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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 반 걱정 반 <쎄시봉>을 보러 갔다. 사실상 기대와 걱정은 다르지 않았다. 다만 정도의 차이었으니까. 70년대 당시의 음악, 풍경, 인물들을 어떻게 재현해낼지 기대하면서도 동시에 과잉된 해석으로 또 하나의 신화가 재생산하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지극히 주관적인 2월 개봉 영화 기대작’)

결론부터 말하면, 기대와 걱정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완전히 뒤바뀌어 버렸다. 기대는 무너졌고, 걱정은 같은 의미에서 사라졌다. 전반적으로 영화는 억지스러웠지만, 울림이 없지는 않았다. 아래 세 항목으로 나눠서 <쎄시봉>에 대한 감상을 적었다.

 

1. 이건 그냥 로맨스 영화잖아요?

 

영화는 70년대를 재현하는데 충실했다. 인물들의 싱크로율이나, 당시의 서울 풍경, 그리고 옷차림새 모두 전혀 이질감이 없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가 충족된 건 아니었다. 애초에 나의 기대는 묘사가 아니라 구성에 대한 것이었기 때문이다. 시대극에 대한 묘사는 이미 다른 영화들에서도 충분히 뛰어난 성취를 이루었다. 예컨대 <강남 1970>나 <국제시장> 같은 경우도 묘사만 놓고 봤을 때 전혀 이질감이 없다. 그러니까 당대의 묘사에 대해서라면, 나는 기대를 넘어서 확신이 있었다.

 

다만 나는 영화가 어떤 식으로 70년대를 재구성할 것인가 기대했다. ‘쎄시봉’이라는 표상. 과거의 전유물이지만 동시에 현재에도 끊임없이 회자되는 유령 같은 고유명사. 오로지 과거의 것도 아니면서 결코 현재의 것일 수도 없는, 흔들리는 시공간. 이런 사정에서라면 <쎄시봉>은 <국제시장>이나 <강남 1970>과는 전혀 다른 말하기 방식을 취해야 했다. 비유컨대 <국제시장>이나 <강남 1970>이 있는지도 몰랐던(까먹었던) 골동품을 다시 발견한 시간이라면, <쎄시봉>은 밤마다 한 번씩 꺼내보는 골동품을 깨끗이 닦는 시간이다.

 

전자에서 재구성하는 시간이란 까맣게 잊었던 시간이다. 50년대에서 현재에 이르는 시간, 혹은 70년대 강남의 시간. 감독은 그저 철저히 당대의 시공간을 재현해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후자에서 재구성하는 시간은 전혀 다르다. 일단 ‘복고’라는 것이 (확연히) 하나의 트렌드가 된 시기에 개봉되는 영화다. 여기서 복고라는 컨셉은 단순히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이나 구성이 아니다. ‘복고’란 지금 이 시대의 정신적 흐름(거창하게 말하면 ‘시대정신’)이다. 사람들은 이미 복고에 대한 이미지, 관념 등을 갖추고 있다. 자칫하면 영화는 텅 빈 기호 혹은 이미지나 도상(icon) 정도로 소비될 가능성이 크다. 보들레르의 시를 인용하면, 바다에 포도주를 뿌리는 격이랄까.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그러니까 <쎄시봉>만의 시간을 구성하지 않으면), 영화는 ‘복고’라는 거대 담론에 휩싸이게 될 것이었다.

 

거기다 전자와 달리 ‘쎄시봉’은 음악이라는 장르를 통해 끊임없이 현재로 불려 왔다. 나를 포함하여 ‘쎄시봉’ 세대가 아닌 이들도 음악을 통하여 당대의 시간을 어렴풋이 짐작하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당대의 음악은 지금 누가 듣더라도 현재의 음악 경향과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포크송, 번안 가사, 트리오, 다소 과장된 듯한 발성 등. 그 차이는 가수 개인의 것도 아니고, 음질의 문제도 아니다. 노래가 불렸던 시간의 문제다. 동떨어지고 낯선 음악을 접하게 되면 자연스레 70년대와 현재라는 ‘시간’이 일차적으로 떠오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당대를 살지 않았던 이들이나 당대를 살았던 이들 모두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쎄시봉’의 시간에 대한 ‘사후적’인 추억이 있다. 즉 (이미) 이들은 음악을 통해 매번 새롭게 당대를 재구성하고 있다. 그러므로 <쎄시봉>은 단순히 과거를 다루는 영화여서는 안 되었다. 위에서 제시한 두 가지 상황에서 <쎄시봉>은 다른 영화와는 다른 자기만의 시간을 구성해야 했다.

 

처음 말했듯, 이러한 기대는 무너졌다. 하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이었다. 이 영화가 단지 ‘로맨스 영화’라는 걸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쎄시봉>에서 시간이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위에서 비교했던 것과는 다른 의미에서 <국제시장>이나 <강남 1970>과 <쎄시봉>은 전혀 달랐다. 묘사로만 봤을 때 70년대는 충분히 그럴 듯했지만, 애초에 70년대라는 것은 하나의 소품 정도에 불과했다. 70년대와 ‘쎄시봉’의 시간은 영화에서 그저 시간적 배경에 불과했다. 영화는 그저 집요하게 근태(정우 분)와 자영(한효주 분)의 로맨스를 다룰 뿐이었다. 재밌는 건 둘 다 완전 허구의 인물이라는 것이다. 사실상 ‘쎼시봉’의 주역 이장희(진구 분), 윤형주(강하늘 분), 송창식(조복래 분), 조영남(김인권 분)은 근태, 자영과 동떨어져 있다. 나는 영화를 보다가 문득 <말할 수 없는 비밀>(주걸륜, 2007)에서 샤오위(계륜미)가 귀신(?)이었음을 깨달은 뒤 신비로운 분위기 속에서 플래시백 되는 씬들을 떠올렸다. 어떤 씬에선 장희들이 귀신같았고, 다른 씬에선 근태들이 유령 같았다. 하지만 결국 영화의 중심은 로맨스였다. 서사가 진행되어 갈수록 근태와 자영의 윤곽은 뚜렷해졌지만, 장희들의 윤곽은 점점 흐릿해졌다. 예를 들어 영화의 처음 시퀀스에서 현재 장희가 과거를 회상하는 씬을 끝으로 본격적인 시퀀스(70년대)로 바뀐다. 하지만 두 번째 시퀀스에서는 이상하게 근태의 내레이션이 등장한다. 장희의 개인적인 기억인 줄만 알았던 과거가 사실상 근태의 것임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다시 말하지만 <쎄시봉>은 로맨스 영화다. 70년대라는 시간은 그저 거기 있었을 뿐이고, ‘쎄시봉’의 주역들은 아웃포커스 된 풍경 정도일 뿐이다. 역설적이지만, 또한 그래서 나는 <쎄시봉>에 대한 걱정을 덜 수 있게 되었다. <쎄시봉> 이후 ‘70년대’를 하나의 이데올로기로써 현재에 폭력적으로 강요하는 현상은 아마 나타나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2. ‘웨딩 케이크’ – 상상은 자유라지만

 

<쎄시봉>은 ‘웨딩 케이크’를 위한, ‘웨딩 케이크’에 의한, ‘웨딩 케이크’의 영화다. ‘웨딩 케이크’란 윤형주와 송창식이 결성한 트윈 폴리오가 번안해서 부른 노래다. 짐작건대, 감독이 <쎄시봉>을 만들게 된 가장 큰 계기는 바로 ‘웨딩 케이크’였던 것 같다. 그들이 번안해서 부른  ‘웨딩 케이크’의 가사는 원작과 달리 슬프다. 대충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어쩔 수 없이 결혼하게 된 여자와 그녀를 아직 못 잊은 남자의 얘기다. 아마 감독은 같지만 다른 두 노래의 차이에 의문을 던졌을 것이다. ‘굳이 같은 멜로디를 갖고 왔음에도 전혀 다른 가사를 쓴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까진 좋았다. 하지만 사실상 이게 전부라는 게 문제다. 위에서 이 영화가 그저 로맨스 영화일 뿐이라고 했는데, 그 까닭도 아마 ‘웨딩 케이크’의 애잔한 가사 때문이리라. 또한, 내가 봤을 땐 감독의 호기심은 그저 호기심에 그쳤던 것 같다. 나름 허구의 인물을 설정하고, 이러저러한 사건들을 통해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긴 했다. 여기서 구체적으로 말하긴 그렇지만, 나는 정말 이게 의문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인지 의아했다. 특히 마지막에 자영이 웨딩케이크를 받는 씬과 이후 쎄시봉 씬을 앞뒤에 바로 붙여놓은 것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가 보기엔 설명하기 ‘가장’ 어려운 의문에 끝내 답을 내리지 못한 감독이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서둘러 내린 결정 같다.

 

‘웨딩 케이크’에 대한 의문과 그로부터 시작된 상상으로 영화가 시작된 것은 좋다. 하지만 마치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춘 듯한 억지 구성은 보는 내내 불편했다. 호기심에 맞먹는 치밀함과 인내심만 갖춰진다면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차기작에 기대를 걸 수 있는 이유다.

 

3. 그렇지만 정우, 그리고 포크송

 

영화의 구성이나 소재 모두 별로였지만, 단연 돋보이는 건 근태 역을 맡은 정우였다. 나는 정우를 <바람>(이성한, 2009)에서 처음 접했다. 자연스러운 연기, 어딘가 부족해 보이는 웃음, 어색하지만 미소 짓게 만드는 코믹함. 하지만 무엇보다 내가 눈여겨봤던 것은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지도 않으면서 마냥 억누르지만도 않는 그의 연기였다. 이 부분에서만큼은 한국 최고의 배우가 아닐까 감히 평가해본다. <쎄시봉>에서도 그의 연기력이 돋보였다. 특히 도무지 이해할 수 없지만 받아들여야만 하는 상황. 즉, 위에서 말했듯 감정을 표출해서는 안 되지만 마냥 참을 수밖에 없는 상황(구체적으로 말하면 스포가 되므로)에서의 표정을 이만큼 잘 표현할 수 있는 배우가 있었을까. 또한, 영화 내내 나오는 (70년대) 노래들도 단연 좋았다. 노래 자체도 좋았지만, 배우들의 출중한 노래 실력도 한몫했다.

 

이런 것들이 영화 자체(혹 감독)의 공로는 아니므로 여기까지만.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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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별밤 별밤러 2015.02.06 10:43 신고

    민자영이 윤여정을 모델로 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네요. 그렇지만 둘은 다른 실존 인물들에 비해 긴밀해보이지 않습니다. 이름도 그렇고. 제가 뒤늦게 알았다는 사실 자체도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자영이 완전히 허구는 아닐지라도, 확실히 이장희들보다는 오근태와 가깝습니다.

  2. 똔뚜! 2015.02.07 18:28 신고

    좋은글 잘보고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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