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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동정 없는 세상>의 결말과 관련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동정 없는 세상>에서 말하는 ‘동정’의 의미는 이것이다. “이성과 한 번도 성교(性交)를 하지 아니하고 그대로 지키고 있는 순결. 또는 그런 사람.” 그런 동정(童貞)이 없는 세상, 풀어 말하면 순결을 지키지 않는 세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렇게 상상의 나래를 펼쳐나가면 이 드라마는 굉장히 ‘야할 것’만 같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 드라마는 전혀 외설적이지도, 야하지도 않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서 흠칫하게 하는 장면, 단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드라마는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게 수능이 끝난 고3 동정 아이들의 세계를 그렸다. 어쩌면 ‘아이 동’에 ‘곧을 정’자를 쓴 곧은 아이들(童貞)의 이야기를 그렸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등장하는 곧은 아이는 차준호(이주승 분)다. 수능을 막 끝낸 열아홉 소년은 성적 욕구가 왕성해 매일 야설(야한 소설)을 쓰며 동정을 떼고자 온 힘을 쏟는다. 마침 그에게는 여자친구 윤서경(강민아 분)도 있다. 그는 서경에게 “한 번 하자”고 조르지만, 서경은 늘 아리송한 태도로 일관한다. 서경 역시 섹스는 미지의 세계였던 것이다. 그는 시기를 미루기도 하고, 한 번은 용기를 내 준호와 모텔에 들어갔다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차분히 말하기도 한다. 다행인 것은 준호도 마찬가지였다. 그 역시 그렇게 “한 번 하자”고 노래를 불렀지만 서경의 신의를 저버리는 곳(주점 노래방)에 가지 않으려 했고, 서경의 의사를 존중했다. 결국 이 둘은 모두 ‘곧은 아이’들이었다. 

준호는 결국 동정 없는 세상을 맞이하지 못했다. 수능 성적도 좋지 않아 대학 진학도 포기했다. 꿈도, 목표도 뚜렷하지 않은 준호는 두려웠다. 하지만 그에게는 주변에 좋은 사람들이 있었다. “너를 대학가게 하려고 낳지 않았다”는 그의 엄마와, 서울대를 나온 뒤 집에서만 지내며 준호의 글쓰기 재능을 발견한 삼촌이 있었다. 게다가 ‘대학가면 나를 버릴 거냐’고 묻는 준호에게 ‘여대로 진학했으니 걱정 말라’고 웃어주는 서경도 있다. 결국 준호는 세상의 지표로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지만, 사실 곧은 아이일 수밖에 없는 ‘다 가진 아이’였던 것이다. 


단순하고 직선적인 흐름의 드라마를 보면서 좋았던 건 ‘복잡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63분이라는 짧은 러닝타임에 준호와 서경의 성장기가 담겨 있었다. 대성통곡이나 분노를 하는 장면도 나오지 않았지만 한 단계 자라는 ‘동정’들의 이야기를 반갑게 따라갈 수 있었다. 어쩌면 드라마의 원작을 쓴 박현욱 작가가 본인 이야기를 남긴 것이 아닐까 싶었다. 수능이 끝나고 야설을 쓰면서 필력을 길러 온 작가가 성욕이 넘쳤던 자신의 10대를 회고하며 쓴 소설이 아니었을까 하면서 말이다. 

아울러 드라마에 활력을 더한 건 배우들의 연기였다. 주인공 차준호 역의 이주승은 1989년생의 ‘동안’ 연기자다. 이미 KBS드라마스페셜에는 세 차례나 출연하면서 단막극 역사에 한 몫을 해왔던 그는, 수많은 독립영화에도 출연한 베테랑 연기자다. 우리나라 나이로 28살을 넘긴 이주승은 열아홉 소년의 모습을 완벽하게 그려내며 드라마를 더욱 흥미롭게 만들었다. 자연스럽게 “한 번 하자”고 조르는 그의 귀여운 모습은 정말 그가 서른을 앞둔 연기자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이주승과 더불어 기억에 남는 인물은 배우 민성욱이다. 준호에게 조언을 해주는 서울대 출신 백수 삼촌 역으로 나온 그는 연극에 뿌리를 두고 영화, 드라마에서 다수의 조연을 맡은 연기자다. 특히 JTBC <청춘시대>에서 한예리를 괴롭히는 매니저 역할에 분하며 인상을 남겼는데, 이번 드라마에서 익살맞으면서도 매력 넘치는 삼촌의 인상을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몇 장면 등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이 잔상에 남는 이유다. 역할을 가리지 않고 완벽히 분하는 그의 앞으로의 행보를 기대하게 했다. 

이렇게 <동정 없는 세상>은 제목으로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어들인 뒤 기대한 바(?!)를 충족시켜주진 않지만 다른 즐거움으로 사람들에게 만족감을 선사한 좋은 작품이었다. 특히 가벼운 내용을 또 다른 격으로 올려낸 연기자들의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단막극이라고 해서 꼭 메시지가 엄청나고, 대단할 필요는 없다. 짧은 시간이라도 웃을 수 있고, 좀 더 나은 삶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면 그걸로 성공이다. 그렇기에 준호의 마지막 대사가 마음에 남는다. 


“나는 지금 씨름 중이야, 머리에 쥐날 것 같아. 근데 재밌어, 한편으로는 막막해. 근데 돌아서면 계속 생각나, 근데 또 괜히 하나 싶고” 

준호에게 글쓰기는 이런 존재였다. 열아홉, 스물셋, 서른, 쉰다섯, 예순일곱, 이밖에 수많은 각각의 나이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저런 씨름을 하게 만드는 존재가 있을까. 


by 건 


사진 출처 :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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