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이슈/미디어

스타의 광고 출연, 비판할 수 있지만 비난할 수는 없다

지난 3월부터 본격적으로 광고에 대해 배우기 시작했다. 아직까지 이론 수업만 들은 수준이지만 처음 배우는 영역에 대한 흥미와 매력을 느끼고 있다. 지금까지 배운 개념들을 종합해보면 광고의 목적은 문자 그대로 메시지를 널리 알리는 것이다. 공익광고든 상업광고든 마찬가지다. 단 광고는 어디까지나 효율의 차원에서 논해야 한다. 광고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어떤 경우든 적은 비용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알리는 데 광고의 가치가 있는 것이다.

최근 <미생>에서 장그래로 열연한 임시완이 출연한 고용노동부 광고를 놓고 말들이 많다. 대부분 “장그래가 어떻게 비정규직 죽이기 법을 홍보할 수 있느냐”라는 의문이 섞인 비난들이다. 실제로 가칭 장그래법은 비정규직을 줄이는 법이 아니라 늘리는 법이나 다름없다. 35세 이상 비정규직의 경우 통상 2년 후에는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 법이 통과될 경우 35세 이상 비정규직의 근무 기간은 4년으로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웹툰 <미생>의 작가 윤태호 씨는 장그래법에 반발하기도 했다.

두 가지로 나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장그래라는 청년 이미지를 구축한 임시완이 장그래법에 대해 잘 모르고 광고에 출연했을 수 있다. 소속사는 장그래법보다는 고용노동부 공익광고 자체에 더 관심이 많았을 수 있다. 광고 내용 자체에도 장그래법이 시사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임시완과 소속사는 아무것도 모른 채 광고를 찍었을 수 있다. 그런 경우라면 소속사와 배우를 비난하기 어렵다.

 

연예인은 정치인, 공무원과 같은 공인이 아니다. 대중의 인기가 자산인 연예인에게 공익광고는 하나의 기회로 작용한다. 그 기회를 잡았다는 것에 대해 (설령 그 기회가 그에게 인기를 깎아먹을 위기였다고 해도) 어느 누구도 그 행위 자체를 욕할 수는 없다. 즉 핵심은 ‘광고의 의미를 제대로 몰랐을 수 있으니 비난하지 말자’가 아니라 ‘연예인으로서 인기를 더 얻기 위해 공익광고에 출연한 행위를 비난할 수는 없다’에 있다. 광고로 인해 제 살 깎아먹기 식으로 이미지상의 타격을 입은 건 임시완과 그의 소속사다. 누구보다 아쉬울 그들에게 실망할 수는 있어도 다짜고짜 비난하는 건 가혹하다.

두 번째 경우는 임시완과 그의 소속사가 장그래법의 의미를 알고도 그 광고에 출연했을 때의 경우다. 앞의 조건보다 보다 복잡 미묘한 상황이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필자 역시 ‘장그래가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 따지고 싶지만, 냉정히 말해 이 경우에도 임시완과 그의 소속사를 비난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들로서는 선택을 한 셈이다. 어느 정도 파장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도 광고를 찍음으로서 얻는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물론 결과적으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드라마에서 비정규직을 분한 연기자가 비정규직을 위한 콘텐츠, 광고에만 한정해서 출연할 수는 없다. 이미지대로만 출연하라는 말은 극단적으로는 생계를 포기해버리라는 의미가 될 수 있고, 일반적으로는 연기의 폭을 좁히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은 말이 될 수 있다. 임시완과 소속사가 장그래법을 알면서도 광고에 출연했다면 우리는 그 행위에 대해 충분히 비판할 자격이 있다. 그러나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를 무작정 매도하거나 비난할 수는 없다. 돌이켜보면 ‘임시완=장그래’라는 프레임 안에서 장그래에게 아쉬운 것 아닌가. 임시완과 장그래의 등식 관계가 깨지는 순간, 해당 광고의 논란은 희미해질 것이라 확신한다(황정민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보이지 않듯이 말이다).

 

차라리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보다는 해당 광고를 기획한 이에게 더 아쉽다. 광고 기획자라면 장그래법의 취지가 무엇인지 알았을 텐데 광고 대부분을 드라마 <미생>의 장면들로 채웠다. 끝내 대기업의 비정규직 타이틀을 떼지 못해 좌절한 장그래와 장그래법은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한쌍이다(둘의 공통점은 ‘장그래’라는 이름밖엔 없다). 어울리지 않는 한쌍을 묶어버리니 광고의 메시지에 공감하기도 어렵다. 장그래와 장그래법의 결합으로 사람들에게 메시지가 널리 알려지긴 했으나 메시지의 부조화로 부정적인 인식만 높이고 말았다. 광고에 영상을 제공한 tvN에도 아쉬움이 남는다. 해당 광고는 <미생>의 원작자를 넘어 지난해 <미생>을 사랑했던 시청자들을 우롱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알바몬 광고에서 시급 5580원을 강조한 걸스데이 혜리와 장그래법 공익광고에 출연한 임시완의 행보는 (광고의 차원에서 본다면) 다분히 대조적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디까지나 광고 모델일 뿐이다. 좋은 취지의 상업광고에 출연하는 것과 공익광고에 출연하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나을지 판단한 결과 그들은 선택을 내렸다. 그 결과 한쪽은 인기를 얻고, 한쪽은 인기를 깎아먹고 있다. 이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서두에 말했듯 광고는 자본주의의 산물이다. 그런 광고를 도덕과 윤리적인 관점만으로 평가하기란 어렵다. 메시지가 엉터리일 땐 광고모델을 욕할 게 아니라 광고 기획자를 욕하는 게 이치에 맞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