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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엔 많은 정석이 있다. 어떤 것의 기본이 되는 지침서와 같은 것. 이를테면 <수학의 정석> 같은 것들이 있겠다. 드라마에도 정석이 있다. 갈등은 이렇게 구축하고, 대사는 이렇게 써야한다는 기본 원칙을 아주 잘 따른 드라마들을 우린 본받아야 할 정석이라고 본다.

이번엔 단막극 중에서도 로맨틱코미디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드라마 한 편을 소개하고자 한다. <조금 야한 우리 연애> 조금은 자극적인 단어가 있지만 그래도 평범한 제목이다. 내용도 평이하게 흘러가지만 이 드라마, 꽤 재밌다. 2010년작 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봐도 웃을 수 있을 만큼 잘 만들어졌다(2010년작 단막극을 내가 유난히 좋아하는 것도 하나의 중요한 사실이다). 5년이 지난 지금도 이따금씩 블로거들이 리뷰를 할 정도로 오랫동안 회자되는 작품이다.

 

이선균과 황우슬혜. 로맨틱 코미디가 잘 어울리는 조합이 함께했다. 두 배우 모두 시청자들에게 부담감을 주는 이들이 아닌 만큼 편안하게 극을 이끌어갔다. 아주 뻔한 사랑 이야기임에도 시청자들은 웃을 수 있다. 그 비밀은 이들의 연기에도 있지만, 흥미로운 설정과 편안하지만 의미가 담긴 대사에 있다.

 

사랑 앞에서 지질한 남자, 방송국 PD인 기동찬(이선균 분)과 좌충우돌 재기발랄 지방 리포터 모남희(황우슬혜 분)의 만남에서 시작된다. 짝사랑하는 여자에게 고백 한 번 못해보고 그녀의 결혼식 사회나 봐주는 극소심남 동찬은 식당에서 밥을 먹다 모남희 옆자리에 앉게 된다. 전 남자친구의 결혼식에 소심한 복수를 하려고 장례식 복장을 입고 찾아갔다 밥을 먹는데, 열에 받쳐서 갈비탕을 먹다 동찬의 사타구니에 뜨거운 탕을 쏟고 만다. 그래서 이 드라마는 아주 조금 야한(?) 설정에서 시작된다.

 

비뇨기과까지 쫓아가서 동찬의 치료를 지켜본 남희는 그의 중요 부위까지 보게 되고 그들의 꼬인 인연은 여기서 시작된다. 다친 것 때문에 일을 쉬다가 남희가 있는 지방 방송국으로 밀려난 동찬은 거기서 만난 남희와 또 티격태격하게 되고, 여느 로맨틱코미디가 그렇듯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이 과정을 지켜보는 건 시청자들의 임무로 맡겨 놓고, 이런 지질하고도 귀여운 연기를 두 배우는 아주 능숙하게 소화했다. 이선균의 지질한 연기는 이미 정평이 나있다. 이후에는 홍상수 감독에서 꽃을 피웠으니 말이다. 황우슬혜의 연기도 좋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킬미힐미>로 드라마계를 뒤흔들고 있는 황정음의 뒤를 이을 수 있는 발랄하면서도 다양한 감정을 소화할 수 있었던 배우였는데 지금 상황은 좀 아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이 당시의 연기가 좋았다. 털털하면서도 귀여운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그리고 로맨틱 코미디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오글거리지 않게 마음을 울리는 대사다. 코믹스러운 대사도 그렇고 중요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대사에서도 그것이 필요하다. <조금 야한 우리 연애>에서의 명대사를 꼽자면 다음과 같다. 주변 사람들에게 항상 친절하고 자기 것을 잘 나눠주는 남희를 보고 답답함과 질투를 느낀 동찬과의 대화다.

 

“좀 헤픈거 알죠? 박애주의자야, 뭐야!”


“넌 그렇게 고결하냐? 넌 한 번도 안 헤퍼봤어? 그럼 그게 잘못된거니?
누가 사랑을 고따위로 지꺼 다 움켜쥐고 한 대니 싸가지없게.”

“헤픈게 사랑이니?”

“헤픈게 사랑이야! 이 바보천치야!”

 

두 사람의 대화에서 매번 등장하는 ‘헤프다’라는 단어는 이 드라마의 핵심 단어다. 헤픈게 과연 사랑일지 아닐지에 대해 고민하게 만드는 이 드라마는 결국 헤픈게 사랑이다라는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한다. 유치한 남녀의 싸움인데 이 야기를 쭉 따라가면서 보다보면 나도 모르게 이들의 메시지에 빠져들게 된다. 헤픈게 사랑이라는 말. 사랑을 맘껏 줘야한다는 걸 알면서도 자꾸 쥐려고 하는 내 모습. 그 모습을 어느 순간 발견하게 된다. 메시지 하나를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잘 전달한 것이 이 드라마가 정석이라고 불릴 수 있는 이유라고 본다.

 

이외에 <위대한 계춘빈>에 이어 중요 부위가 ‘기똥찬’ 남자 기동찬이라는 이름과 마찬가지로 ‘모난’ 줄 알았던 여자 모남희라는 이름을 부여하는 설정도 재밌는 부분 중에 하나다. 사소한 것들이 즐겁게 다가오는 것이 바로 단막극의 매력이다.

 

이 드라마는 최근에도 꾸준히 재방송으로 방영될 만큼 방송국에서도,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있다. 한 시간 편하게 웃으면서 사랑을 느끼기에 참 좋은 드라마라 봄이 오는 길목에 꼭 소개하고 싶었다. 일부러 내용 설명을 줄인 것은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기 위한 것이다. 헤프지만 헤프지 않은 이들의 사랑을 느껴보시라.

 

사진 출처 : KBS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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