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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거의 다 왔다. <킬미힐미>의 이야기다. 보통 16부작인 다른 미니시리즈와 달리 <킬미힐미>는 상대적으로 긴 호흡인 20부작을 방영하기로 처음부터 결정된 작품이었다. 시청률은 화제성만큼 높게 나오고 있지는 않지만, 방송이 끝날 때마다 메인을 장식하는 기사들과 주변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 이 드라마가 히트했음을 확실히 단언할 수 있다. 더하여 진수완 작가가 이 작품을 2008년부터 미리 구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라마 초반에 시달렸던 여러 풍문(?)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보통 드라마가 히트를 하면 종영할 때쯤 연장에 대한 이야기가 오고가곤 한다. 특히 높은 시청률을 자랑한 드라마일수록 그랬다. 그러나 연장을 한 작품 대부분 마지막에 좋은 평을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더 보고 싶어서 연장을 했는데 도리어 아쉬움을 남기는 일이 많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킬미힐미>는 달랐다. 이미 20부작이라는 짧지 않은 길이를 선택했고, 작가가 이미 끝까지의 스토리 구상을 마쳐놨었다. 그런 점에서 이 드라마의 완성도는 마지막으로 갈수록 더욱 높아지고 있다. 


진수완 작가의 구성력이 빛을 발한 회가(매회 그랬지만) 이번 19회였다. 작가는 이미 인물들의 대사 속에 그가 뿌려놓은 흩어진 단서들과 조각들을 다시 맞추겠다고 선언을 했다. 승진 그룹 주주총회라는 중요한 일 하나를 남겨놓고, 둘 간의 사랑을 확인한 차도현(지성 분)과 오리진(황정음 분)이 서로가 가졌던 기억의 조각을 맞추며 치유하는 과정을 본격적으로 드러냈다. 


그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서정적으로 표현한 씬이 바로 두 사람이 함께 놀이기구를 타는 씬이었다. 어린 시절 좋은 기억을 맞추던 두 사람이 예전에 소망하던 것처럼 놀이기구를 함께 타면서 서로의 마음을 치유하는 장면이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신이 나서 어린이용 놀이기구를 즐겨 탔지만, 그 맞은편에 앉은 어린 자신들의 모습을 보면서 묘한 감정 변화를 느꼈다. 놀이기구는 여전히 힘차게 돌아가고 있었지만 인물들은 여러 감정이 오가는 순간이었다. 


자신들의 옛 기억을 계속 확인하면서 드라마 속 인물들과 시청자는 놀라운 사실을 함께 발견했다. 그동안 스쳐지나온 과거의 장면들, 과거의 도현이 누군가와 보냈던 시간과 나눴던 대화가 모두 그의 인격 형성에 영향을 미쳤다는 사실이었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 그리움, 죄책감, 사랑, 이 모든 감정들이 각각의 인격으로 나타나 그것이 해소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감정과 기억을 발견하면서 도현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자신의 인격과 잘 헤어질 수 있었다. 그 헤어짐을 아름답게 표현한 19회의 대표적 장면이 바로 페리박과의 이별이었다. 아버지에 대한 복잡한 감정들로 생겨난 페리박이라는 인물과 극적인 화해를 하면서 도현은 자유를 되찾기 시작했다. 그는 점점 행복해지고 있었다. 


작가는 리진의 말을 빌려 자신의 가치관을 우리에게 전달했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가해자에 대한 용서를 하는 것” 이라고 말이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하는 것, 그것이 행복해지는 길이라고 우리에게 말한다. 쉽지 않은 일인걸 누구나 잘 알지만 결국 작가는 쉽지 않은 일을 해보자고 우리에게 권하는 듯 했다. 우리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사람을 용서하고, 그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복잡한 감정과 상처를 치유하는 것. 그것이 <킬미힐미>의 주제였던 것 같다. 


이미 19회까지 오면서 드라마의 주제, 그리고 결말의 방향까지 모두 다 드러냈지만 진수완 작가는 여전히 드라마의 ‘흥미’ 부분을 놓치지 않았다. 이 부분이 바로 대부분의 트렌디 드라마 제작진들이 놓쳤던 부분이다. 연장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마지막 회에 와서는 전개를 놓아버리고, 새로움을 버리고, 안정적인 흐름만 찾기 일쑤였다. 뻔한 장면을 늘어놓고 그걸 팬서비스라고 내세우는 정도였다. 


하지만 <킬미힐미>는 이 점에서 좀 달랐다. 작가는 마지막 인격을 하나 더 남겨놓았다. 바로 ‘미스터 X’라는 존재다. 지금까지의 전개를 봤을 때, ‘신세기’만큼 가장 무서운 인격이 될 줄 알았던 ‘미스터 X’는 생각보다 밝고, 진정한 팬서비스를 위한 인격이 될 것 같다. 마지막 회까지 새로운 전개를 놓치지 않고 배치하면서 작가는 시청자들에게 흥미 요소를 확실하게 제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미스터 X’라는 새 인격이 등장함으로 인해 우리는 마지막 회도 사수를 해야만 하게 됐다. 아주 영리한 작가다. 그의 놀라운 필력에 박수를 보내며 오늘 마지막 방송을 흐뭇한 마음으로 지켜봐야겠다. 

 

사진 출처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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