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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청춘시대>는 떠났지만 청춘은 가지 않았다

※드라마 <청춘시대>의 결말이 담겨 있습니다. 


짧았지만 뜨거웠던 드라마 <청춘시대>가 떠나갔다. 하지만 우리의 청춘은 곁에 남아있다. 우리 마음이 여전히 ‘청춘’이라면 말이다. 

청춘(靑春)이라는 단어를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 ‘푸른 봄’으로 풀어낼 수 있다. 의역을 하면 새싹이 돋아나는 봄철, 인생으로 보면 10대와 20대를 아우르는 젊은 나이를 의미한다. 그러나 <청춘시대>는 최종회를 통해 청춘은 젊은이들의 전유물이라는 고정관념을 보기 좋게 깨버렸다. 


12회 동안 아름다웠던 시절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장면. 그동안 자신을 눌러왔던 삶의 무게를 털면서 동시에 새로운 무게를 짊어진 윤진명(한예리 분)의 미소와 함께 음악 하나가 흘러나왔다. 배경으로 흐른 노래는 샹송 가수 에디뜨 피아프(Edith Piaf)의 ‘아니, 난 아무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후회가 전혀 없다는 노랫말과 함께 드라마의 마지막으로 등장한 인물은 놀랍게도 주인집 할머니(문숙 분)였다. 곱게 정리된 화장대, 짙은 빨간색의 립스틱을 바르는 그의 얼굴이 찬찬히 등장한다. 콧노래를 부르며 우아하게 화장품을 뿌리며 미소 짓는 그. 


노래 부르는 이의 목소리에 점점 힘이 들어감과 동시에 화면에 수납장이 나타난다. 장을 열자 눈에 들어오는 건 바로 ‘기능성 속옷’이었다. 아랑곳 않고 콧노래를 이어 부르며 주인집 할머니는 의자 뒤에서 속옷을 능숙하게 입었다. 그리고 몸가짐을 정리하고 화면에서 사라지는 그. 그렇게 <청춘시대>는 막을 내렸다. 

드라마 1회에서 등장한 유은재(박혜수 분)도 아니고, 벨 에포크 하우스메이트들도 아닌 주인집 할머니가 왜 마지막 등장인물로 나왔던 걸까. 나는 그 힌트를 1회에서 등장한 첫 대사에서 찾았다. 


1회의 첫 장면. 3월을 맞아 새내기가 된 은재가 귀에는 멀미약을 붙이고 버스를 타고 상경한다. 이때 은재의 말보다 먼저 흘러나오는 대사가 있다. 버스에서 흘러나온 것처럼 들리던 라디오 디제이의 말이다. 


“새학기, 새출발의 설렘이 가득한 삼월의 첫 날. 여러 필수품이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자신감’이죠.” 


디제이는 대사에서 은재가 들으라는 듯 자신감을 가지라고 강조했다. 그리고 12회를 거치면서 벨 에포크에서 함께 산 5명의 청춘들은 각자 나름대로 살아가는 법을 배워갔다. 누군가는 변했고, 누군가는 변하지 못했다. 어떤 결과가 이어졌든, 제작진은 마지막 장면에서 청춘과는 관계없는 주인집 할머니로 막을 내렸다. 처음과 끝을 맞춰보니 그 의도를 추측할 수 있었다. 매일 반복하는 행동을 우아하게 해내는 주인집 할머니에게서 내가 발견한 건, 바로 ‘자신감’이었다. 


‘후회하지 않는다’는 배경음악의 노랫말, ‘아름다운 시절’이라는 셰어하우스 ‘벨 에포크’, 그리고 마치 백조가 물 위에서는 아름다운 모습을 지키지만 물 아래에서는 바쁘게 발을 휘젓는 것처럼 자신의 삶을 받아들이며 일상을 살아가는 주인집 할머니의 모습까지. 다소 당황스러울 수 있는 할머니의 행동이 아름다웠던 건, 그가 노인이 되어서도 자신은 청춘이라는 자신감으로 살아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청춘시대>는 우리에게 메시지를 던지며 떠나갔다. 부제에서 말한 것처럼 “우리의 삶은 계속된다.” 게다가 5명 하우스메이트들의 삶이 결코 안정적이거나 평범하지 않았던 것처럼 “우리의 삶은 평범하지 않다.” 그럼에도 우리가 기대를 걸며, 힘을 내어 살아갈 수 있는 건 “결코 청춘은 어느 누구의 전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드라마에서 보여준 주인집 할머니의 모습을 통해 결코 청춘은 떠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배웠다. 청춘이 떠나갔다면 그건 내가 떠나보낸 것이다. 그래서 <청춘시대>는 떠났지만 아쉽거나 슬프지 않았다. 내가 늘 청춘일 수 있는 법을 알려줬기 때문이다. 


몇 년 전, 소설가 김애란씨의 강연을 우연히 들은 적이 있다. 그날 소설가는 이런 말을 전했다. “‘젊다’는 형용사예요, ‘늙다’는 동사구요.” 늙음은 흐름을 막을 수 없는 동사다. 하지만 ‘젊음’은 한 때의 상태를 설명하는 형용사다. 그렇기에 한 때의 시절이 될 수 있고, 그 시절은 떠나보낼 수도 있지만, 되찾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춘시대> 가장 마지막 장면에 등장한 글귀가 내게 더없는 위로를 안겨줬다. 

벨 에포크 규칙 : 다시, 벨 에포크로. 


적어도 우리가 ‘청춘’이라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우리는 다시 ‘아름다운 시절’로 돌아갈 수 있다. 나는 이 드라마의 엔딩에서 그 희망을 발견하고 싶었고, 발견했다. 


by 건 


사진 출처 : JT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