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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여행

부산국제영화제(BIFF) 여행기 2막

#1 롯데시네마 매표소 앞

 

10시다. 여유 있게 왔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관은 사람들로 붐볐다. 10시 영화를 예매한 사람들은 왜 자동화 기기로 영화표를 뽑을 수 없냐며 볼멘소리를 냈다. 한 아주머니는 거센 부산 사투리로 이게 말이 되냐며 따졌다. 나 같아도 어렵게 예매한 영화를 제때 못 보면 열 받을 것 같다. 곱상하게 생긴 서울 말씨의 자원봉사자는 땀을 비 오듯 흘리며 해명했다. 아주머니도 알 것이다. 그에겐 잘못이 없다는 걸.

우리는 10시 반 영화라 그 대열에 합류하지 않을 수 있었다. <씨네21>은 부산국제영화제 공식 일간지 형태로 무료로 배포되고 있었다. 공식일간지라는 수식어 뒤의 <씨네21>은 어색했다. 상영 시간이 남아 잡지를 보는데 볼거리가 많다. 우리의 첫 영화는 디판이다.

#2 롯데백화점 푸드코트

 

영화를 본 뒤 우리는 토론을 시작했다. 아닌 게 아니라 <디판>은 유일하게 우리가 같이 본 영화다. 적어도 한 영화는 같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 부러 같은 영화를 예매했다. 영화관을 문을 나서면서부터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다. 금세 화두가 될 만한 주제들이 이것저것 나왔다. 세 사람은 공통적으로 생각한 지점, 또 다르게 본 지점이 있었다. 밥을 먹고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한시 십분. 락의 다음 영화가 2시라 우리에게는 40분 정도밖에 없었다.

 

밀도 있는 토론이었다. 대화가 끝이 나지 않을 것 같아 억지로 한줄평을 내놓았다. A4 세장에 달하는 활자들. 그 정도면 충분했다. 건이 바로 블로그에 대담을 게시했다. 세 사람의 깊은 이야기는

2015/10/02 - [Travel/BIFF 2015] - 화두를 던진 영화 ‘디판’, 이것은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아니다.에 잘 담겨 있다. 우리는 대담을 나누면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혼자였으면 발견하기 힘들었을 진실들을 함께 발견할 수 있었다. 종종 영화를 함께 보기로 약속했다. 자화자찬은 이쯤에서 끝내겠다.

 

1시 50분쯤 되었을까, 락은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고. 우리도 중간 중간 만날 것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이제부터 각개전투다.

 

#3 술집

 

3인이 다시 한 자리에 모였을 때는 밤 11시 무렵이었다. 마지막 밤이 아쉬워 우리는 바닷가 근처 해운대 포차거리로 향했다. 그러나 그곳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우리를 위한 자리는 없었다. 그래도 황정민 같은 배우를 우연찮게 볼 수 있었다. 그거면 됐다, 고 우리는 생각했다.

 

아쉬운 대로 숙소 근처 술집에 들렀다. 벼는 과제를 무사히 냈지만 조교가 확인하지 않아 약간의 불안에 젖어 있다. 락은 평소와 달리 커피를 두 잔 마셔 멀쩡하다. 건은 피곤함에 다크서클이 내려올 대로 내려왔다.

 

그러나 안주가 나오자 우리는 잠시나마 다시금 활력을 되찾았다. 새벽 한 시, 우리는 이번 여행에 대해 돌이켜봤다. 아래는 각자의 소회다.

 

건 – 초대받지 못한 자발적 취재였지만 언젠가는 초대받기를 희망한다. 어쨌든 여느 때보다도 영화라는 장르에 몰입한 순간이었다. 다음번엔 좀더 돈을 많이 벌어 여유 있게 오고 싶다.

 

락 – 말을 이어서 하자면, 그래서 더 재미있었다. 뭔가 확실한 게 없어 짜릿한 맛이 있었다. 심지어 방금도 배터리가 없어 어디서 만나야할지 헤매지 않았나.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여행이었다. 사실 영화 세 편 본 것이 조금 후회되기도 한다. 정작 우리들이 제대로 못 논 것 같은 느낌이라서. 하지만 나 역시 언제 이렇게 하루에 몰아서 영화를 볼까 생각해보면, 기분 좋은 경험이었다.

 

벼 – 아무 생각 없이 영화 그 자체만 생각한 하루였다. 살면서 영화제에 온 건 처음이었다. 평소 보는 영화관과 다를 게 없었지만 영화관 주변의 아우라랄까. 그런 게 느껴져서 좋았다. 영화인들의 공동체 같은 걸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한 듯하다. 다만 가끔씩 영화관에서 보인 일부 관객들의 소란스러운 행동이나 휴대폰 사용은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평소 같았다면 아무렇지 않았을 텐데 여기서까지 이러는 건 좀 아니지 않나, 생각했다.

 

어떤 여행이든 100% 만족하는 여행은 없다. 이번 여행은 영화제와 병행했기에 시간적, 심적으로 여유가 많은 여행은 아니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며 기대하는 이유다. 부산의 달은 반쯤 차 있었는데, 20대 중반 청춘들의 자화상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달은 기울고 다시 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