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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주말이다 영화야

<너의 이름은.> 친절해진 마코토 ‘아련함’을 그리다

 

<별의 목소리>를 보면서 이게 뭐야란 생각을 하고, 노래에 꽂혀 스치듯 <초속 5cm>를 봤던지라 본격적으로 신카이 마코토란 감독의 애니메이션에 본격적으로 발을 디디게 된 계기는 사실 <언어의 정원>이 처음이었다. 을 잘 그리는 감독이라는 명성에 걸맞게 배경화면 등을 그려냄에 있어 거의 실사에 가까운 수준의 묘사들을 담아냈던 영화는 비교적 간단한 스토리 전개에도 불구 여전히 인상에 깊게 남아 있다. 아직도 맥주에 초콜릿을 안주로 먹고, 어쩌면 아직 가보지 못한 비 오는 날의 도쿄가, <언어의 정원>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할 정도로.


 

그런 점에서 일본에서의 폭발적 화제로 기대를 모았던 <너의 이름은.>은 비교적 차분하고 침착한 - 감독 본인의 표현에 따르면 무라카미 하루키적인 - 이전의 작품들과는 분명 차이를 보인다. 신카이 마코토가 그려내는 특유의 감정선은 남아있지만, <너의 이름은.>은 그러한 색채가 바로 이전 작품(<언어의 정원>)에 비해서도 조금 옅어진 듯한 느낌이 든다. 여전히 묘사되는 풍경들의 질적인 수준은 유지되지만 - 개인적으로는 그 부분에 있어선 <언어의 정원>이 절정을 찍었다고 본다 - 이야기들은 대중적인 의미에서 보다 풍부해졌다. 아직도 전작들의 잔잔한 물결과도 같은 밋밋함은 있지만, <너의 이름은.>은 전작을 예상했던 사람들에게는 상상 이상으로 보다 다양한 표정을 보여준다.

 

 

<너의 이름은.>은 말하자면, 신카이 마코토가 세상과 ‘타협’해 얻어낸 성취로 그려낸 세계다. 신카이 마코토는 그 특유의 정서를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그려낸 이야기를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게 ‘자신의 것’이었던 감정들을 덜어냈다. 다소 ‘클리셰’적으로 변한 듯한 전개와 여전히 지적받는 개연성 부족의 문제는 남아있지만, 작품을 거치면서 점점 더 매끄러워지는 캐릭터 디자인들처럼 <너의 이름은.> 역시 변화를 맞이했다. 기존의 화려하지만 담담한 정물화와 같던 이야기들은 이제 스스로 동력을 가지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가 그려내는 ‘아련함’은 여전하지만, 그는 이제 그것을 보다 친절한 방식으로 관객에게 전한다.

 

그렇기에 지금으로선 <너의 이름은.>은 좋게 말하든, 나쁘게 말하든 신카이 마코토의 절정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어쩌면 앞으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알아주던 몇몇 마이너리티에게 지독할 만큼 철저하게 자신의 색채를 뿜어내던 스토리텔링을 예전처럼 자유롭게 시도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대중성과 자신만의 이야기의 경계선상에서, 그는 이제 이전과는 달라진 대중의 관심을 감내해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던 성공을 이번 한 번으로 만족하기엔 신카이 마코토는 아직 너무 젊다. 그가 쌓아올리고 있는 지금의 성과에서 벗어나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 이뤘던 애니메이션의 성취를 넘어설 수 있을지, 아니면 그 성과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채 방황하게 될지조차 아직 가늠할 수조차 없다. 그가 얻어낸 세계는, 오히려 그로 인해 아직 미지의 것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이 모든 우려를 잠시 접어둘 만큼, 영화는 빼어난 미모가 아님에도 사람을 홀리는 듯한 분위기 미인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모두가 바라지만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 그래서 모두가 접어왔던 마음을, 세상이 알아주지 않을 때에도 그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계속 묵묵히 그려왔다. 그런 그가 조금 친절해졌다고 그의 색()을 잃을까 봐 걱정하는 것은 그렇기에 어쩌면 너무 빠른 기우에 불과할지도 모르겠다. 세상과 본격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한 그의 행보에, 타협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것 자체가 너무 섣부른 걱정이 아닐까. 그가 그려냈던 아련한 감정들은 <너의 이름은.>에서도 여전히 유효하기에.

 

By 9.

 

 

* 사진 출처 :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