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주말이다 영화야

<마이 페어 웨딩>에 대한 두 가지 키워드

결혼식에서 ‘서로 인사하고 축하하고,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앞에 서서 사랑을 맹세하는 두 남녀뿐이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청춘을, 사랑을, 연애를 매번 풀어내는 소설가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결혼식을 치르고 난 뒤에야 광수는 결혼이 남녀 사이가 아니라 집단 사이에 성립되는 상호증여의 한 형식이라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혼은 제도고, 계약이자 규약이다. <마이 페어 웨딩> 속 김조광수의 말을 빌리자면, 연애에서 ‘일 번’은 사랑이지만, 결혼에서 ‘일 번’은 계약이다. 결혼의 밑바닥에는 감정적 상호작용(사랑)이 아니라, ‘계약 기간 동안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암묵적 의무이자 금기가 굳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2013년 9월 7일, 김조광수 김승환 동성커플이 청계천에서 공개 결혼식을 올렸다. <마이 페어 웨딩>은 그들의 결혼 준비과정과 결혼식을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영화는 예고편의 분위기처럼 유쾌하고 경쾌하게 진행되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영화는 심오하고 역설적인 상황을 놓치지 않았다. 그들은 분명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식을 결정했으나, 이 인과관계는 생각보다 명확하지 않았다. 위에서 말했듯, 결혼에서 사랑은 부차적인 것이기도 하니까.

 

1. 사랑과 동성애 운동 사이

 

거기다 더 큰 문제는, 그들에게 결혼식은 동시에 성수자 인권 ‘운동’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내 김조광수 커플은 사랑으로서의 결혼식과 운동으로서의 결혼식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아니, 차라리 그들은 결혼식 자체가 하나의 제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결혼식이라는 ‘퍼포먼스’ 자체는 오로지 사회 운동을 위한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거기서 ‘사랑’을 찾아내려 고군분투했다. 그건 결혼 준비 과정에서 종종 갈등으로 표출되었다.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 질문을 하나 해보자, 공개 결혼식을 기획한 까닭은 무엇인가? 영화 초반에 나오듯, 그들의 결혼식에 대해 성소주자 혹은 단체는 마냥 두 팔 벌려 환영하진 않았다. 다양한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그럴듯한 이유는 결혼이라는 제도 자체에 대한 반감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결혼이란 제도권 밖에서 소외받는 성소주자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가고자 몸부림치는 것밖에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김조광수 커플을 포함한 동성애자들에게 있어 결혼이란 ‘권리’다. 좋든 나쁘든, 이성애자에게 선택할 수 있는 결혼을 동성애자들은 선택할 수 없다. 그들에게 이건 부당한 처사였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결혼식이란 이성애자처럼 결혼할 ‘권리’를 되찾는 일종의 투쟁인 셈이다. 인터뷰에서 누누이 말하듯, 그들은 결혼하지 않고도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아왔다. 심지어 김승환은 결혼식이 다가올수록 김조광수와의 사랑에 회의를 느끼고 의심한다.

 

이런 점들로 미뤄봤을 때, 결혼이 결코 그들 사이의 관계를 위한 게 아니라는 것과, 그들이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거기다 그들의 결혼은 단지 ‘개인’의 혹은 권리의 문제도 넘어선다. 그들은 결코 개인이 아니다. 그들은 개인이기 이전에 성소수자다. (이 말이 이상하게 들릴지도 모르지만, 곱씹어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때로 본질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들의 결혼은 한 개인과 한 개인의 관계맺음이 아니라, 성소수자의 금기에 저항하는 하나의 운동이다. 그러니까 문제는 그들의 ‘사랑=운동’이라는 이중적인 위치에 있다. 개인이면서 동시에, ‘성소수자’로서의 위치.

 

‘운동권 선배’ 출신 김조광수는 결혼식에 확신을 갖지 못해 힘들어하는 김승환에게 끊임없이 사랑으로서 결혼식을 강조한다. 결혼식이 며칠 안 남았음에도, 사랑하지 않는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결혼식을 취소할 수 있다고. 중요한 건 우리가 사랑하고 자기가 행복하기 때문에 결혼식을 하는 거라고. 하지만 어쩐지 그 말은 공허하다. 결코 그런 일은 없으리라는 걸 둘 다 알고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결혼 문제를 좌우할 힘이 그들에게 더 이상 없다는 것도 말이다.

 

2. 마이 멜랑꼴리 웨딩?

 

 

그런 맥락에서 영화가 결혼식을 보여주는 방식은 의미심장하다. 영화 준비 과정을 보여주며 영화는 시종일관 경쾌했다. 배경에 깔린 음악도 그렇고, 깨알 같은 CG도 그랬다. 무엇보다 그들 사이의 갈등마저 영화는 다소 가볍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예컨대, 거실에서 김승환을 인터뷰하는 쇼트에서 카메라는 멀찌감치 떨어져있는 김조광수부터 화면에 담는다. 이후 카메라는 목소리를 따라 팬(카메라가 고정된 채 회전)하자 김승환이 프레임 인한다. 그 쇼트에서 김승환은 이제 프레임 아웃한 김조광수를 힐난하고 있었다.

 

그런데 영화가 궁극적으로 도달한 결혼식 씬의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어딘지 음울하고 멜랑꼴리하다. 물론, 이건 결혼식 ‘씬’을 말하는 거지 결혼식 자체를 말하는 건 아니다. 결혼식이 어떤 분위기로 진행됐는지, 그 자리에 없었던 나로선 알 도리가 없다. 그런데 영화에서 결혼식을 보여주는 방식은 확실히 멜랑꼴리했다.

 

 

예컨대 그 이전까지 한 번도 쓰지 않았던 슬로 모션이라든지, 그 위에 삽입된 ‘무조성’ 멜로디는 어딘지 불편하고 답답했다. 이러한 방식은 짐작건대 위 꼭지의 연장선상에 있다. 사랑과 운동, 이중성을 지닌 결혼은 비유컨대 김조광수 커플의 ‘골인’이 아니라 ‘오프사이드’였다. 줄어가는 d-day에 그들은 ‘수능을 앞둔 듯’ 걱정근심에 힘들어했으며, 이 길이 맞는지 의심을 품기도 했지만, 앞만 보며 달렸다. 하지만 마침내 도달한 그곳에서 그들은 행복을 맛보는가.  거기서 그 둘은 온전히 둘로서 결혼식을 올리는가. 결혼식에서 오직 그 둘만이 소외되어 보이는 건 왜인가?

 

결혼식 중에 오물을 투척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나는 그 이후 김조광수 커플의 말을 잊지 못한다. 그들은 담담해 하며, 엄밀하게는 담담한 척 하며 말한다. “여러분 동요하지 마세요. 저희는 행복합니다. 저희는 행복합니다.”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다. 슬프게도 나는 행복하다는 말이 행복해야 한다는 당위로 들렸다. 이 결혼식을 망쳐선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 나는 어떤 일이 있어도 행복해야 한다.

 

 

어느새 결혼식은 결혼식을 위한 결혼식이 되어 있었다. 사랑이 ‘일 번’이라며 서로를 위안하던 둘에게도 역시 대중 앞에선 ‘여러분’이 ‘일 번’이 되었다. 참으로 멜랑꼴리한 결혼식이 아닐 수 없다. 그들에겐 언제쯤 결혼을 ‘버릴’ 수 있는 시기가 찾아올까. 언제쯤 그들은 ‘사랑=운동’이라는 이중적 위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 사진출처: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