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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새누리당 저가담배가 의미하는 것

명절부터 눈 찌푸리게 하는 소식이 나왔다. 이번엔 저가담배란다. 새해 담뱃값 오른 지 얼마 됐다고 다시 저가담배를 운운하는지 의뭉스럽다(물론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직접적으로 피곤할 일은 없겠지만 말이다). 발언의 당사자는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였다. 정부에 할 말은 하겠다더니 정부도 어이없어 할 만한 발언을 하고 말았다.

여당의 저가담배 아이디어는 아마도 다음과 같은 루트로 나왔을 것이다. 명절 전 새누리당 의원들이 지역구를 돌다보니 과거 새누리당을 지지하던 노년층 대다수가 담뱃값 인상에 불만을 표한다. 재보궐을 앞둔 시점에서 노년층의 지지를 잃어서는 안 될 새누리당에선 이들을 달래기 위한 정책 아이디어 회의를 한다. 이 과정에서 하나의 ‘아이디어’ 차원에서 저가담배 도입안이 나온 것이다.

비록 그게 아이디어 차원이었을지 몰라도 잘못 짚어도 한참 잘못 짚었다. 조삼모사도 아니고 국민 건강 차원에서 담뱃값 인상해놓고 다시 저가담배를 도입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 실질적으로는 세수 증대를 위한 담뱃세 인상이었던 것을 아는 국민들에게 저가담배는 또 다른 세수 증대 정책에 불과하다. 거기에 노인 표를 의식한 일종의 선거전략 중 하나일 뿐이다.

 

지금 국민들이 새누리당에 바라는 것은 정책보다는 정부 견제다.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로 이어지는 비박 투톱에게 여당의 여당다움을 바라는 것이다. 앞서 나는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에게 야당다운 야당을 만들어갈 것을 기대했다(2015/02/09 - [Issue/정치를 말하다] - 문재인의 당 대표 선출, 야당 개혁 신호탄 될까). 정부보다 더 좋은 정책을 내는 것은 여당, 야당 가릴 것 없이 중요하지만 현 상황에서 야당이 다른 관점의 정책을 낼 수 있는 여지가 더 있으므로 새정치연합에 그런 역할을 바랐던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거꾸로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인사청문회 관련해 야당은 실수를 범했다. 문재인 대표는 여론조사를 통해 국민의 뜻을 묻자고 했는데 이는 정부여당 측에 공격의 실마리를 주고 말았다.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 ‘여론조사 만능주의’ 등과 같은 비판이 잇따랐고, 이완구 총리 후보자는 결국 ‘후보자’라는 딱지를 떼고 총리로 거듭났다. 각 세우고 싸운 결과 야당은 크게 얻은 게 없었다. 여론조사를 강조하지 않았어도 상황적으로 야당에게 유리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정책적인 면을 더 부각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여당은 여당다움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이제까지 ‘식물여당’에 가깝도록 정부 뒤만 쫓아왔다면 이제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적어도 그들의 목표가 총선 승리, 차기 집권에 방점이 찍혀 있다면 말이다. 그러기 위해 그들은 정책도 정책이지만 쓴소리를 해야 한다. 당 대표와 원내대표라는 당내 막강 권력이 비박인데 왜 그들은 눈치만 보고 정부에 대한 견제를 제대로 행하지 못하는가. 이대로라면 박근혜 대통령 지지도가 추락할 때마다 새누리당 지지도도 동반 추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상 레임덕은 이미 시작됐고 대통령의 불통은 이번 청와대 추가 개편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레임덕은 억지로 극복한다고 극복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번 저가담배에서 여당이 민심에 뭇매를 맞은 것은 ‘정부=여당’이라는 프레임이 성립됐기 때문이다. 이 프레임을 깨느냐 못 깨느냐에 새누리당의 향후 성패가 달려있을 것이다.

새누리당은 저가담배를 괜히 꺼냈다 욕만 먹었다고 생각하지만 말고, 국민들의 알레르기 반응이 어디서 기인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 지지도 격차는 이제 거의 의미가 없어졌다. 앞으로의 싸움은 새정치민주연합의 대안 정책 제시 능력과 새누리당의 정부 비판 능력에 의해 좌우될 공산이 크다.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다음 총선을 앞둔 두 정당의 한판 승부가 사뭇 기대된다.

 

사진 출처: 연합뉴스, MBN, 민중의소리, 고병규 만화 패러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