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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의 포스팅‘(<손님>이 기대되는 이유. 류승룡과 천우희!’, ‘지극히 주관적인 7월 개봉 기대작 세 편’)에 걸쳐 <손님>에 대한 기대감을 내비치긴 했지만, 동시에 갈수록 대중성과 상업성에 함몰되어가는 한국 영화 산업이라는 전체적인 판도에 대한 우려를 저버릴 순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려는 생각보다 가볍게 해소되었고, 기대는 우려를 불식시키는 수준에 그쳤다. 충만했던 기대감은 가볍지 않은 우려에 상쇄된 셈이다. 하지만 짚고 넘어가야 하는 부분은, 우려와 기대가 같은 층위가 아니라는 것이다. 우려는 한국 영화의 구조적 문제였다면, 기대는 <손님> 자체에 대한 것이었다. ‘상쇄’라는 표현이 결코 ‘±0’을 의미하지 않는 까닭이다.

 

1. 일단은 선방!

 

근래 한국 영화의 구조적 특징이라 할 수 있는 ‘장르의 탈경계화’는 <손님>에서 적잖은 비중으로 드러난다. ‘장르의 탈경계화’란 쉽게 말해 장르의 구분이 사라지는 경향을 말한다. 최근 개봉한 한국 영화들 중에는 열에 아홉은 이런 경향을 보였다. 로맨스, 코믹, 스릴러, 드라마 등이 한 영화 속에 전부 포함되어있다.

 

이러한 현상 자체가 물론 (심각한) 문제는 아니다. 하지만 문제는 ‘탈경계화’된 장르가 영화에 있어서 일종의 구조적 전제가 되어버렸다는 것이다. 장르 구분을 떠나서, 같은 장르에 속한 영화라도 누가, 무엇을, 어떻게 찍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영화가 될 수 있다. 시종일관 심심하거나, 우울하거나, 웃기거나, 가벼운 영화들은 장르불문하고 존재할 수 있고, 존재해야 한다. 더 나아가 ‘기술복제시대의 예술’로서 영화라는 매체가 개개의 영화에 대한 특성들을 규정할 수도 없다. 하지만 근래 한국 영화에는 그런 개별성, 독창성이 결핍되어있다.

 

최근 개봉했던 <차이나타운>(한준희, 2014)에 나는 ‘걸작’이라고 표현했던 것은 바로 그런 맥락에서였다. 시종일관 음울하고 멜랑콜리함을 잃지 않는 집중력, 몰두는 그 자체로 무모한 도전이자 성취였다.

<손님>에서도 ‘장르의 탈경계화’ 현상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이를테면 영화는 기본적으로 공포, 스릴러라는 장르 위에서 아슬아슬 전개되는 와중에 로맨스, 코믹, 드라마를 놓치려 하지 않았다. 이는 대중의 요구와, 대중과 영합하는 자본의 요구에 굴복한 것이라고 할 만한 측면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저 대중성, 상업성에 함몰되지만은 않았다.

 

1-1. ‘공포’라는 장르적 특성

 

공포 장르에서 중요한 것은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직접 귀신이나 괴물 등을 등장시켜 대놓고 관객을 놀라게 할 수도, 아니면 공포감을 조성하는 대상을 시각화하는 것보다, 공포스러운 분위기 조성에 역점을 둘 수도 있다. <손님>은 보다 후자에 가까웠다.

 

특히 합리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 자연적 순리를 거스르는 현상들이 계속해서 형상화되었다. 핏덩이가 되어 쏟아지는 달걀, 한 방향으로만 부는 바람, 그리고 갑자기 멎은 바람, 생쥐의 잔혹성 등. 이런 방식은 말하자면 편리한 변명의 수단이 될 수 있다. 생각해보자. 저런 불가해한 현상들은 공포라는 장르적 특성을 구성하는 ‘단서’들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단서들이 여타 장르에서도 적용되진 않는다. 로맨스나 코믹, 드라마 등에서 단서랄 게 필요하진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단서란 편리한 도구다. 파편적으로 흐트러져 있는 것이야말로 단서이기 때문이다. 단서를 배치하는데 있어 시점, 맥락, 배경, 분위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오히려 단서들은 뜬금없이 삽입되는 쇼트, 예상치 못한 분위기 속에서 드러날 때야말로 단서로서의 제 기능을 보다 적극적으로 발휘할 수 있다. 단서가 편리하다는 말은 그런 의미다. 파편적 배치를 전제로 하는 단서의 특성상, 의도하거나 의도치 않은 구성이 용납될 수 있으니까.

 

<손님>에서는 종종 뜬금없는 코믹스럽고 가벼운 장면이 등장하곤 한다. 마을사람들과 쥐를 쫓겠다는 약속을 한 뒤 벌어지는 일련의 씬들도 그렇다. 맥락상 그 씬이 가벼워야할 이유는 전혀 없다. 불안으로 가득 찬 마을이 그 씬에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환하기 그지없다. 우룡(류승룡 분)이 아무리 낙천적인 인물이라 할지라도, ‘소 한 마리’ 값이 걸린 막중한 일을 하는 와중에까지 낙천적인 행태는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러한 모든 의문들은 단서의 성질, 더 나아가 공포라는 장르적 특성 앞에 가볍게 사라진다. ‘뭔가 있겠지’라는 기대 혹은 불안 앞에서 이해할 수 없고 납득하기 어려운 장면들은 외려 의미심장한 단서가 되는 것이다.

 

1-2. 연기력
 

애초에 나는 류승룡과 천우희의 연기를 기대했으나, <손님>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는 촌장(이성민 분)이었다. 그는 말투, 눈빛, 행동 어느 하나 부족한 것 없이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촌장의 존재는 영화 자체의 흐름, 분위기를 넘어서는 에너지를 내뿜는다.

 

그건 뜬금없이 등장하는 코믹스러운 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마을사람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하는 씬에서 ‘좌시’라는 단어를 갖고 우스꽝스러운 이야기가 오고간다. 그런데 해당 씬은 긴장과 갈등이 고조되는 부분에 삽입되어있다. 전혀 어울리지도 않고, 또 예상하지도 못한 지점에서 우스꽝스러움이 강조된 셈이다. 자칫 그런 요소는 해당 씬 전체의 위치를 애매하게 만들어버릴 공산이 크다. 잠깐 치고 빠지려다 씬 전체의 분위기를 가볍게 만들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돌연 드러난 가벼움은 의외로 쉽게 가라앉았다. 촌장의 단호한 시선과 말투는 그 이전의 분위기를 한 번에 쓸어 담는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러니까 <손님>의 선방에서 반은 장르 덕, 나머지 반은 배우들의 뛰어난 연기력 덕이라고 할 수 있겠다.

 

2. 반전은 없었다

 

이전에 썼던 기대평에서 나는 <손님>에서 마을의 비밀이 어떤 식으로 풀어헤쳐질지 궁금하다고 적었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반전은 어떻게 제시되며,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했다. 마을 사람들의 이상한 행동들이 반전 이후 주마등처럼 스쳐가며 제자리를 찾아가는 순간을 예감했다.

 

하지만 영화에서 반전은 없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랬다. 반전 비스무리한 것은 있었으나, 결코 내가 예감했던 반전의 순간은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을의 음산한 분위기, 사람들의 적대감, 촌장의 과잉된 여유로움과 그 속에 숨겨진 예민함, 미숙(천우희 분)의 불안과 그 와중에 나타나는 여유로움, 남수(이준 분)의 폭력성과 과거 나약함 사이의 괴리 등. 이 모든 것에 대한 의문점들을 한 번에 해소시켜주는 순간은 없었다. 그저 개략적인 과거를 보여줄 뿐이었다.


나머지는 관객의 몫으로 남긴 것인가. 그렇다고 볼 여지도 있으나, 반전에 초점을 뒀던 일인으로선 예상과는 달리 허무한 반전은 아쉽기 그지없다

.

3. CG는 너무했어~

 

CG는 진짜 너무했다. 영화평론가 정성일은 <명량>(김한민, 2014)의 CG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했다. 문제는 그보다 훨씬 더 잘 할 수 있는 기술과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식으로밖에 CG를 구사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손님>의 CG에 비해 <명량>의 CG는 황홀한 수준이다. 영화의 주요 역할을 맡은 생쥐들의 움직임은 2000년대 초반의 CG를 보는 것만 같았다. 퇴보라고 할 만하다. 제작비를 아끼려 했던 것일까. 배우들의 몸값이 높아, 나머지 부분에서는 비용이 가장 큰 고려 대상이었을까.

 

하지만 효율성으로도 이해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효율성은 단지 비용을 최소화하는 것이 아니다. 편익(여기서는 관객의 만족도)도 고려되어야 한다. 비용이 아무리 적더라도 그만큼 편익이 낮다면 그건 효율적인 것이 아니다. 조악한 CG를 통해 비용을 줄였을 순 있다. 하지만 그 편익은 어떠한가. 오히려 지나치게 감소한 편익이 어렵사리 낮춘 비용을 상쇄하고 있지 않은가.

 

특히 마지막 씬이 그렇다. 거기서 쥐들의 비중은 굉장히 높다. 그전까지야 쥐들은 그저 몰아내려는 대상에 불과했다. 우룡과 마을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 부차적인 위치만을 차지했다. 여기서는 굳이 CG에 신경을 쓰지 않는 편이 효율적일 수 있다. 편익에 비해 비용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에 쥐들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는 씬에서 조악한 CG는 그야말로 비효율적이다. 쥐에 대한 몰입 방해는 곧 주요 긴장관계가 흐트러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편익의 감소는 비용을 상쇄하는 것을 넘어선다. 어떤 이유로 CG의 수준이 낮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전략적인 이유였다면 실패다.

 

 

* 사진출처: 다음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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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화는 영화이기 전에 이미 영화 '산업'이 돼 버렸습니다.
    '산업'이란 건 거대한거죠. 거대함은 한 개인의 흐름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 홍수가 나서 큰물이 흘러 마을를 휩쓰는 격이져.
    너의 취향, 나의 취향,, 그건 '너'와 '나'의 혼자의 생각일테죠.

    세계는 거대한 자본의 논리의 거대한 수레바퀘 아래 굴러가는 획이되고,
    석유든, 음악이든, 석유든, 영화든 머든,,, 돈이 되는 머든,, 다 하나의 산업입니다.
    냉철한 비평은 아름다워요, 부모 없는 자식이냐 ,, 류의 근본의 물음은...

    저 곰 좀 혼내줘요 누가 ㅜㅜ 곰 미워잇~

  2. 2015.08.03 17:39 신고

    젠장

    때문에
    댓글
    남긴다.
    젠장.
    때리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