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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대한 세 가지 키워드

아니,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이 정녕 두 시간이라니.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이후 <매드맥스>)의 상영 시간은 네이버나 다음이나 어딜 가서 찾든 ‘120분’이라 명시되어있다. 혹시 아직도 영화에 홀려있는 이라면 믿기지 않을 숫자일 테다. 직접 찾아봐도 좋다.

 

그 덕분일까. 영화관에서 으레 밝혀지곤 하는 핸드폰 액정이 이번만큼은 잠잠했다. 요새 중고등 학생들이 영화관에 가는 것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핸드폰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매드맥스>야말로 중고등 학생들에게 추천해야할 영화 1순위리라. 그야말로 영화에 압도되어 모든 것을 잊을 테니까.

 

 

그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데이트 수단 등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주목하길! <매드맥스>를 통해 그대들은 영화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을 좌지우지하고, 숨을 가파르게 할 수도 있으며, 목을 가득 채우는 갈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영화관을 나서며 겨드랑이에 축축하게 고인 땀방울은 덤이다. 다행이 아직까지 저녁은 선선하다.

 

1. 선택 – 허술한 배경설정

 

예상대로(‘지극히 주관적인 5월 개봉 기대작 네 편’) <매드맥스>는 판타지였고, 거기에 그렇다할 만한 서사는 (필요) 없었다. 가까운 미래. 맥스(톰 하디 분)는 임모탄(휴 키스-번 분)의 독재 하에 있는 ‘서머시티’에서 피 수혈자로 잡혀 들어간다. 우연한 계기를 통해, 맥스는 임모탄의 다섯 여자를 데리고 도망치려는 퓨리오사(샤를리즈 테론 분) 무리에 합류하게 된다. 영화의 큰 줄거리는 이게 전부다.

 

개인적으로 서사를 단순화 한 것은 다분히 전략적인 결정이었다고 본다. 완전히 다른 세계를 다루는 판타지 장르에서 해당 세계에 대한 정초작업은 필수다. 그야말로 판타지에서 작가는  하나의 완전한 세계를 마련하는 신적인 존재가 되어야 한다. 말은 쉽다. 하지만 J.R.R. 톨킨이 그의 세계를 정초하기 위해 투자한 엄청난 시간을 생각해보자.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지 않는 판타지란, 이를테면 꽝이거나 기존에 기획된 세계에 빚 진 결과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톨킨의 세계에 숟가락을 얹어 왔는지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매드맥스>의 세계는 좀 이상하다. 조지 밀러는 현실 세계와 아예 단절하지도 않으면서도 동시에 현실세계와는 다른 세계를 그렸다. 말하자면 <매드맥스>는 일반적인 판타지의 문법을 따르고 있지 않다. 이미 마련된 세계를 활용하지도 않는다. <매드맥스>의 세계는 <매드맥스>만의 세계다. 그런데 위에서 말했듯, 판타지적인 세계를 창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조물주를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듯. 

 

여기서 방향은 둘 중 하나다. 우선, 그럼에도 있는 힘껏 독창적인 세계를 구축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영화는 세계를 묘사하는 데 굉장히 신중을 기할 것이며, 아무래도 배경설정이라든지, 내러티브가 전면화 될 가능성이 높다. 원작이 소설이긴 하지만, <블레이드 러너>(리들리 스콧, 1982)가 이 경우에 해당하지 싶다. 다른 하나는 아예 새로운 세계에 대한 집중을 다른 데로 옮기는 방법이 있다. 새로운 세계를 완전히 구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므로, 차라리 그 세계를 흐릿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다. 마치 세계가 원래 그렇게 주어져 있는 것 마냥 묘사하면 그만이다. 동시에 세계(엄밀히 말하면 배경) 외부의 요소들에 초점을 맞추면 된다. 이 중에 <매드맥스>는 후자의 전략을 취했다.

 

2. 집중 – 도로와 탈것!

 

영화를 보기 전, 나는 세계로부터 초점을 빼앗아갈 대상이 캐릭터일거라 짐작했다. 강렬한 캐릭터들을 전면화시킴으로써 서사나 배경 따위는 잊게 하는 전략을 취할 줄 알았다. 하지만 영화는 내 예상보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인물들의 분장이나 의상, 특성, 상황 등이 꽤 인상적인 것은 사실이었지만, 캐릭터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정말 중요하고, 영화의 흐름을 압도하는 것은 분노의 도로와, 그 위를 달리는 탈 것이 다였다.

 

말하자면 <매드맥스>에서는 세계뿐만 아니라, 캐릭터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 마냥 존재한다. 여기서 삼십 년도 더 된 <매드맥스> 시리즈를 언급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15년에 <매드맥스>를 보러 온 관객들이 동명의 오랜 영화에 대한 사전 지식을 갖고 있으리라 생각할 이는─제작자나 감독을 포함하여─없을 것이다. 그리고 영화는 정말로 맥스에 대하여, 혹은 임모탄이나 퓨리오사에 대해서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는다.

 

예컨대 늪지대에서 겨우 벗어난 뒤 맥스는 일행을 먼저 보낸 뒤 혼자 적들에게 되돌아간다. 하지만 영화는 결코 적들과 혼자 맞서는 맥스를 보여주지 않는다. 그 씬을 삽입했다면, 맥스의 강인함과 대담함, 영웅적인 모습이 부각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단지 적들의 피가 얼굴에 한껏 묻은 채 돌아오는 맥스를 보여줄 뿐이다.

 

거기다 영화는 왜 맥스가 환상에 끊임없이 시달리는지, 임모탄은 어떤 존재인건지, 퓨리오사는 왜 한쪽 팔을 잃었는지 설명하지 않는다. 그 의도야 나는 추측할 수 있을 따름이다. 하지만 확실한 건, 그러한 모든 궁금증들을 뒤덮을 만큼 분노의 도로와 탈 것의 존재는 압도적이었다.

 

3. 게임 – 지루하지 않은 까닭

 

 

영화에선 다양한 도로와 탈것들을 끊임없이 등장시킨다. 또한, 예고편만 봐도 예상할 수 있듯 영화의 대부분은 추격씬이었다. 영화에서 추격 장면이 없는 씬은 대략 10씬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추격씬이 대다수인 영화가 뭐가 재밌다는 거지?’ 나같은 경우라도, 어떤 영화의 추격씬이 거의 90퍼센트 가까이 된다는 얘기를 듣는다면 웬만해선 그 영화를 보지 않을 것이다. 종일 속도감만 강조하는 영화에서는 오히려 속도감을 느끼지 못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의미 없는 물질들이 훽훽 지나가는 장면을 보고 있노라면 잠이 솔솔 온다. 그런 의미에서 <트랜스포머3>(마이클 베이, 2011)는 고역이었다. 

 

하지만 <매드맥스>는 달랐다. 그 까닭은 영화의 구성에 있었다. 영화는 비유컨대 게임(액션 혹은 RPG)적인 구성을 취하고 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다. 퓨리오사는 임모탄의 명령에 불복하고 운전하던 차의 방향을 바꾼다. 이후 이 사실을 안 임모탄은 퓨리오사를 뒤쫓는다. (본격적인) 첫 번째 추격이다. 황량한 사막에서 한동안 추격씬이 이어진다. 이후 추격은 눈앞에 펼처진 모래폭풍 속에서 이어진다. 모래폭풍 이후로 기암괴석이 높이 뻗은 곳에서 추격씬이 펼쳐진다. 이후 늪지대가 펼쳐진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마치 게임에서 한 스테이지를 깬 뒤, 좀 더 높은 단계의 스테이지로 넘어가는 형식을 취한다. 게임에서 스테이지가 넘어갈 때 바뀌는 것은 크게 두 가지다. 배경과 대결 상대. (스트리트 파이터나 철권 시리즈를 생각해보라.) 영화는 그 방법을 그대로 따온다. 위에서 말한 배경의 변화 사이는, 전부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페이드아웃과 페이드인으로 컷되어 있다. 즉, 흐려졌다 다시 밝아지는 방식으로 쇼트가 연결된다. 이는 게임으로 치면,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가기 전에 손을 풀고, 호흡을 고르는 찰나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다. 실제로, 잠깐 화면이 어두워질 때마다 영화관 여기저기서 숨 고르는 소리가 들렸다.


이러한 배경의 변화에 맞춰, 맥스 무리를 쫓는 적 무리도 바뀐다. 엄밀히 말하면 매 스테이지 마다 부각되는 적이 바뀐다. 탈것(몬스터 트럭, 일반 승용차를 위에 얹어놓은 차, 오토바이)이나, 무기(창, 지뢰, 따발총, 칼, 무기는 아니지만 장대), 그들의 의상이나 외형 등. 이러한 구성의 효과는 같은 장소(대부분 도심)에서 같은 대상과 벌이는 추격전과 비교했을 때 두드러진다. 형식만 달리했을 뿐이지만, 그 효과는 이렇게 엄청나다. <매드맥스> 성취는 서스펜스만으로 영화의 긴장과 흥미를 최고치까지 끌어올린 데서 찾아야 할 것이다.

 

* 사진출처: 다음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