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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예체능 안정환, 그의 승부욕을 깨운 시원한 족구 한 판

예체능 족구편의 출정식을 기억하는가? 대체로 무난한 출정식이었지만 단 한 사람에게는 참 얄궂은 시간이었다. 구호가 약하거나 액션이 단조롭다는 이유로 수차례 파이팅을 외쳐야했던 안정환에 대한 얘기다. 그는 강호동의 가혹한 파이팅 수련에 “이런 것까지 해야되냐”며 발끈했는데, 그의 투덜대는 행동과 결국 있는 힘껏 파이팅을 외치는 장면에서 예체능은 의도치 않은 재미를 챙겼고, 또한 본 게임에 키플레이어로 활약할 그의 승부욕에 제대로 시동을 걸었던 셈이었다.

이번 방송에서는 정환팀과 형돈팀으로 나눠 4:4 시합이 치러졌다. 총 3세트의 대결이었고 정환팀은 안정환이 주장인 팀이고 형돈팀은 정형돈이 주장인 팀이다. 방송을 보면 알겠지만, 안정환과 정형돈은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예체능에서 앙숙의 관계를 이뤘다. 정형돈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형님 안정환에 스멀스멀 기어오르면서 약 올렸고, 안정환은 정형돈의 놀림에 얼굴을 자주 붉히며 발끈했다. 그리고 결정적이었던 것은 안정환은 저번 시합에서 네트 너머 상대편으로 있었던 정형돈의 입족구에 호되게 당한 경험도 있었다. 팀 대 팀의 대결이었지만, 둘은, 특히 안정환에게는 자존심을 건 승부였다.

 

 

그리고 족구의 묘미는 뭐니뭐니해도 내기다. 간단히 한 판하는 것이라도 음료수 내기가 없으면 뭇내 서운한 것이 바로 족구다. 다른 운동도 내기를 걸 긴 하지만 족구만큼 내기와 궁합이 잘 맞는 운동도 사실 없다. 이번 정환팀과 형돈팀의 대결에서 내기로 걸린 것은 진 팀이 마라톤을 하는 것이었다. 진 것도 서러운 일인데, 더군다나 마라톤이라니. 가혹할 것이 따로 없었다. 승부의 벼랑 끝에서 각 팀원들은 방송 분량 걱정 말고 잔인하게 이기자며 결의를 다졌다.

 

1세트는 손쉽게 정환팀이 가져갔다. 그런데 안정환이 사뭇 달라졌다. 본래 같았으면 조금 뻗대거나 별 거 아니다라는 제스처를 취했을 테지만 그에게 장난기는 좀처럼 보이지 않았고, 예전과는 다르게 십분 진지해졌다. 마주한 승부에 다시 피가 끓는 모양이었다. 마치 현역 선수 시절로 돌아가 상대 팀에 골망을 호시탐탐 노렸던 안정환이 몇 년 만에 그라운드가 아니라 족구장으로 되돌아 온 것 같았다. 1세트에서 승리하며 유리한 고지를 점했지만, 안정환은 방심은 금물이라며 주장으로서 팀원들을 독려했다. “누를 때 눌러야 돼, (상대편을) 올라서게 하면 안돼, 같이 흘린 땀을 누구 한 사람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팀원 한 사람,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힘주어 얘기했다.

 

2세트는 안정환의 타오르는 승부욕을 역이용했던 형돈팀의 승리였다. 상대편인 형돈 팀의 팀원들은 안정환의 승부 근성을 자꾸만 자극하는 발언을 하며 안정환의 실수를 유도했고, 흔들리던 안정환은 실수를 연발하며 결과적으로 팀에 패배를 안겼다.

 

멘탈을 부여잡고 3세트를 맞이한 정환팀은 평정심을 되찾으면서 결국 최종 승리를 차지했다. 특히 승부의 쐐기를 박았던 안정환의 가위차기 장면은 예체능의 품격을 높인 장면이었다. 그의 가위차기는 현역 시절의 몸놀림을 연상시켰고, 그의 타오르는 승부욕이 어느 정도인지를 실감할 수 있었던 대목이었다. 예체능에서 안정환의 승부욕은 프로그램의 활력소이자, 다른 팀과 맞서 싸우기 위한 중요한 무기가 될 것 같았다.

 

족구는 잠자는 승부 근성 세포들을 일깨우는 데 충분한 스포츠이다. 축구화를 벗었던 안정환도 예외는 아니었다. 의도치 않게 라이벌처럼 되어버린 정형돈의 존재도 안정환의 승부욕을 점화하는 데 보탬이 되었다. 타고난 승부사였던 그가 은퇴하고 축구 해설위원을 역임하고 아빠 어디가 등의 예능 프로그램에 푸근하게 등장했을 때 그의 승부욕의 불씨도 꺼진 줄 잠시 오해했었다. 그런데 예체능에서 다시 그의 피 끓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현역 시절의 그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오버랩되며 참 반갑기 그지없다. 안느 포에버!

 

사진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