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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결코 다다를 수 없는 삼시세끼 판타지

TV를 통해 사람들은 대리만족한다. 현실에서는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TV가 구현해주기 때문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이 되어 이상형인 상대 배우의 눈빛에 떨려보기도 하고, 지구 반대편 가장 아름다운 여행지를 불과 30분 안에 돌아본다. 이처럼 TV는 불가능한 것들을 가능하게 해준다. 사람들이 그토록 TV에 열광하는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가끔은 대리만족하는 경험이 비루한 현실을 들출 때가 있다. 나는 할 수 없고 TV속 그들은 할 수 있다는 사실에 열등감이 가슴 깊숙한 곳에서 밀려오며 한숨을 발사시킨다. 그리고 현실과 TV 사이에서 이내 좌절한다. 마치 TV 전원 끄기 버튼을 누르는 나를 TV가 ‘훗훗, 이 세계에 얼씬도 하지마’라고 하며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추방해버린다고나 할까? 비현실적 세계에서 빠져나와 현실을 인지해버린 순간 슬픔이 출몰한다.

 

나는 삼시세끼 어촌편을 즐겨 본다. 금요일 저녁을 손꼽아 기다린다.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만재도라는 섬에서 옥신각신하며 어촌 생활을 이어나가는 차승원과 유해진을 보고 있노라면 괜스레 웃음이 난다. 그리고 마스코트 산체의 걸음걸이는 또 어떠한가? 아장아장 방을 누비는 그 녀석에게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한 둘이 아닐 것이다.

 

통발과 낚시대를 들고 바다로 나가 해산물을 잡고서 집으로 돌아와 요리를 해먹는다. 참으로 간단해보이지만 과정은 만만치 않다. 편집의 힘으로 먹을거리를 금방 구하는 것 같지만, 망망대해에서 생선 잡기란 양식장에서 손만 넣으면 생선을 길어 올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그럼에도 날이 갈수록 어촌 생활에 적응하면서 바다 사나이가 되어가고 있는 이들은 부족할 때는 부족한대로, 넉넉할 때는 넉넉한 대로 만족하면서 지내는 것 같았다. 만재도에서 맞이한 두 남자의 겨울은 따뜻해 보였다.

 

옥순봉 삼시세끼와 어촌편의 가장 큰 차이라면 삶이랑 떼어놓은 노동의 유무이다. 이서진과 옥택연은 고기 한 근을 구하기 위해 삶과 직접적으로 연관 없는 수수를 베야만 했다. 이에 반해 삼시세끼 어촌편은 삶과 노동이 분리돼있지 않다. 삶=노동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100% 자급자족 라이프라고 말할 수 있는 쪽은 삼시세끼 어촌편이라 할 수 있다.

 

100% 자급자족 라이프는 새로운 의미의 행복을 말하고 있다. 먹고 사는 일만으로도 충분히 기쁜 일이라는 것. 집에서 밥상에 쪼르르 둘러 앉아 차분히 밥을 먹는 것이 하루 세 번의 큰 즐거움이라는 것. 그런데 삼시세끼가 말하는 행복을 막 바로 실천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도 일하지 않고서 자급자족할 수 있는 사람은 절대소수일 것이다.

 

그렇다면 절대다수에게 삼시세끼 라이프란? 맞다. 아쉽지만 판타지다. 정말 가끔 떠나는 여행에서 누릴까 말까하는 판타지. 여행은 일 년에 한두 번 정도 떠나는 것이 통상적인 일이라면 여행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상에서 먹고 사는 것에만 집중하기란 가히 불가능에 가깝다. 일상을 돌이켜보자. 팍팍한 도시 생활에서 일에 치이고, 출퇴근길에 답답해하고, 사람들과의 이해관계에서 지치는 것? 그러다보면 먹는 일은 어느새 뒷전인 것이 우리네 일상이다.

 

삼시세끼를 즐거이 보다가 결코 다다를 수 없는 판타지라는 것을 안 순간 어쩐지 삼시세끼의 뒷맛이 씁쓸하다. 서울에서 만재도까지 12시간의 물리적 거리는 정서적으로 더욱 아득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멈출 수 없이 본방사수의 욕구를 자극하는 것은 언젠가부터 마음 깊숙한 곳에서 저런 삶을 꿈꾸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치듯 지나간다.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을 것인가, 아니면 흘려보낼 것인가. 아무래도 당장은 흘려보낼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먹고 사는 것 이외에 할 일이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사진출처: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