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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밥 한 번 하자"는 거짓말은 어떻게 삶을 연장하겠다는 의지가 됐을까 - 시인의 일상어사전, 권혁웅, 마음산책 말에는 ‘멋’이 있다. 각 말 자체가 갖고 있는 다양한 뜻, 말과 말의 조합해 만들어내는 새 뜻, 말을 해체해 발견하는 숨은 뜻까지. 말에는 멋이 있다. 그래서 말은 외롭지 않다. 권혁웅 시인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맞벌이한 부모님 덕에 ‘외로울 권리’를 깨치고 닥치는 대로 텍스트를 읽었다고 전했다. 또한 오랫동안 ‘교회 오빠’로 살면서 성경을 공부하다 신화에 빠지기도 했다고 밝혔다. 그렇게 이야기와 언어를 탐닉한 덕일까. 그는 시인이 되어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서문에서 책 을 일상어들의 속내를 다룬 것이라고 썼다. 문학에서는 ‘죽은 말’ 취급을 받는 ‘일상어’야말로 삶의 현재형이자 표현형이지 않을까, 상투어와 신조어, 유행어, 은어들의 무의식에 삶의.. 더보기
귀엽고 사랑스런 벤야민 [서평] 모스크바 일기 사랑할 수밖에 없는 벤야민! 자못 심각하고 무거운 얼굴들로 알 수 없는 이야기만 설교하듯 건넬 것만 같은 무수한 사상가들의 책들 가운데서, 는 그 이면에 숨겨진 우리와 같이 웃고 울고 숨 쉬는, 다소 찌질한 듯 귀여운 인간의 생생한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책이다. 발터 벤야민의 ‘일기’는 그가 사랑했던 여인 아샤 리시스를 좇아 모스크바에서 보냈던 날들에 대한 기록이다. (책에서 드러나진 않지만) 그녀는 신경쇠약증으로 인해 모스크바에서 요양 중이고, 그렇기에 벤야민은 그의 옆을 지키는 파트너 베른하르트 라이히와 함께 그를 만나러 가는 일이 많다. 동시에 수많은 주석들이 말해주듯 벤야민의 일상은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과의 교류로 이어진다. 그는 그곳에서 박물관을 탐방하고 도시 구석.. 더보기
[오래된 현재] #1 교보문고와 청계천 헌책방 거리 2016년 3월 11일, 서울 지하철 4호선 동대문역 8번 출구 부근 현대시티 아울렛에 대형서점 하나가 입점했다. 우리가 익히 잘 아는 브랜드 '교보문고'다. 방문객들에게 동대문은 주로 패션의 집결지로 여겨졌는데 서점이라니, 의외였다. 깔끔하게 꾸며진 아울렛 한 편에 자리잡은 서점은 금세 성공했다. 오픈 첫 주말부터 방문객이 몰렸다. 하긴 동대문에는 꼭 옷가게만 들어가란 법은 없지. 책 읽을 곳이 많은 건 좋은 거니까. 이야기를 넘기기 전에, 한 가지 더 의외의 사실이 있다. 교보문고가 입점하기 57년 전에 이미 동대문엔 책방 거리가 있었다. 교보문고와 1차선 도로를 사이에 두고 이웃하고 있는 곳이다. 이름하여 '청계천 헌책방 거리'. 이들을 만나기 전에 먼저, 교보문고의 매끄러움을 잠시 들여다보자. 추.. 더보기
[오래된 현재] #프롤로그 거리에서 발견한 우리네 삶 안녕하세요, 별밤에서 ‘by 건’이라는 이름을 달고 글을 쓰는 건입니다. 언젠가부터 제가 드라마 말고도 세상 이야기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곳저곳에선 무슨 일들이 일어날까, 그 한복판에 있는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종종 궁금해 하곤 하죠. 어떤 장면, 사건, 배경, 인물에 관심을 갖는다는 건 사실 좋은 일이잖아요? 그것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가고, 때론 진실을 찾아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당장 눈앞에 닥친 일들로 인해 우리는 내 삶을 바꿀 수 있을지도 모를 장면들을 놓쳐버리곤 합니다. 우리의 삶은 의외의 사소한 지점에서 자주 바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에요. 그래서 저도 제 삶에 ‘사소하지만 중요할 의외의 지점’을 만들어보기로 했습니다. 우선 거리로 나가기로 했어요. 요즘 저는 .. 더보기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1. 에서 드러나듯, 르낭은 프로이센의 군국주의가 독일 통일 및 유럽의 발전에 긍정적인 기능을 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독일이 통일된 이후로 프로이센은 소멸되어야 (독일로 흡수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선례로 이탈리아의 통일 과정을 제시했다. 물론 프로이센에 대한 르낭의 모호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문일 것이다. 1870년 이전까지 그는 독일의 지성, 프로이센의 남성성을 동경하는 지식인 중 하나였다. (개인적으로 의 상당부분에서 그런 뉘앙스를 느끼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는 전쟁 발발 이후 프로이센을 비난할 명분을 명백히 내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로이센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는 여기서 찾아야한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맥락을 떠나서도, 르낭의 주장에는 철학적 문.. 더보기
<너를 사랑한 시간>, 지상파 버전의 <로맨스가 필요해2>가 될까? 로코의 선두주자들의 만남으로 화제가 된 . 분명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청률로는 참패를 했다. 이틀 연속 6퍼센트 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동시간대 경쟁작인 , 이 모두 10퍼센트 이상을 얻은 것과는 대조적이다. 상대 드라마가 중장년층을 공략했기에 고정 시청자들을 끌어들이지 못한 탓이다. 드라마의 초반부는 대놓고 발랄한 사랑 드라마임을 밝혔다. 아예 그런 방향일 것이라 기대했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산뜻했다. 두 주연의 연기도 무난했고(나이는 완전히 속일 수 없었으나), 내용의 흐름도 이해하기 쉬웠다. 자타공인 연출인 조수원 피디 덕에 진행도 깔끔했고, 크게 걸릴 것이 없었다. 항상 그렇듯, 너무 무난하면 인상에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오히려 내 기억에 남은 것은 모든 성공한 멜로드라..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