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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단막극 다시보기

설날, 온 가족의 만남이 더욱 화기애애해질 단막극 두 편

벌써 설 연휴의 이틀이 거의 지나갔다. 우리는 오늘을 맞이함으로써 진정한 2015년 1월 1일 새해를 맞이했다. 설날에는 온 가족이 모여 서로 세배를 하고 덕담과 함께 세뱃돈을 주고받는 것이 미덕인데, 요즘 세상은 너무 퍽퍽해 오가는 말에 상처를 받고 홧병 나는 일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무언가를 준비해야 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없이 불편한 것이 명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은 가족이다. 1년에 몇 번 보지도 않는 친척인데 그래도 핏줄이라고 안 보면 또 괜스레 미안해지고 서운하지 않겠는가. 특히 서로 말하기 싫은 가족들이 대화를 대체하는 수단으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바로 TV보기다. 설 연휴만 되면 방송사는 기다렸다는 듯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방송, 실험적인 파일럿 방송 등을 편성해 가족들의 대화를 대신했다.

 

요즘에는 특별 편성의 분위기가 달라지고 있는 듯하다. 대화를 더 막으려는 의도인지 몰라도 전통적인 프로그램은 점점 사라지고 영화의 편성이 늘고 있다. 최신 영화도 많이 있고 또 집중해서 한 편 보는 것이 분위기에 더 좋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다. 다만 아쉬운 것은 예전에는 많았던 설 특집 단막극이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번 설에 내가 알아본 바로는 새로운 단막극은 SBS의 두 편밖에 없었다. 

 

내가 직접 드라마를 만들어 보여줄 수는 없는 사정이고 설에 온 가족이 모여 영화를 보는 것도 좋지만 드라마라는 더 좋은 TV 전용 서사가 있다는 걸 알리고 싶었다. 드라마의 장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전히 몰입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보면서 가족끼리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드라마가 던지는 주제에 관해서 함께 생각해볼 수도 있다. 오늘은 설이 많이 지났지만 그래도 아직 3일이나 연휴가 남아있기에 닮은 듯 다른 단막극 두 편을 소개하려 한다. 지나간 단막극이지만 가족끼리 보면 참 좋을, 마음이 훈훈해질 가족극이다.

1. <마지막 후뢰시맨> KBS드라마스페셜 2010년작

 

가족끼리 보기 좋은 드라마라면서 무슨 아이들 영웅 드라마를 보게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다. 당연히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해져 있다. 이 드라마는 확실히 가슴 따뜻하게 만드는 가족극이다. 후뢰시맨은 드라마 속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는 하나의 장치다. 하지만 이 드라마의 진짜 주인공은 조복남(박유선 분)이라는 한 사랑스러운 아이를 둘러싼 5인 가족이다.

 

조복남, 이름만 들어도 복이 넘칠 것 같은 아이다. 얼굴에도 복이 가득하다고 생각 될 만큼 통통한 볼에 또래보다 체격도 큰 여자아이다. 드라마는 복남이의 편지로 시작한다. 군인 아저씨에게 또박또박 글을 쓰며 복남이는 자신과 가족을 소개하기 시작한다. 치매에 걸렸지만 귀여운 할머니(김지영 분), 철없는 백수 아빠(이성민 분), 복남 치킨을 운영하며 억척스럽고 바쁘게 사는 엄마(이미영 분), 거기에 동네에서 삥 뜯고 다니는 노는 언니(남보라 분)까지. 누구 하나 평범한 사람이 없다. 오히려 복남이가 가장 의젓하다.

 

조숙한 복남이는 어느 날 의문을 갖기 시작한다. 신체검사에서 자신의 혈액형이 O형인데 부모님의 혈액형은 모두 A형이었던 것. 복남이는 자신에게 출생의 비밀이 있다고 의심하기 시작한다. 매번 치킨 배달에 자기가 하고 싶은 건 하지도 못하면서 집에서 구박받는 자신이었기 때문이다. 그 생각을 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바로 ‘후뢰시맨’이었다. 게다가 치매 걸린 할머니가 문득 정신이 돌아와 복남이는 하늘이 주신 아이라는 말을 해주면서 그녀는 확신에 차기 시작한다. 자신은 후뢰시맨처럼 저 우주에서 날아온, 하늘에서 뚝 떨어진 존재라고 말이다. 결국 복남이는 후뢰시맨을 동경하는 한 청년을 만나 자신도 하늘에 올라가겠다고 해보지만 오히려 쓰러지고 만다. 그리고 복남이를 둘러싼 진실이 하나둘씩 밝혀진다.

 

드라마의 포인트는 복남이의 귀엽고 뛰어난 연기다. 사투리를 맛깔나게 하면서 자신은 지구인이 아닌 후뢰시맨이다라고 믿는 듯 무덤덤한 표정이 압권이었다. 지금은 최고의 배우 중에 하나인 이성민과 남보라의 연기를 보는 것도 흥미롭다. 작품이 2010년에 만들어졌기에 5년 전의 한껏 힘을 뺀 이들의 모습도 재미있었다.

 

2차 성징을 겪는 여자아이의 자아정체성 확립이라는 무거운 주제로 해석할 수 있는 이 드라마를 시종일관 웃음 짓게 만든 건 가족과 주변 친구들의 투닥투닥하는 이야기와 분위기였다. 지금 같은 명절에 함께 보면 절로 웃음이 나올 그런 것들 말이다. 벌써 5년 전이라 투박한 감이 있지만 전형적이면서 기분 좋은 오래 볼 연극 같은 그런 드라마였다. 후뢰시맨이 되고 싶었던 조숙증 여자 아이의 2차 성징 이야기, 결말을 확인하는 일은 여러분에게 맡기겠다.

 

2. <예쁘다 오만복> KBS드라마스페셜 2014년작

 

<마지막 후뢰시맨>과 아주 닮았지만 다른 또 하나의 단막극이다. 앞의 드라마의 복남이가 투박하면서도 통통 튀는 원색의 아이라면 <예쁘다 오만복>의 만복이는 한껏 세련된 파스텔 톤의 아이다. 이름도 참 비슷하다. 복남과 만복. 둘 다 복이 넘치는 아이들이다.

 

오만복(김향기 분)은 입양아로 행복하게 살고 있는 초등학생 아이다. 시력이 안 좋아 똥글뱅이 안경을 쓰고 다니지만 똑똑하고 지금 가족에게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다. 하지만 만복이는 자신이 입양아라는 걸 확실히 알고 있고 친부모를 찾고 싶어 한다. 사랑을 받지 못하고 크면서 출생의 비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복남이와는 다르다.  

 

드라마는 ‘해피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의 인터뷰를 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드라마 두 편을 연이어서보니 가족에 대한 소개를 드라마에서는 이런 방식으로 전형적으로 한다는 걸 발견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자신에 대한 소개를 하면서 드라마는 이어진다. 중국집을 운영하고 정이 넘치는 아빠(박철민 분), 푸근한 인상에 엄마(라미란 분), 철없는 언니 오순복(해령 분), 기네스북에 오르겠다며 맨날 그것만 하는 오빠 오대복(신동우 분) 이렇게 다섯 명이 행복하게 살고 있다.

 

<마지막 후뢰시맨>의 가족은 복남이를 챙겨주지 않는 듯하면서 챙기는 츤데레의 집이라면 이 집은 다르다. 대놓고 만복이를 위해 노력한다. 언젠가 시력을 잃을 수도 있는 병을 앓고 있는 만복이를 위해 입양 부모는 자신의 눈까지도 내어놓겠다고 말한다. 심지어 철없어 보이는 언니와 오빠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만복이는 잃어버린 친 아빠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가족의 인터뷰와 만복이의 노력이 교차되는 부분이 참 안타까우면서 짠하다.

 

결국 만복이는 사고를 치고 만다. 친아빠라는 존재를 찾겠다고 집을 나가버린다. 결국 그녀를 찾기 위해 온 가족이 나서고, 이 씁쓸한 과정을 드라마는 슬프지만은 않게 유쾌하게 그려낸다. 이 드라마의 결말도 말하지는 않겠다. 모두가 아는 그런 결말이 예상되지만 그래도 그 기쁨은 여러분에게 맡겨 둔다.

 

복남이와 만복이. 복이 넘치는 두 아이의 드라마를 쭉 보고 있자니 우리 가족에 대한 애정이 생겼다. 츤데레의 가정이든, 사랑이 원래 넘치는 가정이든 가족은 가족이다.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같고 서로를 품어주는 마음도 같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출생의 비밀을 찾아 혼자 힘들어하기도 하고 어린 아이가 사고를 치면서 가족을 힘들게도 하지만 그래도 서로 사랑하니까. 가족은 서로 품어줄 수 있다. 부디 이 드라마들이 매일 싸우고 갈등 때문에 힘들어하던 가족에게 행복과 감사를 단비처럼 내릴 수 있었으면 한다.

 

사진제공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