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임진왜란 1592> 1,2편
“또 이순신?” 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소재 선택이었다. 심지어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는 사극하면 떠오르는 배우 최수종. 어찌 보면 뻔하디 뻔한 전개로 흘러갈 수 있는 조합이다. 심지어 5편 제작에 13억이라는 상대적으로 빈곤한 재원의 문제도 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 전문 PD가 직접 극본과 연출을 맡는 순간, 그 모든 예상은 기분 좋게 깨졌다.
<임진왜란 1592>는 팩츄얼 드라마라는 새로운 장르물의 이름으로 우리 앞에 선보였지만, 엄격하게 따지자면 다큐멘터리적 틀을 빌린 드라마다. 보통의 드라마와 달리 보다 민초(실제로 싸운 군졸들의 삶)에 대한 조망을 보여주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부분에 상상력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 난중일기 등 비교적 많은 사료들에 기인한 결과 그것은 개연성 있는 가능성이 되지만, 어디까지나 가능성일 뿐이다. 그러나 그 역시 <임진왜란 1592>의 이야기의 색을 흐리는 대신, 이야기의 힘을 키우는 순기능으로 작용한다.
말하자면 <임진왜란 1592>는 다큐멘터리와 드라마의 경계에 있지만, 드라마에 방점이 크게 찍힌 상상력의 결실이다. 그러나 그 상상력이 철저한 고증에 기초하게 되는 순간, 큰 과장이나 심각한 오류 없이도 우리 모두는 그 결과물을 편하고 즐겁게 받아들일 수 있다. 이를테면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이순신 장군이 곡사포가 아닌 직사포의 형태로 전투를 벌였을 것이라는 상상. 그것은 확증적 사실이 아닌 하나의 가능성이지만, 사료와 실제 상황에 대한 고민 아래서 진행될 경우 그 가능성은 일반적인 상상력보다 훨씬 더 강력한 설득력을 갖는다.
이순신 장군이 가졌을 고민, 당시 군대의 환경, 전투 상황에 대한 묘사, 난중일기를 통해 남은 군졸들의 이름에서 알 수 있을 이순신의 생각 등은 모두 허구가 아니다. <임진왜란 1592>는 그렇기에 드라마지만 드라마가 아니며, 그러면서 동시에 가장 드라마적인 구성을 통해 드라마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큰 과장이나 왜곡 없이도 있는 그대로를 충분히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를 만들어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여기에 덧붙여진 연출은 그 부족한 틈새마저 메꿔주는 느낌이다. 화려한 드라마적 연출에 비하면 소박하지만, 인물의 감정선이나 고뇌를 보여주기엔 부족함이 없다. 예산의 한계상 화려한 CG 등의 볼거리는 상대적으로 부족한 느낌이 들지만, 그 또한 연출의 힘으로 어떻게든 메
꿔지면서 긴박감과 전쟁의 생생함마저 느껴지게 만들었다. <임진왜란 1592>는 그 모든 열악한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내는 듯한 느낌을 강하게 받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을 수밖에 없는 장르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팍팍한 사실보다는 극적인 드라마를 더 선호한다. <임진왜란 1592>는 그런면에서 다큐멘터리의 아픈 점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임진왜란 1592>는 그 아픔마저도 새로운 가능성의 지평을 열어냄으로써 극복해냈다. 이제, 우리는 다큐멘터리라는 장르적 틀 안에서 훨씬 더 많은 것을 고민하고 상상하며 그려볼 수 있다. 우리는 사실의 경계 안에서도 충분히 더 극적인 것들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여기 이곳에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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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