단순 반칙, 경고, 퇴장 그것도 아니면 심판이 실수로 분 것인지 다음 장면이 궁금하다.

 

사진 출처: FIFA,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