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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시 개강이다. 벌써 9번째. 그러니까 내게 이번 가을 학기는 4년 동안 채우지 못한 학점을 따기 위한, ‘추가학기’다. 단 2학점이 모자랐다. 여름 계절 학기에 들어야지, 했는데 몇 개 개설되지도 않은 강좌들을 노리는 수많은 경쟁자들을 따돌리지 못하고 그만...

여기까진 대외적인 변명이다. 솔직히, 아니 더 엄밀히는 무의식적으로, 막연한 ‘백수’생활에 대한 불안이 컸다. 취준생은 노력이야 가상하다 하더라도 어쨌든 백수고, 백수는 곧 낙오자니까. 아직까지 학생이라는 편안한 신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나보다. 다행이 2학점을 들으면 학비의 1/6만 내면 되었다. 그 정도 돈이면 반 년 동안 알바로 모은 알바비로 충당할 수 있었다. 계절학기 수강신청 날, 나는 이상하리만치 게을렀고 예상보다 빨리 수강 정원은 가득 찼다.

 

올해도 ‘어쩔 수 없이’ 지난겨울 방 한 구석에 고이 둔 겨울 코트를 꺼내 입고 수업을 들어야 하겠지만, 또 그만큼 나를 위로해주는 것도 없겠다. 그러니 감사하자. 나의 실수를, 실수를 빙자한 비겁을, 정말 마지막이 될 나의 대학 생활을. 거기다 나의 정서적 메마름과 점점 무거워질 불안을 메워줄 영화들도 어김없이 개봉하니까.   

 

<이민자> - 9월 3일 개봉

 

1921년. 아메리카 드림이라는 허상을 좇아 에바(마리옹 꼬띠아르)가 동생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다. 하지만 그녀의 동생의 입국은 거부되고 만다. 맨해튼 혼자 남은 에바는 부르노(호아킨 피닉스)의 주선을 통해 일자리를 얻는다. <이민자>는 에바와 부르노, 그리고 에바가 우연히 만나는 마술사 올란도(제러미 레너) 이 셋을 중심으로 1920년대 미국, 맨해튼과 그곳에서의 마주침, 처절한 삶, 그리고 사랑을 다룬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 포인트)

 

1. 경계인으로서 이민자의 불안을 어떻게 형상화 했을까?

 

얼마 전 <시의 힘>(현암사, 2015)이라는 책을 출간한 서경식 교수는 재일동포 2세로서 자기의 정체성을 ‘경계인’으로 표현한다. 스스로 ‘경계인’이라고 규정하기까지 서경식 교수의 개인적·경험적인 고통과 불안을 내가 짐작이나 할 수 있겠냐마는, 여기서 ‘경계인’이란 일본에서 태어난 조선혈통으로서 일본과 한국 그 어디에서도 안주하지 못하고 꼭 그 사이에서 부유하는 존재를 의미한다고 간략히 정의하는 게 큰 실례는 아닐 것이다.

 

여하튼 그런 의미에서라면 이민자들도 일종의 경계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경계인으로서 서경식 교수 등 재일동포 2세들은 ‘선험적’(경험 이전의) 경계인인 반면, 이민자들은 스스로 경계인의 삶을 선택했다는 점에서 ‘의지적(혹은 경험적) 경계인이라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까. 타국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기 위해 찾아온 타자들. 그들은 모국과 타국의 명확한 경계 위에 서 있지만, 타국의 삶에서 모국의 기억은, 모국과 타국을 가르는 경계는 흐릿해진다. 영화가 이 경계인으로서 이민자를 어떻게 형상화했을지 기대하고 있다.  

 

2. 호아킨 피닉스와 마리옹 꼬띠아르

 

평소 배우에게 열광하는 편이 아니지만, 그럼에도 내게 호아킨 피닉스를 아주 깊게 각인한 영화가 두 편 있다. 마스터(필립 세이무어 호프만)에게 자기의 존재를 모두 맡기고 내려놓으면서, 동시에 마스터의 불안을 한껏 떠안는 프레디 퀠의 역설적 위치를 아주 훌륭하게 소화해냈던 <마스터>(폴 토마스 앤더슨, 2012)와, 지금 시대로 치면 ‘오타쿠 문화’의 연장선상에 있는 근 미래. ‘한갓’ 운영체제(OS) 사만다(스칼렛 요한슨)와 사랑에 빠져, 잠시 잊었던 자기의 언어를 찾아가는 동시에 그 언어를 빼앗길까 전전긍긍하는 테오도르를 연기했던 <그녀>(스파이크 존즈, 2013).

 

그런데 <이민자>의 예고편과 관련 내용들을 보니, 호아킨 피닉스가 맡은 부르노라는 인물에 프레디 퀠과 테오도르의 모습이 오버랩 되는 것 같았다. 말하자면 내가 열광했던 호아킨 피닉스의 모습을 한 영화에서 몰아 볼 수 있는 셈. 어찌 기대하지 않을 수 있으랴.

 

거기다 에바 역을 맡은 마리옹 꼬띠아르에 대해 감독 제임스 그레이는 재미있는 얘기를 했다. 제임스 그레이는 배우이자 감독이며 기욤 까네와 <블러드 타이즈>(기욤 까네, 2013)의 각본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마리옹 꼬띠아르를 처음 만났다. 그는 한눈에 그녀의 고혹적인 매력에 푹 빠졌고, 이후 <이민자>의 캐스팅을 하는 과저에서 에바의 적임자로 마리옹 꼬띠아르르 지목한다. 그런데 마리옹 꼬띠아르는 기욤 까네의 아내. 좀 과장하자면 제임스 그레이는 ‘남의 아내’에게 첫 눈에 반해버렸던 셈이다. 예고편으로만 얼핏 봤지만, 마리옹 꼬띠아르는 참으로 매혹적인데, 이는 사실상 그녀를 향한 제임스 그레이의 시선이 아니었을까. 만약 사실이라면, 윤리적으로나 개인적으로나 불쾌할 수도 있겠지만, 영화에서라면 대환영이다. 그만큼 에바는 최대한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묘사됐을 테니까.

 

 

 

<침묵의 시선> - 9월 3일 개봉

 

나름 영화를 좋아한다고 자부하면서도, 한 감독의 영화를 싹쓸이하듯 본 경험은 별로 없다. 그런 경험은 둘 중 하난데, 정말 그 감독의 팬이 되었거나(이창동, 이윤기, 홍상수, 김기덕 등) 아니면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짧은 경우다. 아직 <침묵의 시선>을 본 건 아니지만, 단언컨대 이번 주에 개봉하자마자 보러 갈 것이므로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조만간 내게 후자의 감독이 될 테다.

 

조슈아 오펜하이머의 필모그래피는 매우 짧다. 단 두 편의 영화만을 찍었으니까. <액트 오브 킬링>(2012)을 봤던 게 벌써 작년 겨울이었다. 영화를 보고 난 뒤 머릿속에선 수많은 이미지들과 말들이 맴돌았지만,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 영화에 대한 나의 침묵은 어쩌면 뒤섞인 나태함과 무관심 때문일 수도, 언어를 벗어난 시각적 폭력과 충격에 굴복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어쨌든 아직 마무리되지 않아 어떤 ‘충격의 덩어리’ 정도로 남아 있는 <액트 오브 킬링>의 기억을 더듬으며 <침묵의 시선>을 보러 가련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 포인트)

 

<액트 오브 킬링>, 그리고 <침묵의 시선>

 

<액트 오브 킬링>과 <침묵의 시선>은 어떻게 다른가. 지금 내가 아는 거라고는 설정의 차이에 불과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여러 추측이 가능하다. 두 영화는 모두 1965년 인도네시아 군부정권의 대학살을 다룬다. ‘반공’이라는 명분하에 당시 군은 수많은 이들을 죽였다. 하지만 40년 후 현재 학살범들은 인도네시아에서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액트 오브 킬링>은 그 학살범들을 직접 카메라에 담는다. 그들을 위한 영화를 제작하겠다고 속인 뒤, 자신들의 학살 행위를 카메라 앞에서 재현해 달라 주문한다. 반면 <침묵의 시선>은 철저히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불러들인다. 그러니까 이 영화들은 둘이자 하나다. 두 영화는 독립적으로도 각자 의미 있는 위치에 있지만, 두 영화가 하나의 ‘증언’, 즉 다큐멘터리가 될 때 그 의의는 단순히 둘의 합을 넘어선다. 비유컨대 ‘1+1’이 ‘3’이 된다고나 할까.

 

이 두 영화를 모두 보는 것은, 단순히 한 감독을 보다 면밀히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영화 자체에 대해서, 더 나아가 영화가 지시하는 것, 즉 1965년의 인도네시아와 2014년의 인도네시아에 대해 한층 더 가까이 가는 순간이 되리라. 

 

 

 

<영도> - 9월 10일 개봉 vs. <사도> - 9월 16일 개봉

 

연쇄살인자의 아들은 도대체 어떤 삶을 감내해야 할까. <영도>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연쇄살인마’의 아들로 살아가는 영도(태인호)를 비춘다. ‘괴물’이라고 불리는 영도는, 그렇다면 무엇을 먹고 자랐기에 ‘괴물’이 될 수밖에 없었을까.

 

<사도>는 뒤주에 갇혀 죽은 사도세자와 아버지 영조의 갈등을 다룬다. 완벽한 왕이 되고자 했던 영조와, 그런 아버지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사도. 둘 사이의 비극은 지극히 개인적인 가족사이자, 동시에 조선의 역사적 사건이다.

 

지극히 주관적인 관람포인트)

 

가깝고도 먼 <영도>와 <사도>

 

콘텐츠판다가 배급하는 독립영화 <영도>와 쇼박스가 배급하는 <사도>는 많이 다르다. 우선 영화관 배정이나 예상 관객 수부터 <사도>가 압도적일 게 뻔하다. <영도>는 몇몇 독립, 예술영화 전용관이나 CGV 아트하우스 쯤에서 겨우 상영되지 않을까. 거기다 캐스팅은 어떤가. <사도>의 주연, 송강호, 유아인, 문근영. 주연급 조연 박원상과 김해숙, 그리고 특별출연 소지섭까지. 반면에 <영도>에서 낯익은 얼굴은 사실상 태인호뿐이다. 그것도 태인호라는 이름보다는 ‘성대리’로 잘 알려져 있지만. 내용에서도 마찬가지다. <영도>의 시간대가 현재라면, <사도>는 조선시대다.

 

하지만 어딘가 둘은 닮았다. 우선 제목이 두 글자며, ‘도’로 끝난다. 거기다 영도와 사도 모두 이름이다. 여기까진 ‘뭐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냐?’ 할 수도 있지만, 결정적으로 두 영화는 모두 아버지와 아들을 다룬다. 거기다 둘은 사이가 안 좋을 뿐만 아니라, 원망과 증오가 불 뿜듯 끓어오른다. 물론 <영도>는 보다 영도가 사회와 맞닥뜨리는 과정에 초점을 맞출 것이며, <사도>는 영조와 사도의 관계를 중점적으로 파헤칠 것이다. 그렇지만 역시 둘 영화는 에두를지라도 가까이 있다. 영도가 분노하고 비명을 외치는 세상은 교도소 어딘가에 갇혀 있을 아버지와 다르지 않다. 마찬가지로 영조와 사도의 지극히 개인적인 갈등은, 곧 조선이라는 나라 전체의 혼란이다.

 

이런 유사한 점들을 중심으로 두 영화를 함께 본다면, 대중(상업)영화와 독립영화가 각각 지닌 결의 차이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by 벼

 

* 사진출처: 다음영화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별밤 별밤러 2015.09.02 03:19 신고

    이민자 예고편 영상을 잘못 끌어왔네요 영상은 동명의 다른 영화입니다 ㅜㅜ

  2. ㅇ#ㅣㅈㅂㄷ 2015.09.02 07:46

    수정 안되나요?
    사도가 정말 기대되요~

  3. js 2015.09.02 20:00

    재밌게 읽었습니다!

  4. 영화다시보기 2015.09.03 15:10

    사도가 진짜 너무 기대되요 엔트맨이야 재밌을꺼고
    사도가정말..정말 괜찮은 영화일듯

  5. 홍칼 2015.09.03 20:31

    영도가 훨씬 강렬해~

  6. 2015.09.03 22:49

    액트 오브 킬링은 우리나라와 상황이 같아서 더 인상 깊었습니다...보면 볼수록 대한민국의 누군가들이 생각나게 만들었죠..

  7. 1 2015.09.04 09:42

    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ㅇ

  8. 2015.09.07 17:17

    비밀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