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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빵

<빵집성애자 번외편> 세월을 버텨온 목포의 빵집 코롬방제과

미안하다. 번외편이다. 번외편이라고 하면 본래 본 편 사이사이에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프롤로그 편 바로 다음에 번외편이 나오게 돼서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말하겠다. 서울/고양 지역을 돌아보겠다고 당당히 선포했는데, 많은 사람들(?)의 기대를 외면한 채 목포에 있는 빵집에 다녀왔다. 빵집을 가기 위해 목포에 들린 것은 아니고, 목포에 들렸다가 빵집이 있어 들린 것이 맞겠다.

자 오늘의 빵집은 코롬방제과다. 코롬방제과에 붙는 수식어들은 참 많다. 국내최초 생크림을 사용한 전통의 빵집, 군산 이성당과 함께 호남 지역에서 가장 오래된 빵집, 전국 5대 빵집 가운데 하나… 화려한 수식어가 가득한 이곳은 목포에서 관광코스 가운데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5대 빵집이라는 것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이다. 그래서 여타 블로그, 뉴스 등을 뒤적여도 5대 빵집에 하마평에 오르는 곳들은 5개를 훌쩍 넘는다. 그래도 자주 거론되는 빵집을 얘기하자면 군산의 이성당, 전주의 풍년제과, 대전의 성심당, 광주의 궁전제과 그리고 목포의 코롬방제과로 말할 수 있겠다. 나는 이 다섯 군데 가운데 코롬방제과를 포함 네 군데를 돌아다녔다. 저마다의 시그니처 메뉴가 다르고 위치도 전국 팔도 곳곳에 있어 멀찍이 떨어져있지만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참 닮아있다는 인상이었다.

 

이날은 갑자기 비가 내렸다. 또 예보에서는 흙비라고 하기에 비를 맞을 수 없어서 목포역 근처 편의점에서 우산을 구입했다. 툭툭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목포역에서 코롬방제과까지 금세 걸어갔다. 성인 남자 걸음으로 약 5분 정도 걸린 것 같으니,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목포역에서 이곳을 찾을 때 10분 안팎으로 걸리지 않을까 생각했다.

 

평일이어서 그리고 비가 와서 그런지 빵집 실내는 다소 한적했다. 아마도 주말에 방문했으면 이 정도로 여유 있게 구경할 수 없었을 텐데, 다행일 적 싶었다. 손 글씨로 써져 있는 팻말에는 요 근래 생소하게 느껴질 빵 이름보다는 옛날 빵집의 추억을 떠올리기 참 좋은 이름들이 가득했다. 고로켓, 고구마 파이, 바나나 카스테라, 찹쌀 꽈배기 등등. 요즘 들어 난무하는 외래어 빵들에 비하면 이들은 쓰담쓰담해주고 싶은 욕구가 샘솟았다.

 

이 집의 시그니처 메뉴(이 집의 가장 유명한 대표 메뉴)는 새우 바게트와 크림 치즈 바게트였다. 크림 치즈 바게트는 진열대에서는 찾을 수 없고 계산대 뒤편에 호일에 포장된 채 쌓여 있다. 이 두 가지 메뉴를 냉큼 집어 들고 2층으로 향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창문을 때리는 것이 괜히 멋스러워서 창가에 앉았고 핫초코와 함께 마침내 이 빵들을 먹었다.

 

먼저 새우 바게트. 사실 새우 바게트는 어디에서도 먹어보지 못했던 메뉴였다. 어떤 맛일지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조금 평범했다. 평범함의 연원은 내가 어렸을 적 즐겨 먹은 새우깡으로 거슬러 오른다. 딱 바게트 버전 새우깡 맛이라고 할까? 재방문 시 새우 바게트에 대한 구매 의사는 미안하지만 없다. 하지만 위에 소보로 비슷한 고명이 붙어 있는 것이 고소하고 단맛을 더해주는 것 같아 그나마 조금 다행이었다고 생각한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앞에 새우바게트에 혹평을 늘여놓은 까닭은 크림치즈바게트에 대한 예찬을 늘여놓기 위한 연유에서다. 크림치즈를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그만큼 수많은 곳에서 크림치즈 빵들을 맛봤기 때문에 기대가 크게 들지 않은 것이 사실이었다. 헌데 한 입 베어 먹은 순간 겉의 빵은 따뜻했는데 새어 나오는 크림치즈의 차가움은 왠 말이냐? 안의 크림이 차가워 느끼할 새 없이 후루룩 넘어갔다. 그리고 세월이 들어있는 이 크림치즈는 다른 프렌차이즈 빵집에 크림치즈의 가벼움과는 비할 바 못됐다.

 

두둑하게 부른 배를 두드리며 코롬방제과의 방문을 마쳤다. 지역을 대표하는 전통의 빵집들은 끊임없이 개발해야하는 숙명을 지닌 신생 빵집의 고민과는 사뭇 다른 고민의 직면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을 멈추어야 비로소 살아남을 수 있는 곳. 아무리 목포가 개발하고 변하한다고 해도 코롬방제과의 문을 연 순간 다른 차원의 세계로 접어든 것이다. 시간이 흐르지 않고 늘 그대로인 곳. 전에 먹었던 빵을 다음 방문에도 그대로 먹어볼 수 있는 곳. 수십년을 버텨온 전통 빵집의 매력은 이런 것에 있지 않을까? 또 한 몇 년 뒤에 목포를 방문했을 때 왠지 이 곳 만큼은 그대로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