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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단막극 다시보기

<KBS 드라마 스페셜 2015 귀신은 뭐하나> 서로 사랑하기라는 마법을 전한 이준의 연기

‘마법사’라는 단어, 언뜻 들으면 참 멋진 단어지만 남자들의 세계에서는 이중적으로 해석되는 단어다. 그들에게 ‘마법사’는 스물다섯이 넘도록 연애를 하지 않았거나, 경험이 없는 남자로 마법을 부릴 수 있다는 의미로 이해된다. 그런 ‘연못남(연애 못하는 남자)’를 조롱하는 ‘마법사’라는 단어로부터 하나의 편하게 볼 수 있는 드라마가 만들어졌다.

방학 시즌을 맞아 다시 시작된 <KBS 드라마 스페셜 2015>의 첫 작품, <귀신은 뭐하나>가 바로 그 드라마였다. 사실 KBS가 내치려했던 단막극을 PD들이 사수해서 지켜낸 만큼, 현재 방영되는 단막극의 가치는 더욱 귀중하다. 신인 제작진, 배우들의 등용문이기도 하며, 크게 주목받지 못한 사람들이 재조명 되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름 그대로 단막극은 ‘짧고 굵게’ 시청자와 승부를 봐야한다. 70분이라는 시간동안 자신들의 능력을 무대에서 맘껏 춤을 추듯 드러내야 하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생각해봤을 때, 동정남, 연못남인 ‘마법사’ 남자 주인공이 등장하는 것, 그리고 그가 헤어진 전 여자친구의 영혼을 보는 설정은 그렇게까지 신선하지는 않았다. 특히 이후의 전개에 첨가된 여자 주인공은 병은 더욱 그러했다. 하지만 항상 단막극은 당연한 이야기를 꺼내지만 한 번 보기 시작하면 시청자를 드라마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하는 힘이 있다. <귀신은 뭐하나>도 그런 작품이었다.

이 드라마에서 가장 큰 힘을 느꼈던 부분은 주연 배우의 연기였다. 아이돌 출신 배우 이준, 그는 이번 드라마가 자신이 백수로 지내는 것이 싫어서 한 것이라 말했지만, 확실히 자신이 잘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어서라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았다. SBS <풍문으로 들었소> 작품에서도 지질하고 부족한 남자의 연기를 잘 보여준 것은 사실이었으나, 이 드라마에서는 전 여자친구와의 헤어짐으로 인한 스트레스로 발기부전이 된 지질하다 못해 못난 남자의 전형을 잘 보여줬다. 이준의 연기를 보고 좋다고 평을 내리고 싶은 순간은 그가 망가짐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다. 그리고 그 망가짐을 자연스럽게 소화할 때다. 많은 배우들이(이제는 덜 그렇지만) 망가지기를 꺼려할 때 시청자들은 거부감을 느끼고, 또 무리하게 망가지려 할 때 또 거부감을 느낀다. 이준은 그 묘한 경계 사이에서 중심을 잘 찾은 듯 했다. 발기부전에 귀신을 보는 ‘마법사’ 남자가 헤어지고 죽은 여자친구의 사랑을 깨달아가는 호흡을 끊이지 않게 이끌어갔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음) 드라마의 구조를 요약하면 이렇다. 남자주인공은 전 여자친구에게 처참하게 차이면서 충격으로 인해 발기부전이 된다. 남자의 머릿속에는 그 여자와의 최악의 장면만이 맴돈다. 고통 받던 남자는 병원에 갔다가 죽어서 귀신이 된 그 여자를 만난다. 하지만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여자를 보며 호기심에 그녀를 돕다가 진실을 알게 된다. 자신을 까맣게 잊고 다른 남자를 찾으려는 줄 알았던 그 과정이 생전 알츠하이머라는 병 때문에 그랬던 것임을, 그리고 다른 남자는 자신을 찾기 위한 도우미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고 오열한 남자였지만, 사실은 바뀌지 않았고, 다만 여자의 사랑을 제대로 깨닫고 ‘사랑’ 이라는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그렇게 드라마는 마지막에 꾹꾹 눌러왔던 가치를 말한다.

 

“그냥 막연하게 슬프고 두렵다고 생각했던 저 세상에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시간이 흐른다는 것.

그리고 그 곳으로 떠난 사람들을 위해 여기에 남은 사람들이 더 열심히 행복하게 산다는 것.

서로를 기억하는 마음들이 모여 반짝이는 건,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매느라 아직 돌아오지 못한 그들을 위한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라는 것.”

 

살아있는 우리가 다시 열심히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유를 제시하며 드라마는 마무리된다. ‘서로 사랑하기’라는 가치를 마지막에 다시 전해준다는 것. 거기서 나는 드라마의 가치를 발견했다. 아무리 뻔한 설정과 대사들로 점철되어 있더라도 시청자가 ‘서로 사랑해야겠다’는 생각을 품으면 그 드라마는 가치를 실현한 것이라고.

 

사진출처 : KBS2

 

- by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