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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정치

앞뒤가 맞지 않는 노동시장 개혁

국정원 민간 사찰 의혹에 온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에서도 정부와 새누리당의 관심은 노동시장 개혁에 쏠려 있다. 지난 17일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표를 생각하지 않고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며 향후 노동 개혁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정부와 새누리당이 내놓은 노동 개혁안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임금피크제다. 내년부터 300인 이상 사업장 근로자의 정년이 만 60세로 늘어나는 만큼 55세부터 임금의 일부를 삭감한다는 게 주요 골자다. 근로자의 임금이 일정 연령까지는 계속 오르지만 55세를 정점으로 다시 임금이 낮아진다는 의미에서 임금피크제라는 이름이 붙었다.

 

정부는 정년 연장을 하게 되면 기업의 인건비 부담이 늘어나는 만큼 근로자의 임금을 일정 부분 줄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늘어나게 될 정년이 확실히 보장된다는 걸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당정이 관철하려 하는 또 다른 개혁안과 상충된다. 바로 근로자의 해고 조건 완화다. 다른 말로는 노동시장 유연화라 부른다. 현재 사측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는 수단은 징계해고와 정리해고뿐이다. 근로자가 회사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거나 회사가 경영상의 이유로 근로자를 해고할 수밖에 없을 때만 근로자를 해고하는 것이 가능했다. 그런데 이를 성과가 떨어지거나 태도가 불량한 직원들을 회사가 임의로 해고할 수 있게끔 하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사업주의 자의적 판단에 의한 해고가 가능하다는 말이다.

 

해고조건 완화의 정당성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이 개혁안은 당장 임금피크제를 도입 취지와 충돌한다. 임금피크제의 전제는 정년의 연장인데 해고조건이 완화되면 정년 연장은커녕 정년 전에 회사에서 퇴출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정년이 연장되니 임금을 줄이자는 건데 거기에 덧붙여 해고는 간단하게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앞뒤가 안 맞으니 노동계로서는 반발할 수밖에 없다.

 

노동시장 개혁이 시급하다면 당정은 보다 확실하게 노선을 정해야 한다. 60세 정년이 확실히 보장만 된다면 임금피크제 도입은 뚱딴지같은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대신 해고 조건 완화는 고려 대상이 될 수 없다. 반대로 만약 정부에게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라면 해고조건 완화는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조건에서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까닭이 없다.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하는 건 과한 욕심이다. 욕심이 지나치면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 될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불어난 가계부채에 국민은 점점 생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노동시장 개혁을 보신주의에 빠진 기성세대와 구직난에 처한 청년세대 간의 대결 구도로 몰아가기도 하는데 이는 잘못된 접근 방식이다. “표를 생각하지 않고 노동개혁을 추진하겠다”는 말도 쉽게 꺼낼 말은 아니다. 국민의 목소리부터 듣고 난 후 노동개혁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개혁은 속도보다 방향이 중요하다.

 

*사진 출처: 고용노동부 공익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