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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문재인의 당 대표 선출, 야당 개혁 신호탄 될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8. 전당대회가 끝났다. 승부는 예상보다 박빙이었다. 문재인 대표와 박지원 후보의 격차는 단 3.52%포인트 차였다. 문 대표 측은 선거 중반까지만 해도 박 후보 측을 10%포인트 이상 앞섰지만, 박 후보의 당권 대권 분리론과 ‘여론조사 룰 변경’에 대한 논란 제기가 어느 정도 먹혀들면서 문 대표는 (예상보다) 고전했다.

이미 대표가 선출된 마당에 각 후보들의 선거 전략과 전당대회 당원 참석율 등을 머리 아프게 통계 내고 싶지는 않다.(사실 그런 것들은 뉴스에서 이미 다루고 있으니 검색하시면 된다). 내가 여기서 하고 싶은 말은 앞으로 남겨진 과제들. 그러니까 문 대표가 수행해야할 과제들, 그리고 지극히 주관적으로 야당에 대한 기대하는 부분을 논하려고 한다. 따라서 이 글은 다소 들쭉날쭉하고 감정적일 수 있으니 염두에 두시길 바란다.

 

“친노는 없다”를 증명할 시간

 

계파 문제는 야당의 최대 문제다. 이번 전당 대회에서도 문 대표 측과 박 후보 측은 몇 차례 설전을 벌였고, 그 내상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문 후보는 “친노와 비노는 없다”고 선언했는데 그것을 몸소 보여줘야 할 필요성이 있다. 선거 때만 “계파는 없다”고 해놓고 평상시엔 다시 계파의 이익을 위해 벌이는 ‘자해’적 퍼포먼스를 야당에서 한두 번 본 게 아니다. 이번만큼은 다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당내 지도부 측근 자리에 ‘친노’로 분류되는 이들과 ‘비노’로 분류되는 이들을 고루고루 배치해야 한다. 물론 이 방법은 지도부의 의견 일치를 이룰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친노’로 분류되는 이들만으로 측근을 꾸리는 것보단 낫다. 한 계파의 실패가 다른 계파의 기회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궁극적으로 계파를 없애기 위해서라도 지도부 측근에는 고른 인사가 필수불가결하다.

 

공천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재보선, 내년 총선이 있는데 야당으로서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선거다. 하지만 반드시 이겨야 한다고 해서, 특정 인사를 전략적으로 배치하는 식의 공천은 곤란하다. 물론 해당 후보가 나올 경우 승리가 확실할 경우, 또 대표가 책임질 수 있을 정도로 자신이 있다면 전략공천은 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수도 없이 봤다. 야당이 변하기 위해서 특정 계파의 이익을 좇아 전략공천을 하는 일은 없길 바란다. 문 대표가 강조하듯 원칙과 소신에 따른 공천 방식을 도입하길 기대한다.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에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 전략
 
문 대표는 수락연설에서 정부에 선전포고를 했다. 그는 “민주주의, 서민경제를 계속 파탄 낸다면 저는 박근혜 정부와 전면전을 시작할 것”이라는 말로 포문을 열었다. 지난 대선에서 패배한 경험이 있는 문 대표가 이런 발언을 할 때에는 어떤 자신감이 있어서이지 않을까. 그렇다. 그는 현재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아마도 이번 당 대표 취임과 함께 지지도가 일정 수준 더 올라가지 않을까 기대되기도 한다.

 

그러나 문 대표의 말은 언행일치가 되어야 위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동안 야당은 반대를 위한 반대에만 천착한 것이 사실이다. 반대를 위해서는 대안이 있어야 한다. “그래 너희 말대로 하지 않을게. 그럼 너희의 대안은 뭔데.”라는 질문에 야당은 언제든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즉, 추상적이기보다는 구체적인 플랜이 있어야 한다. 정부에 대한 비판은 사실 언론, 시민단체, 하물며 나 같은 블로거도 할 수 있다. 우리가 정당에 바라는 것은 비판이 아니라 정책이다. 야당은 정부안보다 좋은 방안을 내고 그것을 국민에게 내보이며 설득할 수 있는 정당이 되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증세 없는 복지’ 논란이다. 누군가 ‘증세. 없는 복지’로 패러디했듯 이미 증세 없는 복지는 선전 문구에 불과한 것이 사실이다. 국민들도 다 안다. 그러면 야당은 뭘 해야 하는가. 정부를 비판하는 대열에 합류해서 열을 올려야 할까. 나는 그것보다는 과감히 증세를 주장하든,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것이 야당에 더 이익이 될 것이라고 본다. 솔직히 이제는 야당이 정부를 비판해도 ‘당연히 그러시겠지’ 하는 반응이 자동적으로 튀어 나온다. 이것이 꼭 좋은 현상만은 아닌 것 같다. 때에 따라서는 조건부 동의도 하고, 대안 있는 비판을 하는 야당을 꿈꾸는 것은 너무 이상적일까. 글쎄. 어쨌든 문 후보는 선전포고를 했다. 한번 입밖으로 낸 말은 주워담을 수 없다. 나는 문재인의 무기가 궁금하다.

 

‘싸가지 있는 진보’는 가능할까

 

강준만의 책 <싸가지 없는 진보>를 얼마 전 완독했다. 출간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책을 읽었기에 책에 쓰인 내용을 현재 상황에 잘 들어맞을까 의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심은 착각에 불과했다. 강준만의 지적에 모두 동의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가 당시 야당 비대위를 구성했던 지도부에 대해 우려한 내용은 주목할 만하다. 그는 당시 야당의 집단적 기억력은 사실상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면서 당시 박영선 비대위원장의 행보를 걱정했는데, 그의 예측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그리고 6개월, 다시 새로운 당 지도부가 꾸려지고 있는 상황이다.

강 교수가 말하는 싸가지 있는 진보는 별 새로운 게 아니다. 진보도 귀담아들을 줄 알고, 진영논리로만 유권자를 편 나누기만 해서는 집권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핵심주장이다. 그는 “민주당은 우선적으로 도덕에서 새누리당에 패했다고 할 수 있다”면서 ‘돌직구’를 날린다. 적어도 보수 유권자들에게 있어서는 그렇게 비칠 수 있다는 점에서 그의 지적은 새겨들을 만하다. 실제로 야당은 항상 ‘민주’와 ‘반민주’라는 틀로 역사를 나누고, 정치인을 나누고, 유권자를 쪼개온 것이 사실이다. 그것이 콕 집어서 잘못이라기보다는 요즘 유권자들에게 너무 구닥다리 같은 전략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진단이다.

 

그런 점에서 문 대표의 이승만, 박정희 묘역 참배 의사 표명은 의미심장하다. 의미심장하다는 것과 바람직하다는 것은 엄밀히 다르다(정치인은 옳고 그름 여부와 관계없이 전략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가 있다). 적어도 그는 이제 보수 유권자들을 외면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앞으로 박정희 대통령 묘소, 이승만 대통령 묘소 참배여부를 놓고 국민들이 갈등하고 그것으로 국론이 나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는 “야당다운 야당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집권 준비해나가는 대안정당 만들어서 정권교체 희망 드리겠다”며 진보 지지층에게 어필했다. 문 대표는 앞으로 싸가지 있는 진보를 구현해낼 수 있을까. 당 대표로서 그가 어떤 일들을 추진할지 앞으로의 행보가 사뭇 기대된다.

 

*사진 출처: 다음 검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