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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팔의 결말과 상업주의의 한계

굿바이 쌍문동. 지난 주말 우리는 <응답하라 1988>(이하 응팔)을 떠나보냈다. 가족의 정, 이웃의 따뜻함, 청춘의 설렘을 남기고 말이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화제를 남기며 세상을 뒤흔들 것만 같았던 이야기의 힘은 회가 거듭될수록 약해졌다. ‘응답하라 시리즈’가 반복될수록 발견하는 시리즈의 한계다. 

최종화가 방영된 다음날, 드마를 한 번이라도 본 사람들의 세상은 충격과 공포에 빠졌다. ‘가족과 이웃의 정’ 같은 수식어는 그나마 드라마를 분석해보려는 언론의 기삿거리로만 남았다. 대중은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라는 추측을 뒤엎은 제작진의 ‘시도 또는 쇼’에 경악했다. 방송이 끝나고 지하철을 타는 족족 ‘응팔’이라는 단어와 ‘정환이’, ‘택이’의 이름이 이곳저곳에서 들려왔던 것이 이 주장을 반증한다.

 

20회라는 긴 호흡을 이끌어가다 보면 초반에 시청자를 사로잡았던 따뜻한 분위기에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사람들은 더 큰 자극을 원한다. 후반부 갈등과 호기심을 포기한 드라마에 관심이 줄어든다는 건 MBC <그녀는 예뻤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응팔’은 이번에도 남편 찾기를 포기할 수 없었다.  

마지막 주까지 덕선(혜리 분)이의 남편을 원체 알 수 없게 만든 제작진은 시청자들을 방송 앞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정환(류준열 분), 택(박보검 분)의 팬덤이 강하게 형성된 상황에서 어느 누가 남편이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대다수의 주장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이 너무 똑똑해졌고, 제작진도 그에 걸맞게 MSG를 뿌린 것이 문제였다.

 

죠스바를 먹느라 입을 파랗게 물들여 정환에게 “무덤 파다 온 것” 같다고 핀잔을 들은 덕선이 선우의 등장에 입술을 입 안으로 말아 넣는 모습은 선우에 대한 덕선의 특별한 감정을 드러내는 동시에 정환, 덕선의 유독 경계 없는 태도 역시 보여준다. 또한 [응팔]에서 덕선과 가장 주도적인 러브라인을 형성하고, 현재 덕선(이미연)의 남편(김주혁)과 가장 유사한 말투와 태도를 보이는 것 역시 정환이다. 그리고 이러한 남녀 관계는 시리즈의 전작 tvN [응답하라 1997](이하 [응칠]), [응답하라 1994](이하 [응사])에서부터 지금까지 공통적으로 되풀이되고 있다.
(2015년 12월 15일, [응답하라] 패밀리즘 / 정환·쓰레기·윤제의 연애하는 법, 글 위근우 IZE)

 

이렇듯 시리즈의 반복으로 인해 시청자들은 그동안 제작진이 보여 온 남편 찾기 기술을 알아챘다. 위에 기사는 응팔의 법칙을 공식적으로 드러낸 단적인 예다. 인터넷을 떠돌다보면 이것보다 훨씬 자세한 증거들(화면 캡쳐)과 법칙을 늘어놓은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이 쯤 되면 제작진은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 이번에도 시청자가 예상하는(또는 대다수가 바라는) 정환이를 덕선이의 남편으로 만드는 안전한 길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지금까지 뿌려 온 개연성을 뒤엎고 택이를 선택하는 반전을 만들 것인지 고민했을 것이다. 단순히 이번 시리즈만을 놓고 보는 것이 아닌, 차기작을 감안해서라도 이번 선택은 그들 입장에서 꽤 중요한 것이었다.

 

제작진의 선택은 택이었다. 정환이의 역할을 조연 수준으로 낮추는 한이 있더라도 대중들의 관심을 포기할 수 없었다. 그리고 예상대로, 시청자는 아주 화끈하게 응답했다. 정환이(를 비롯해 류준열)에 대한 동정여론이 엄청났고, 누군가는 택이를 남편으로 환영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택이가 담배를 너무 펴서 김주혁으로 변했다고 제작진을 조롱하기도 했다.

 

만 이틀 정도 지났을까. 응팔은 tvN의 월화드라마 <치즈인더트랩>이 방영되기 전까지 드라마 키워드를 점령했다. 화끈한 반전을 선택한 만큼 뜨거운 결과다. 제작진 또는 회사의 입장에서 이번 선택은 꽤나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무리해서라도 그동안의 남편 법칙을 깨면서 수많은 비난을 얻어맞았지만 그만큼 관심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음 시리즈에서 남편 찾기를 이어갈 수 있는 개연성도 얻었다. 다음 응답하라 시리즈를 보는 사람들은 남편 찾기에 순간이 왔을 때 ‘어남(어차피 남편은)’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없을 것이다. 제작진은 차기작에서 시청자들을 방송으로 끌어들이겠다는 부분까지 생각했다.

응팔은 정말 잘 만들어졌고, 감탄과 박수를 보내 마지않는 드라마가 확실하다. 1월 중순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날씨만큼 추웠던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을 주었다는 사실이 틀림없다. 하지만 1988년의 세상을 따뜻하게 표현하다 충격의 남편 찾기로 마무리했다는 것을 볼 때 이 드라마도 결국 상업적인 계산을 했다는 평을 내리게 된다.

 

이렇든 저렇든 우리는 다음 <응답하라 시리즈>를 챙겨볼 것이다. 아니 열심히 챙겨볼 것이다. 장면 하나하나에 열광할 것이다. 과연 다음 시리즈에서는 어떤 남편으로 우리를 힘들 게 할 까. 더불어 꼭 남편만 맞춰야 하는 일인지, 아내를 맞추는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인지 하는 제안을 건네 본다.

 

- by 건

 

사진 출처 : tvN 
참고 : IZE 2015년 12월 15일 기사, <[응답하라] 패밀리즘 / 정환·쓰레기·윤제의 연애하는 법>, 글 위근우

http://ize.co.kr/articleView.html?no=2015121310277210997&page=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