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막극은 보통 ‘하나의 막’을 가진 극을 의미한다. 한 편 내외로 끝나는 짧은 드라마를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여름의 꿈>을 보고나면 단막극에 대해 ‘단순한 극’이라는 별칭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귀여운 부녀 사이에 철저히 남이었던 한 여성이 들어와 한 가족으로 되어가는 과정은 이미 다른 드라마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소재다. 한 가지 예로 유오성이 미혼부 역할을 맡았던 <그 형제의 여름> 역시 새 엄마를 찾는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큰 줄기는 다르지만 미혼부, 새 엄마, 심지어 제목에 여름이 들어가는 것까지 비슷하다)
‘다소 지겹다’는 반응이 나올 수 있지만 그럼에도 단막극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지난 작품 <빨간 선생님>에서 시대 상황을 잘 풀어낸 연출과 메시지를 발견했던 것처럼, <한 여름의 꿈>에서는 단순한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배우의 힘’이 있었다.
◇ 여전히 반가운 사람들, 김희원과 김가은
김희원은 자타공인 악역 전문 연기자다. 드라마에서는 JTBC <송곳>의 정부장, MBC <앵그리맘>의 조폭, tvN <미생>의 박과장까지. 심지어 이전 KBS 드라마스페셜에서도 주로 껄렁한 역을 맡았다. 영화에서는 어떤가. “이거 방탄유리야, 개XX야!”라는 불후의 명대사를 남긴 <아저씨>는 그를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하지만 MBC <무한도전>의 ‘못생긴 친구를 소개합니다’에서 알려진 대로 그는 수줍음이 많은 사람이다. 술도 못 먹는 그인데, ‘험악해 보이는 얼굴’ 하나로 악역의 대명사가 됐다. 그래서 <한여름의 꿈>에서 만식으로 분한 김희원의 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이 모습이 더 본인의 성격과 닮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순진하고, 사람을 잘 믿고 도우려는 인물의 배려 많은 태도를 충실히 소화했다. 미희와 점점 깊어져가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못났기 때문에 흑심을 품을 수 없다며 우는 모습 또한 보는 이의 마음을 울렸다. 모처럼 선을 품은 연기에서 그의 색다른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김가은 역시 마찬가지다. 충실히 필모그래피를 쌓아오고 있지만, 그의 얼굴은 주로 껄렁한 모습으로 기억에 남았다. SBS <너의 목소리가 들려>에서 날라리로 분한 모습, JTBC <송곳>에서 파이팅 넘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이번 작품에서 그는 여전히 “거지 같다”며 자조하는 인생을 사는 껄렁한 인물로 나왔지만 황만식·예나 부녀를 통해 사랑을 깨닫는 모습 또한 강하게 드러내며 보는 이에게 인상을 남겼다.
◇ 보는 이의 미소를 머금게 만드는 아이의 발견, 김보민
아마 이번 단막극에서 가장 큰 수확을 꼽자면 ‘아역의 발견’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단막극은 종종 새로운 얼굴을 찾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아역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인 예로 2014년 방영된 단막극, <예쁘다 오만복>은 참으로 아름다운 얼굴, 김향기를 발견하게 만든 작품이었다.
<한여름의 꿈>에서 발견한 얼굴은 예나 역으로 분한 김보민이다. 만 4살 남짓했을 무렵부터 각종 CF에서 활약한 보민 ‘어린이’는 의외로 몇몇 방송에 얼굴을 내비친 경력 있는 배우였다. KBS 2TV <천상의 약속>, EBS <토닥토닥 마음아>에서도 활약했다. 그러나 한 드라마의 주연으로 도약한 것은 이번 드라마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연기로 뛰놀 수 있는 판이 펼쳐지자 보민 어린이는 맘껏 그 위를 뛰어놀았다. 이따금 너무 연기를 하는 것처럼 어른스러운 대사가 나오는 것마저도 귀여웠다. 무엇보다 ‘엄니’라고 부르며 따르던 미희가 아파 누웠을 때 이야기의 핵심이 되는 동화 “엄마 까투리”를 의젓하게 읽는 장면, 친구가 울고 있을 때 능숙하게 위로하는 장면들이 명장면이었다. 그 나이대의 어린이가 의연한 모습을 ‘슬쩍 배워’ 예쁘게 흉내내는 모습 그 자체였다.
<한여름의 꿈>은 메시지나 연출이 아주 뛰어난 드라마는 아니었다. 하지만 드라마가 모든 조건을 갖추지 않았다고 해서 ‘별로인 드라마’가 되는 것은 아니다. 드라마를 평가할 수 있는 조건은 여러 가지가 있다. 때로는 그것이 배경음악 하나가 될 수도 있고, 배우의 흡입력 있는 연기 하나가 될 수도 있다. 나는 <한여름의 꿈>에서 반갑고도 신선한 배우들의 얼굴을 발견했다. 그거 하나로 1시간 10분을 투자할 가치는 충분하다.
by 건
사진 출처 : KB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