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나는 분명 웃고 있었다. 하지만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수 없었다. 행복했다. 하지만 내 마음 어딘가는 울고 있었다. SBS의 추석 특집 드라마,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을 보면서 느꼈던 감정이다. 웃고 있지만 울게 하고, 행복하지만 슬픈, 역설과 아이러니한 감정으로 가득한 드라마였다.

후속 기사에서 언급되었듯, 드라마는 명절 첫 아침부터 사람들을 울렸다. 대부분의 댓글은 이랬다. 하릴없이 아침에 뒹굴다 TV를 틀었는데, 보다보니 자세를 고쳐 앉게 되었고, 결국엔 눈물 콧물을 쏙 빼고 말았다고. 정확한 표현이었다. 나 역시 드라마를 보며 똑같은 과정을 겪었다. (옆에 부모님이 계셔 눈물 콧물은 가까스로 참아냈다)

 

“우리가 삶을 사랑하는 것은 삶에 익숙해져서가 아니라, 사랑에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니체의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한 구절에서 드라마는 시작되었다.

 

27살의 꽃다운 여자, 장미주(경수진 분)는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상처가 많아 삶의 태도에 가시가 돋친 장미 같은 여자다. 철학을 전공하며 대학원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그녀에게 들려온 소식은 박사 취득이 아닌, 뇌종양으로 인한 시한부 선고다. 삶을 지속하겠다는 의욕이 없는 그녀는 죽음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리고 혈혈단신인 자신의 장례식을 챙겨줄 사람을 찾기 시작한다.

그 때, 그녀는 우연히 자신의 아파트 벽을 칠하는 페인트 도색공, 박동수(최우식 분)를 마주친다. 그것도 아파트 베란다의 창문을 사이에 두고. 동수는 이내 미주를 알아본다. 동갑내기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그의 첫 사랑이었다. 드라마는 현재와 과거 회상을 종종 오가는 기법을 활용해 두 사람의 관계를 그려낸다. 동수는 미주를 처음 본 순간부터 막무가내로 들이댄 무모한 남자다. 이후에는 순수하고, 정직하고, 신실하고, 착하고, 든든하고, 섬세하기까지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삶을 바치는 남자로 거듭난다. 소위 ‘로또’ 당첨에 버금가는 남자다.

 

최우식과 경수진, 이 두 배우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싶다. 흔히 우리가 말하는 대박 배우는 아니다. 하지만 <호구의 사랑>, <아홉수 소년> 과 같은 작품을 통해 장편의 주연으로도 호흡을 잘 끌어갔던, 연기력이 충분히 뒷받침되는 배우들이다. 내용을 압축해 전개해나가야 한다는 단막극의 특성상, 배우들이 자신의 모습에 사람들이 감정을 이입할 수 있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 중요하다. 두 사람은 그 저력을 확실하게 보였다.

최우식은 참 선한 얼굴을 가진 배우다. 쌍꺼풀이 없는 그가 빙긋 웃는 모습을 보면 시청자로서도 흐뭇한 표정을 짓게 된다. 언뜻 보면 조승우의 젊은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 그가 자신의 장점을 120% 살린 연기를 이번 단막극을 통해 선보였다. 막무가내로 첫사랑에게 들이대는데도 부담스럽거나 밉지 않다. 10년 후에 다시 만났을 때도 그는 여전히 막무가내지만, 싫다기보다 귀엽다. 중간에 미주의 병실 동료 아주머니가 그를 귀여워하는 연기는 아마 진심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여자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맞아가면서 사과하라고 빌고, 아파하는 여자를 위해 무모하게 약국을 무단침입하기도 하고, 자기 앞에 나타나지 말라는 여자의 말을 끝까지 신실하게 지켜내고, 또 마지막 장례식 때 여자를 처음 봤을 때 봤던 광경을 기억해 재현하기까지 하니, 얼마나 엄청난 남자인가! 현실에 과연 있을까 싶지만, 그의 자연스러운 외모와 연기가 이 상상을 판타지가 아닌 현실로 그려지게끔 한다. 그것이 바로 배우 최우식이 가진 힘이었다.

 

경수진 역시 손예진 닮은꼴에서 완전히 벗어나 ‘배우 경수진’의 존재감을 확실히 심어줄 수 있는 연기력을 보였다. 너무 깊은 신파에 흐르지 않도록 최우식과 좋은 화학작용을 일으켰다. 동수와 가까워진 미주가 선배에게 자신은 장례식을 하지 않겠다고, 자신은 죽을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동수 때문에 살고 싶어졌다는 것이 너무 괴롭다고 말하며, 울면서 그 이유는 걔가 너무 좋기 때문이라고 고백하는 장면은 마음에 오래도록 남을 따뜻한 장면이었다.

 

드라마는 여러 우여곡절과 에피소드를 겪으며 관계를 형성하고, 깊어진다. 동수와 미주의 사이는 이루 말할 것도 없고, 다른 이들과도 화해를 향해 나아간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미리 하는 장례식’을 하면서 모두가 한 자리에 모여 미주의 아름다운 새출발(죽음이라고 표현하지 않겠다)을 축하한다. 동수는 남편의 역할로, 미주는 아내의 역할로, 그리고 오랫동안 원망했던 미주의 엄마와도 화해를 하며 드라마는 마치 결혼식을 하는 것처럼 끝났다. 장례식이 결혼식이 된 역설적인 장면이었다.

실제로 죽음을 앞둔 부부가 결혼식을 하는 이야기를 이따금씩 들은 적이 있다. 드라마는 그 이야기를 장례식을 미리 하는 설정으로 바꾸었다. 하지만 그 장례식은 슬픈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결혼식을 연상되게 만드는 것. 이것이 제작진의 의도였던 것 같다. 결국 미주는 동수에게 선물(심장)을 남기고 떠난다. 2시간 웃으면서, 울면서 맞이한 아름다운 결말이었다.

 

한 가지 더, 단막극이고 또 명절을 위해 만들어진 극답게 드라마는 클리셰로 점철되어있었다. 하지만 싫지 않았다. 중졸이지만 그림을 잘 그리는 동수가 호스피스 시설에서 창문도 가리고 사는 미주를 위해 몰래 활짝 핀 장미를 그리는 장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작품 ‘마지막 잎새’를 떠올릴 것이다. 아, 맞아. 그런 이야기가 있었지, 하면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수도 없이 교과서에서 배워 온 이야기인데 감동적이었다. 클리셰를 클리셰답지 않게 쓴 힘이다.

많은 사람들이 퍽퍽해져버린 명절 문화에 아름다운 꽃을 선사한 것 같은 이 작품에 박수를 보내고 싶어졌다. 혹시나 드라마를 놓친 사람이 있다면 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하고 싶기도 하다. 여전히 우리의 명절은 감사한 것이지만, 종종 힘든 현실에 이 때마저도 좌절감을 누릴 때가 있다. 젊은이들은 이미 명절을 반납했다고 수많은 언론에서 떠들어대고 있다. 사정이 어렵기는 방송국도 마찬가지다. 특집 드라마보다는 앞으로 더 오래갈 수 있는 예능을 만들거나, 제작비 투입대비 높은 시청률을 보장하는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제작비가 부족해서, 시청률이 떨어져서 아무도 하고 싶어 하지 않는 명절 드라마를 한 제작진이 만들어 냈다. 휴일을 맞이한 첫 날, 우리의 마음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 단막극을 만들어 주었음에 감사한다.

 

“오늘이 내 인생 마지막일지도 몰라. (중략) 내가 지금까지 사랑한다고 말한 적 있나? 사랑해.”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이 명절을 맞이한 우리에게 건네는 메시지다.

 

- by 건

 

사진 출처 : SB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