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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격감. 영화를 설명하는 데 있어 굉장히 이질적인 표현이지만, 영화 <미스 슬로운>을 설명하는 데 있어 이보다 적합한 단어를 찾기는 어렵다. 시종일관 빠르고 경쾌하게 치고 올라가는 영화는, 약간의 ‘클리셰’가 됐을지도 모를 영역들마저 특유의 속도감으로 극복해나간다. 영화는 제4의 벽을 넘지 않으면서도, 이미 관객의 의중과 반응 정도는 예전에 예측했다는 듯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그리고 그걸 가능하게 만든 건, 바로 캐릭터의 힘이다.


엘지자베스 슬로운(제시카 차스테인 분). 업계에서 이름이 널리 알려진 로비스트인 그는, 그 명성에 걸맞게 날카롭고 차갑다. 예상하지 못했던 부분에서 치고 들어오는 그의 전략은, 적은 물론 아군마저 계산 범위에 두고 움직인다. 하루 16시간을 일하고, 각성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약을 달고 사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다움을 느끼긴 어렵다. 최고, 최선, 최대. 절정을 향해서만 치닫는 그는 ‘인간’이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까지 한다. 그런 그를 움직이게 하는 건, 역설적이게도 그 어떤 이익보다도 강렬한 신념 하나뿐이다.

 

 

그렇기에 <미스 슬로운>은 미국의 총기규제 문제와 싸우는 로비스트라는 영화의 설정과 맞물리면서 현실과 비현실(가상) 사이의 괴리를 끊임없이 넘나든다. 전략들은 경쾌하고, 간간히 섞이는 유머도 유연하게 흐른다. 미스 슬로운을 제외한 인물들의 드라마는 상대적으로 약한 느낌이 들 법하면, 그 역시 반전의 소재들로 사용된다. 말하자면 <미스 슬로운>은 스크린 앞에 앉은 관객마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하는 기발한 방식으로 ‘농락’하는 느낌을 주는 영화다. 그럼에도 그 속임수는 결코 싫거나 기분 나쁘지 않다.

 

중반 이후의 약간의 감정적 과잉이나, 지나치게 ‘판타지’스러운 후반부의 전개가 살짝 아쉽지만 그것마저도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관대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힘은, 공감할 수 없기에 ‘공감’하게 만드는 캐릭터인 슬로운의 힘이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는 ‘뻔한 씬들’의 전개마저 가볍게 무시하며 튀어 오르는 슬로운의 모습은, 때론 경이를 넘어 감탄을 부른다.

 

정치 스릴러. 법정 드라마. 민주주의. ‘최순실 게이트’와 더러운 정치 권력의 관계에 신물이 난 2017년 한국 사회에서 <미스 슬로운>과 같은 정치 드라마까지 봐야겠냐는 물음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미스 슬로운>은 그러나, 바로 그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그렇게 복잡하고 난해한 ‘정치’를 과도한 드라마나 억지 감동 없이도 경쾌하게 풀어나가는 영화. 그 흔한 액션신 하나 없이도 보는 이마저 숨 가쁘게 따라가게 만드는 플롯. 그리고 캐릭터. 어쩌면 <미스 슬로운>은, 이미 쏟아지고 앞으로도 쏟아질 한국의 ‘정치’ 영화들에게, 새로운 이정표 역할을 할 수도 있을 영화다.

 

By 9.

 

* 사진 출처 : 다음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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