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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장커

<지아장커: 펜양에서 온 사나이> 중국에서 영화를 찍는다는 것 박성원이 단편 「댈러웨이의 창」에 담았던 문제의식은 같은 작품이 실린 소설집 『나를 훔쳐라』(문학과지성사) 전반을 가로지른다. 이른바 포스트모더니즘. 어려운 용어가 거북스럽다면, 다음과 같은 상황을 상상해보자. 여기 어두운 암실에는 사방이 하얀 천으로 둘러싸인 작은 상자가 있다. 상자 속에 들어 있는 촛불만이 유일하게 빛을 밝힌다. 상자 안에는 미지의 물체가 들어 있는데, 우리는 하얀 천에 맺힌 그림자를 통해서 그를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 형태는 대략적으로 보건대 토끼의 모양이다. 자, 그렇다면 질문. 상자를 둘러싼 천은 토끼라고 추측되는 대상을 보여주는가, 아니면 가리는가? 대답 하나, 보여준다. 정말? 우리는 그저 토끼처럼 보일 뿐인 그림자를 볼 뿐이다. 정말 그 안에 토끼가 들어 있다고 확신할.. 더보기
<스틸 라이프>, 이방인에서 이방인으로 “나에게는 공간과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이 똑같이 중요합니다.” 지아장커의 이 말은 영화계에서, 특히 현재 한국에선 독보적인 선언일 수 있다. 서사구조, 이야기를 강조하는 영화들이 인기를 얻고, 많이 팔리고, 그에 따라 많이 제작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옳고 그름을 따지기 전에, 경제학적 순리다. 어쨌든 그만큼 서사에서 인물이 차지하는 위치는 막대하다. 그런데 문제는 비단 ‘공간’의 소외에 국한되지 않는다. 인물을 제외한 모든 것, 그러니까 공간뿐만 아니라 소리, 시간 등 모든 요소들이 눈 밖에 난다. 인물들이 얘기하고 행동하는 공간에는 어떠한 철학적 고려의 여지가 없다. 그들은 ‘하필’ 거기 있을 뿐이다. 거기다 소리도 마찬가지. 하긴, 음악 자체가 ‘일상의 BGM’ 정도로 소비되는 현실 아닌..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