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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쌍용차 대타협의 의미를 생각한다

2015년 12월 30일, 협상이 타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자와 관련된 노-노-사 간의 합의가 마무리된 것이다. 반성한다. 솔직히 잊고 있었다. 노동문제는 뭔가 나와는 별개의 일로 생각했었다. 정부가 2015년 내내 주장했던 노동개혁과 이에 반대하는 노동개악이란 주장 사이에서는 노동개악 쪽에 방점을 찍고 노동개혁 문제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하긴 했어도, 그것이 내 피부에 와 닿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이지는 못했던 것 같다. 반성을 담아, 기록을 남긴다.



2009년, 실질적 이익 없이 기술만 유출해 소위 '먹튀'로 불린 중국 상하이차의 경영권 매각 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쌍용자동차는 경영정상화란 이유로 희망퇴직과 해고 등의 인원 감축을 골자로 하는 구조조정을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34%에 해당되는 2,646명의 노동자가 해고됐고, 이에 2009년의 대규모 시위를 포함, 여러 번의 굴뚝 및 송전탑 등 위에서 벌인 점거 농성 등 여러 반발이 있었다. 이에 회사와 노조는 합의를 통해 정리해고자 숫자를 줄이기도 하고 일부 인원들이 복직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해고된 이들은 회사와의 투쟁을 멈추지 못했다. 해고 이후 많은 노동자들이 생존의 위협 속에서 정신적 스트레스를 호소했고 총 28명의 해고노동자가 해고 이후 자살과 질병 등의 이유로 사망했기 때문이었다. 싸움이 길어지면서 회사와 노동조합은 여러 가지 소송으로 서로를 옭아맸고, 해고무효와 관련 대법원까지 여러 번의 공판을 거쳤다. 노동조합은 쌍용자동차노조와 쌍용자동차 금속노조지부 둘로 나뉘어져 각자 다른 입장으로 회사를 대하기도 했다. 이후 2015년 티볼리가 4만대 이상 판매되는 등 경영 호조를 보이자, 노-노-사 간의 협상을 통해 이번 합의에 이르게 되었다. 


이번 합의를 통해 쌍용자동차가 ▶정리해고자, 희망퇴직자 등의 단계적 복직, ▶상호 소송 취하 및 손해배상청구소송, 가압류 취소, ▶유가족 지원을 위한 희망기금 조성 등을 약속하고 노동조합 측이 이를 수용함으로써 길고 길었던 6년간의 싸움은 드디어 끝을 맺었다. 많은 상흔은 남았지만,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의 결실을 맺게 된 것이다.


6년이란 긴 싸움의 기간 동안 쌍용차 사태는 많은 일들을 겪었다. 과격 노동 운동, 기업을 생각하지 않는 무책임한 행동이란 낙인이 찍혔고, 수많은 정리해고자들이 고통을 겪어야 했다. 긴 싸움이 지속되는 동안 사람들의 관심에서 쌍용차는 점점 멀어졌고, 그나마 간간이 뉴스를 나올 때마다 부정적인 인식들과 감정적인 조롱만 늘었다. 무엇 때문에 싸우는지, 왜 싸우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묻지 않으면서 시위가 과격해진다고 비난만 쏟아내기 바빴다. 정작 그 긴긴 시간의 싸움의 결과에 따라 이뤄진 합의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관심을 갖지 않았다. 


그러나 쌍용차 사태와 합의는 정리해고가 한 사회에 남길 수 있는 상흔을 증명하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경영정상화, 기업 구조 개편이란 명목 하에 한국 사회에서는 그동안 많은 구조조정과 해고가 이루어졌고, 이에 대한 사회적 고민은 기업의 생존이란 명제에 밀려 항상 뒷전이었다. 기업이 망하면 다 같이 망하는 것이 아니냐란 기업 측 주장에 대해 대중들은 더 많이 수긍해왔고, 생존권을 보장해달라는 노동조합의 주장에 자신들의 이익만 챙기는 이기적인 집단이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10여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노조는 용공세력을 넘어 귀족노조라는 이름까지 얻었고 과격 폭력 집단의 상징처럼 여겨졌으며 경제 발전의 암적인 존재로까지 치부됐다. 갈등으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이 발생하고 그 책임이 노사 양측에 다 있음에도 그 모든 문제의 원인과 책임조차 전부 노조에 전가됐다. 쌍용차 사태는 이러한 대중들의 시선의 방향이 어떠했었는지를 전적으로 드러내는 상징과도 같았다. 부정적인 인식이 고정되어 버리자 수많은 해고노동자들이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고, 28명이나 되는 이들이 자살 혹은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음에도 사회는 이에 대해 무관심했고 무감각해졌다. 같이 고민하고 문제 해결 방침을 찾으려는 노력이 일어나는 대신 철저히 잊어버리고 배제했다. 끝끝내 싸움을 멈추지 않은 결과 얻어낸 대화의 기회였고 합의였지만, 사람들은 그 과정에 대해서 잊었기에 그 결과의 소중함과 가치를 알지 못한다. 


모든 해고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 구조조정 아니면 기업의 파산이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기업이 그 모든 상흔을 끌어안고 망해야한다고 극단적으로 주장하는 사람들 또한 없을 것이다. 해고 또한 불가피한 상황이 영영 오지 않으리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러한 비극을 감내하기 위한 합의의 과정이다. 노조는 기업이 어렵다고 해서 자신들을 해고하라고 말할 수 없다. 임금도 마찬가지다. 노조가 자신의 주장을 잃어버리는 순간, 그들은 존재 의의를 잃는다. 다만 그 주장들이 이제껏 과격해지고 극단을 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필사적인 몸부림을 수용하려는 의지를 보인 적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형식적 대화, 피상적 논의 대신 의지만 보여도 노조는 대화할 의지가 있다. 쌍용차 사태를 겪으며 벌어지는 노사 간의 합의는, 노조만의 입장이 반영된 것도 사측만의 입장만 반복된 것도 아니라 모두의 의견이 수용된 결과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이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짓누르려 했을 때 그 누구보다 강렬했던 쌍용차 노조가 사실은 대화할 준비도 돼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대화와 진정성만 있다면, 절차적 채용과 같은 아쉬움이 남아도 노조는 이를 수용할 수 있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싸웠지만, 그 누구보다도 열심히 대화했다. 이것이 쌍용차 노조가 이룬 성과라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열심히 압력을 행사 중인 노동개혁 법안은 지금의 노동구조 아래서 쉬운 해고와 같은 독이 될 여러 씨앗들을 내포하고 있다. 지극히 기업, 국가적인 관점에서 쓰인 법안은 노동자들에게만 희생을 요구한다. 국가 경제의 성장과 발전을 위해 감수해야한다고 말하기 전에 설득하려는 노력이 우선 되었으면 한다. 노사정의 대타협으로 이룩했다고 자랑하는 그 타협마저 타협 주체가 반발하게 하는 대신, 서로가 양보해서 납득 가능할 개혁을 이루려는 노력이 더 늦기 전에 필요하다. 쌍용차의 교훈이 2009년의 쌍용차로 기억되는 대신 2015년의 쌍용차의 의미로 남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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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출처 :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