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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천 명의 전역 연기, 왜곡된 보상심리의 트라우마


병사들이 전역연기 신청을 했다고 한다. 북한의 거듭되는 위협 이후 고조되는 안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란 설명이 뒤따른다. 국가의 안보와 위기에 충성심과 애국심이 고조된 이들의 자발적 희생에 찬사가 뒤따른다. 그런데, 이 모든 일이 8월의 일이 아니다. 기시감을 들게 하는 1000여명의 병사들이 전역 연기 신청은, 16년 1월에 다시 한 번 일어나고 있다.




이야기에 앞서 다시 군 생활을 되짚어 보자. 대한민국 남자들에 있어 군대는 기피대상이다. 우스꽝스럽고 희화화된 TV 프로그램 속 군대의 모습에 낄낄대면서 웃다가도, 막상 영장이 날아오면 식겁하기 마련이다. 요샌 때리지도 않고 욕하지도 않는다는 말들로 술자리에서 위안을 받고 머리를 밀고 훈련소에 들어간 순간, 모든 것이 생각 이상으로 나쁘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느껴지는 압박감은 떨쳐낼 수가 없다. 군 생활은, 무슨 말로 포장을 해도 결국 눈칫밥의 연속이고, 암묵적으로 덮이는 수많은 사건 사고들을 보며 눈감는 법과 무언의 압박 속에서 자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자기 검열을 배운다. 사회에서의 상식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나태한 시스템이 어떻게든 굴러가는 것에 적응하다보면 어느새 전역이다. 젊음과 시간이 아깝다는 식상한 말들만 남는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결국 왠지 뭔가를 손해 본 듯한 느낌과 함께 전역을 맞이한 후 사회생활을 시작한다. 군대 무용담은 술자리의 단골메뉴가 되고, 가끔 함께 시간을 보냈던 '전우'들을 만나 회포를 푼다. 역시 별로지만 생각보다 나쁘지만은 않았어, 란 생각을 은연중에 하면서, 그렇게 적응해왔다. 왠지 뭔가 손해본 듯한 느낌을 평생 안은 채로 말이다. 


물론 모든 경험들이 가치 없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결과적으로 군 생활을 마치고 난 후의 대한민국 남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게 되는 것은 결국 부당함에서 비롯된 '보상심리'일 것이다. 내가 바친 시간, 내가 바친 청춘에 대한 보상을 그들은 무의식적으로 찾는다. 그것은 군 가산점을 원하는 형태로도 나타나기도 하며, 여성, 사회복무요원(공익근무), 군 면제자에 대한 상대적 우월심리로 표출되기도 한다. 고위공무원 인사청문회 등에 있어 특히나 자녀의 군 면제 사실 관계 여부가 이슈가 되고 논란이 되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보상심리'의 상대적 변종이다. 내가 겪은 부당함을 그들은 특권의 힘으로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군필자는 무엇보다 크게 반발 심리를 갖는다. 이회창의 좌절의 경험이 십 년을 뛰어넘어 다시 한 번 박원순의 대권 의지에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황은, 다시 한 번 암묵적으로 그 민감성을 드러낸다.


문제는 이러한 보상심리가 절대적으로 충족되지 않는 상태에서 기형적 형태의 보상이 지난 8월의 일로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월급, 불편한 근무여건, 제한적 자유 보장, 암암리에 잔존하는 부조리 등의 문제들이 (나름의 노력에도 불구) 미미한 속도로 해결되는 와중에서, 지난 8월의 북한 도발에 맞서 전역 연기로 군 생활을 연장한 이들에 대해 '취업'이라는 형태의 보상이 갑자기 주어진 것이다. SK, 롯데 등 대기업부터 중소기업들에 이르기까지 일부의 기업들은 "자신의 자유까지 반납하며 국가를 수호한 이들의 자세를 높이 사" 전역 연기자들을 채용했다. 군 생활 이후, 그 어떠한 형태로도 보상받은 적이 없었던 희생이 처음으로 가시적인 형태의 결과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러한 기업들의 행태에 대한 비판들도 있었지만 일반 대중들 대다수는 이를 헌신적인 태도의 보상이라며 이를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이는 지금의 "도발"에 와서 전역 연기 신청자가 천 여명에 육박하는 다소 기형적인 형태의 변주가 나타나고 있다.


지금의 현상과 같은 '왜곡된 보상의 트라우마'는 국방부 나름의 자신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군에 대한 대다수 군 복무 중인 대한민국 남성들의 심리를 대변한다. 병영선진화란 이름 아래 여러 가지 시도들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만족도가 아직 미미한 상황에서, 그보다 더 명확히 보이는 보상에 의해 '자발적'인 전역 연기 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군은 이를 애국심의 발로 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듯하지만, 역설적으로 지금의 상황은 현재 우리 군이 가지고 있는 신뢰성이 얼마나 낮은지를 반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역 연기자들의 '희생'은 군이 그들에게 줄 수 있는 무엇보다 사회에서 보상받을 미리의 '대가'를 무의식적으로 고려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이를 단순히 애국심으로 포장된다면, 앞으로 발생할 수 있는 무수히 많은 도발 상태마다 빚어지는 전역 연기는, 일종의 행사와 같이 관례화 될 가능성마저 있다.


물론 지금 이루어지는 전역연기에 전적으로 의도된 것이라고 보는 것 또한 일반화의 오류이자, 과도한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런 상황에서 전역연기자들에 대한 일부의 비난은 분명 부당하다. 무엇이 되었든 자발적 희생은 비난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 보다 중요한 것은 전역 연기를 하는 이들이 아니라 이들이 왜곡된 형태로나마 찾을 수밖에 없는, 군 생활의 보상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현재의 군 시스템의 개선이다. 정형화되고 관료화된 군 조직 구조를 유지한 채 지금과 같은 방식만을 고집한다면 "군 생활 내내 보람을 찾을 수 없는" 현재의 군 시스템의 개선은 요원하다. 방산비리, 재향군인회 비리 등으로 군에 대한 신뢰도가 낮아질수록, 보상을 찾는 심리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 형태가 왜곡되는 것까지 감수하면서 말이다. 


"취업이 안 되는 상황에서의 꼼수"일 뿐이다로 볼 일이 절대 아니다. 그렇다고 "나라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희생하는 장병들이 아름답다"라고만 볼 일도 아니다. 이들의 선택 이면에는 결국 2년의 희생에도 불구하고 응답하지 않았던 군 시스템의 잘못 또한 그 기저에 있다. 사회적 책임의 무게를 개인에게 다 넘기게 되는 한, 청년들이 갖는 '보상심리의 트라우마'는 계속 왜곡된 상태로 사회적 전이를 거듭하며 사회적 낭비로 이어질 뿐이다. 내가 잘 했던 만큼 나머지는 남은 이들이 해줄 것이라 믿으며 사회의 일원이 되기 위해 홀가분히 떠날 수 있는 군대가, 병장들이 며칠 더 남아서 지켜야만 안심할 수 있는 군대보다 건강한 것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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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