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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먹거리 상품 중의 하나가 된 노량진 컵밥.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컵밥은 노량진역 육교 아래에서 만날 수 있던 명물 음식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불법 노점상이라는 사실로 인해 컵밥거리라는 이름으로 이전을 했다. 혼잡도 완화와 불법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는 걸 생각하면 이전은 필요했다. 다만 아쉬운 건 정돈되지 않은 자연스러운 매력이 사라졌다는 점이랄까. 

이전 컵밥골목을 기억한다면 반가울 수 있는 드라마가 나왔다. 가을을 맞아 다시 시작한 KBS의 단막극, 드라마 스페셜 <노량진역에는 기차가 서지 않는다>가 그것이다. 2014년 극본 공모 우수작으로 노량진 고시생의 삶을 담담하지만 절절하게 극화했다. 특히 취업을 준비하고, 각종 고시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의 공감을 사기에 충분한 드라마였다.

드라마는 컵밥골목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주인공 모희준(봉태규 분)은 4년차 학원을 무료로 다니는 수업 지도원이자 7급 교육행정 시험을 준비하는 고시생이다. 그는 메뉴가 날로 발전하는 컵밥집에서 항상 1번을 고수하고 순식간에 음식을 해치우는 ‘대충 먹자’ 족이다. 고시를 준비한 지 4년, 나이는 벌써 서른셋. 매일 삶은 변하는 것이 없지만 전쟁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가 있는 곳은 수많은 청춘들이 모인 꿈의 리그 노량진이다.

 

그는 세 번째 시험에도 떨어지고 만다. 이제는 학원 실장에게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한다. 골문에서 90분 동안 맴돌면 뭐하냐, 더럽고 치사하면 빨리 성공해라, 요즘 애들은 호강에 겨웠다, 등의 폭언을 듣는다. 하지만 그는 그저 죄송하다는 말만 연신 할 뿐이다.

 

그런 그에게 수상한 사람이 끼어든다. 어린 여자다. 그는 시험에서 떨어진 날 자살방지문구가 잔뜩 적힌 마포대교를 걸었다. 올해도 탈락이라는 말을 엄마에게 전하고, 그는 고함을 지르며 울고 만다. 끅끅대며 그는 노래를 부른다. 들국화의 사노라면. 내일은 해가 뜬다, 내일은 해가 뜬다. 이 때 수상한 여자가 후렴구를 시원하게 불러 제낀다. 웃으면서 설마 뛰어내리지는 않겠죠, 말을 건넨다. 그렇게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시작된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드라마는 사정이 어렵고, 마음도 어렵고, 상황도 안 도와주는 고시생의 삶과 티 없이 맑고 현재를 즐기는 시한부 인생의 소녀가 만나는 이야기다. 결말은 그렇게 밝게 흐르지 않는다. 둘은 사랑에 빠지지도 않는다. 그저 서로에게 빗나간 응원만을 하고 만다. 남자는 끝내 여자에게 고맙다는 말을 직접 전하지 못하고, 여자는 끝내 그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다. 하지만 드라마를 끝까지 보고 났을 때, 내 친구, 선후배, 그리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은 먹먹함을 느낀다.

 

드라마의 내용, 대사 하나하나가 지금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는 모든 젊은이의 모습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보면서 메모한 것이 너무 많았다. 그 중에서 몇몇 대사를 나눠보고자 한다. 필자와 친구들이 버릇처럼 하던 말들을 그들은 하고 있었다. 어쩌면 도약을 준비하는 당신도 방금 하고 받았을지도 모르는 그런 이야기와 행동들.  

“형, 나 진짜 겁난다. 세혁이도 가고, 형도 이렇게 가는데. 나 혼자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여기 못 벗어날까봐. 무서워.” 4번의 도전 끝에 합격한 희준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술을 먹던 고시원 동기 윤철(김정운 분)의 말이다. 혼자 남는다는 것, 혼자 견뎌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솔직하게 드러내 버린 장면이었다.

 

“고마웠어요, 진짜. 아저씨, 아저씨는 괜한 걱정 말고 아저씨 인생만 걱정하세요. 아저씨 말대로 남들처럼 사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니까 파이팅!” 마지막으로 희준에게 영상 메시지를 남긴 유하(하승리 분)의 말이다. 남들처럼 사는 것도 쉬운 것이 아닌 세상이라는 말을 그녀는 받아들이며 진심으로 희준을 응원한다.

“하면 되는 거지. 그게 세상이치다. 못난 놈들이나 세상 탓하는 거다.”
“아버지가 보셨습니까. 열심히 해도 안 될 수 있습니다. 아버지가 아시는 게 전부라고 말하지 마십시오. 제일로 중요한 게 남들 맨키 먹고 사는 거라고도, 하지 마세요. 젤로 중한건요, 사람입니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했습니다. 잘 가라는 인사도, 못했단 말입니다.” 천신만고 끝에 합격한 희준을 축하하는 가족 모임에서 아버지의 변함없는 훈계에 희준이 반발하는 장면이다. 그는 유하에 대한 미안함과 지나온 시간들에 대한 생각 때문에 이 말을 하고 펑펑 울어버린다. 마음 한 끝을 찡하게 울리는 장면이었다.

 

“노량진. 그냥 버티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잊지 않으려고. 고맙다 유하야.” 합격한 희준이 마지막으로 고시원 짐을 빼면서 보내지 못한 유하의 영상 메시지 답장을 보내면서 한 말이다. 그는 결국 그동안의 시간을 견딘 시간이 아닌, 삶의 일부로 받아들인다는 선언을 한다. 그럴 수 있었던 건, 현재의 삶을 소중히 여길 줄 알았던 유하 때문이었다.

노량진의 컵밥골목은 변해도 여전히 노량진에서의 삶은 변하지 않는다. 지금도 수많은 청춘들이 그곳에서 자신의 귀중한 삶을 투자하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절박한 순간들이다. 그들과 비슷한 처지로 무언가를 준비하고 있는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면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혹시 당신의 삶이 준비하는 과정에 지쳐가고 있다면, 삶의 소중함을 잃어버려 무미건조해지고 있다면, 이 드라마를 추천하고 싶다. 노량진역에 기차가 서지 않더라도, 우리의 삶을 운반하는 기차는 올바르게 가고 있다고 믿으며 말이다. 

 

- by 건

 

사진 출처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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