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이들에게 ‘우리 해영이’가 되어 사랑을 맘껏 받았던 tvN <또 오해영>이 지난달 28일 종영했다. 남자 주인공으로 열연한 에릭은 종영 이후 <또 오해영>이 전원일기처럼 계속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며 드라마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다. 서현진이 예쁘게 연기한 ‘사랑이 넘치는 해영이’를 만나 퍽퍽한 삶을 살던 우리는 더 없이 행복했다.
그런데 ‘우리 해영이’에게도 비판적인 시선은 존재했다. 한 마디로 요약하면 깊게 뿌리 내고 있는 기존의 인식들, 성에 대한 고정관념들을 재생산하는 것에 불과했다는 것이다. 불편한 이야기다. 하지만 이 주장에도 분명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지점이 있다. 이 비판은 주로 제작진에게 가해지는 것이지만 보는 우리의 시선도 해당될 수 있다.
잘 만들어진 드라마에 대한 예찬은 충분히 많이 했다. 오늘만큼은 잘 만들어졌더라도 더 좋은 드라마가 만들어지길 바라며 몇 가지 공감이 되는 비판을 나누고자 한다.
◇ 해영은 결국 남자의 사랑을 차지해야만 행복할 수 있던 걸까?
해영의 태도에 대해 대표적으로 제기된 비판이다. 첫 장면에서 남자에게 차이면서 눈물을 보인 해영은 결과적으로 다른 남자를 얻으면서 행복해졌다. 물론 이 한 문장으로 요약된 결과를 얻기까지 해영은 고군분투했다. 그 과정에서 시청자인 우리도 해영이와 사랑에 빠졌고, 그의 삶을 오롯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다보니 우리는 남자를 만나 사랑에 빠진다는 반복된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 것이 아니었던 걸까.
하지만 이 비판에 대한 반론이 있다. 해영이 드라마 후반부에서 도경의 죽음 여부 때문에 남자에게 매달리는 모양새가 되었지만 사실은 해영이 도경의 태도 변화를 주도한 장본인이라는 것이다. 해영은 애정 넘치는 가정에서 자라면서 사랑을 충분히 받아 어쩌면 극 중에서 가장 결핍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라는 것. 그런 해영이 도경을 만나 그의 삶을 흔들었고, 트라우마 때문에 표현도 하지 못하는 남자를 변화시켰다는 것.
이렇다보니 해영이 남자의 사랑에 목맨 여자를 보여준 것 아니냐는 비판에는 많은 논쟁의 여지가 있다. 드라마를 만드는 이의 의도부터 해영을 수동적으로 만들었을 수도 있지만 보는 이의 마음 자체가 관성적으로 해영의 역동성을 낮잡아 봤을 수도 있다. 해영이 보인 역동성의 한 예로 나는 15회에서 버스 고백 장면을 들고 싶다. 당시 해영은 사랑을 당당히 드러내지 못하는 도경을 놀리면서 버스 창문을 열고 큰 소리로 사랑을 고백했다. 이런 모습이 쌓인 결과, 도경은 변할 수 있었다.
◇ 에릭은 왜 <또 오해영>이 전원일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을까
배우로서 에릭은 종영이 아쉬워서 이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말을 로맨틱코미디를 좋아하는 시청자의 입장에서 들여다보면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다.
“결국 결혼을 해서 해피엔딩이 됐지만, 아쉬워요. 사실 결혼이 진짜 시작이잖아요”
<또 오해영>의 마지막 장면도 해영과 도경의 행복한 결혼 장면이었다. 게다가 마지막 메시지까지 인상적이었다. “살아주십시오. 살아있어 고마운 그대”
하지만 결혼으로 로맨틱코미디가 마무리되는 것은 진정한 클리셰다. 물론 클리셰를 피하겠다며 주인공을 죽이거나 또는 괴상한 엔딩을 선택하는 것보다 훨씬 안전하고 행복한 엔딩이다. 다만 이렇게 결혼식 또는 결혼 후 아이를 낳아서 행복해하는 모습만 에필로그 형식으로 보여주는 것이 때로는 아쉽다는 것이다.
사실 이미 결혼 전 문 하나 놓고 함께 살던 해영과 도경의 경우 결혼 후 벌어질 일상이 어마어마하게 다양했을 것이 분명했다. 두 사람의 케미를 놓고 볼 때, 에릭이 말한 대로 ‘전원일기’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한 남녀가 사랑을 이루기 위해 달려가는 대한민국 로맨틱코미디 드라마의 법칙답게 결혼 이후를 보여주는 건 무리수다. 어쩌면 새로운 드라마를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그러다보니 대부분의 성공한 로맨틱드라마는 결혼에 골인하는 것으로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는다. 해피엔딩을 보는 건 늘 행복하지만, 가끔은 궁금하다. 이들은 결혼해서는 어떤 모습을 살아갈까. 또 새로운 갈등이 펼쳐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들.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는 동화책에서 봤던 것으로 충분한데 말이다.
잘 된 드라마에 대한 비판을 제기할 때마다 늘 돌아오는 댓글이 있다.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 뭘 그렇게 분석하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비판이 때로는 필요할 때가 있다. 맹목적인 '비난'이 아닌 앞으로 더 나아지길 바라며 보내는 애정어린 '비판'은 클리셰로, 때론 안주함에 빠진 드라마를 더 신선하게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잘 된 드라마일수록 더욱 그렇다. 다음에 더 잘 되면 더욱 좋지 않겠는가.
by 건
사진 출처 : tv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