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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여행

부산국제영화제(BIFF) 여행기 1막

#1 무궁화호

 

벼는 밀린 과제를 하다가 멀미를 느끼고 잠에 들었다. 건은 몇 주 후에 있을 면접을 대비해 인생을 돌아보고 있었다. 락은 시사인을 읽으며 뉴스가 참 지겹다고 생각했다. 서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던 세 사람은 무료함을 느끼고 대화를 시작했다.

3인은 페이스북 페이지 구독자를 어떻게 하면 늘릴 수 있을지 고민했지만 쉬이 답을 내릴 수 없었다. 그리고 평상시 아이디어가 넘치는 J를 생각했다. 그는 우리와 함께 했었지만 사정상 지금은 없다. J가 그립다.

평택역에 다다랐을 때쯤 우리는 다시 취업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딱히 답도 나오지 않는 이야기다. 우리는 다시 굴레에 빠져들었다. 하품이 나왔다. 아직 우리는 절박하지 않나 보다…. 환멸을 느낀 우리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프로젝트에 대한 주제로 넘어갔다.

 

네이버 플레이리그에 제출할 영상 아이디어를 짰다. 우리의 결론은 잠이었다. 먹방은 있지만 잠방은 없으니까. 당장 영상을 찍기로 했다. 단, 조작은 없다. 누군가 잠에 들면, 찍으면 그만이다. 찍고 찍히는 인생이 시작되었다. 잠에 취한 벼는 벌써 찍히고 말았다.

 

대전역에서 기차는 멈춰섰다. 앞서 가는 ktx 열차의 고장 때문이라곤 하나 꿀렁거리는 열차 안에서 사람들은 역정을 냈다. 제시간에 맞게 부산에 도착할지 모르겠다. 아마도 사람들이 짜증이 나는 건 정해진 시간에서 벗어나는 생활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2 부산역

 

부산에 도착하자마자 긴급재난문자를 받았다. 강풍을 조심하란다. 그러나 우리의 걱정은 날씨보다는 주린 배에 초점이 맞춰졌다. 배고픔을 이겨내며 겨우 불백집에 들렀다. 식당 안은 더웠다. 땀을 뻘뻘흘리며 우리는 밥을 먹었다.

 

주방에서는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그런가 하면 서빙을 보는 아주머니는 처음이라 그런지 주방 이모에게 싫은 소리를 들었다. 우리는 밥을 먹으면서 같은 공간 내에서도 상하관계에 따라 기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부산은 참 덥다. 초량역에서 해운대역으로 가는 길이 꽤 멀게 느껴졌다. 그래도 부산에는 사람이 서울만큼 많지는 않았다. 여백의 미를 잠깐이나마 느낄 수 있어 좋았다.

 

#3 센텀시티

 

강풍에 비까지 오는 상황이다.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내려놓고 택시를 타고 6시에 딱 맞춰 왔다. 하지만 괜한 걸음이었다. 감독과 배우들을 만나고 싶었다면 우리는 전날 왔어야만 했다. 그만큼 BIFF를 찾은 인파는 엄청났다. 행사장 주변엔 이미 암표상들이 서성이고 있었다. 2명 당 10만원이라 흥정하는 소리가 들렸다. 마음을 접고 멀리서나마 셔터를 연신 눌러댔지만 그건 중심이 아닌 주변에 머문 자들의 아쉬운 플래시일 뿐이다.

 

시선을 바꿔 우리는 우리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옆에서 중계방송을 하든 말든 우리는 우리끼리 왁자지껄 그런대로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시간이 남아 롯데백화점에 들렀다. 코리안 블랙 프라이데이라더니 정말 깜깜한 세일이었다. 가격이 별반 차이가 없다. 허무함에 헛웃음만 나왔다.

 

#4 해운대 산오징어

 

숙소 근처 횟집에 갔다. 그나마 만만한 메뉴가 산오징어와 활어 세트였다. 거기에 소주 2병을 마시니 금상첨화였다. 우리에게 이 정도면 충분한 음식이었다. 술로 목을 축이니 시덥잖은 이야기가 다시 나왔다. 사랑 이야기였다.

 

우리는 육체와 정신의 사랑에 대해 논했다. 어떤 것이 우선인지에 대한 물음으로 시작됐지만 명확한 정답은 아무도 내리지 못했다. 그나마 우리가 합의한 결론은 지금 있는 사람에게 잘하자, 없다면 그냥 좋은 사람을 만나자, 이게 전부였다. 그래, 그거면 됐다.

숙소로 돌아가며 벼는 아직 끝내지 못한 과제가 머릿속에 맴돌았고, 건은 빨리 가서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했으며, 락은 일단 찌뿌둥한 상태에서 벗어나기를 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