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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미힐미와 닮은 듯 다른 <A씨에 관하여> (상)

솔직히 고백하겠다. 오랜만에 읽은 소설 치고는 꽤 괜찮았다. 그러나 걸작으로 꼽을 만큼 좋지도 않았다. 하지만 책을 쓴 저자의 나이는 열일곱. 소설을 쓸 당시 나이가 열여섯이란다. 도대체 뭘 하는 친구일까. 10년 전의 나는 책을 쓰기는커녕 읽지도 않았는데…. 갖은 생각을 뒤로 한 채 소설이 전하는 메시지를 재차 곱씹는다.

<A씨에 관하여>는 치유의 이야기다. 소설은 크게 3가지 Chapter로 나뉜다. 남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존재로 고통 받는 한 소녀의 이야기인 <개가 있었다>,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는 <고래를 찾아서>, 무언가에 쫓기듯 열차에 올라야만 하는 한 남자가 등장하는 <Train Ticket>. 3가지 이야기는 독립적이면서 유기적이다. 모두 개별적인 사건이지만 동시에 A씨가 등장한다. A씨의 정체는 수수께끼다. 에필로그에서 그 정체는 드러나지만 독자들은 아리송할 수밖에 없다. 그 아리송함을 책의 말미 저자 인터뷰에서 어느 정도 풀 수 있으리라.

 

<킬미힐미>와 비슷한 듯 전혀 다른 <개가 있었다>

 

첫 번째 Chapter <개가 있었다>를 보며 제일 먼저 떠오른 이야기는 드라마 <킬미힐미>였다. 다중인격이라는 소재 때문이었다. 하지만 안현서의 이야기는 킬미힐미의 그것과는 미세한 차이가 있었다. 결과적으로 이 미세한 차이가 소설의 장단점을 부각시켰다. 먼저 킬미힐미와 달리 소설에서는 다양한 인격체들의 등장에 일련의 규칙성이 있다. 달리 말해 등장하는 순서가 정해져 있다. 개, 노인, 어린아이, 철학자, 염세적인 남자, 살인자 순이다. 그리고 이 캐릭터들은 모두 주인공의 감정의 한 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일관된 규칙성 덕분에 독자들은 소설을 읽으며 캐릭터를 혼동하지 않는다.

 

드라마와의 또 다른 차이점은 인격의 전이가 일어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인공 한이는 6명의 인격을 직접 마주한다. 그러니까 각각의 개성 있는 인물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다. 소설이기에 이 대화는 더욱 더 부각될 수 있다. 만약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스스로와 대화를 나눠야 했다면 보나마나 거울이 필요했을 것이고, 반복되는 거울 씬에 사람들은 지루함에 채널을 이내 돌려버렸을 것이다. 그러니까 소설에 가장 적합한 방식으로 다중인격은 표현됐다고 평가할 만하다. 감정을 극대화하는 개, 지혜를 선물하는 노인, 기억을 담당하는 어린아이, 긍정적인 이상을 대표하는 철학자, 철학자와 같은 얼굴을 했지만 전혀 다른 비관론자인 염세적인 남자, 그리고 두려움을 상징하는 살인자까지. 주인공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각각의 캐릭터는 구체화된다. 그리고 이 작업을 거치며 우리는 우리 안에 내재된 다양한 인격체들을 조우할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엔 있지만 소설에는 없는 것도 있다. 그것은 정신분열의 원인이다. 킬미힐미의 차도현은 어린 시절 분명한 트라우마가 있었다. 그러나 소설의 주인공은? 뚜렷이 제시되지 않는다. 애초에 원인이 있어서 병이 생긴 듯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그래서 갈등이 해결된 뒤에도 찝찝함이 남는다. 킬미힐미는 어린 시절 겪었던 트라우마를 직접 마주하는 방식으로 갈등이 봉합됐지만,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직접 각각의 인격들을 만나 해결한다. 다소 거칠게 말하자면 얼렁뚱땅 해결되어 버린다. 여기서 각각의 인격이 등장하는 순서는 마이너스 효과를 만들어낸다. 개를 해결했으니 마지막 살인자도 결국 해결될 거라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첫 번째 이야기는 만족스러웠다. 다양한 인격을 균형 있게 설정한 것 자체로도 작가는 꽤나 고민했으리라 생각한다(나는 이 캐릭터 설정에 작가가 많은 비중의 노력을 쏟았으리라 감히 예측한다). 이밖에도 주인공이 주인공 엄마와 나누는 대화가 인상 깊었다. 서로를 폭력이 아닌 존중하는 방식으로 대하는 모습에서 따뜻함을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다음의 문구에서 작가의 따스함이 절로 느껴졌다.

 

“엄마는 생각한다. 이 세상에 손해만 나는 일은 없다고, 결코 없다고. 고통도, 이별도, 억울함도…… 지나고 보면 눈에 보이지 않는, 평가할 수 없는, 훗날이 되어야 알게 되는 큰 그 무엇을 같이 얻게 된다고 말이야. 그래서 네 병도 분해하지 않는다. 너는 꼭 치유될 것이고, 또 더 큰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는데 왜 엄마가 속상하겠어…….”(39쪽)

 

두 번째와 세 번째 이야기 그리고 A씨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 주에 이어 설명하도록 하겠다(책을 정독했음에도 여전히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