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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왜 그렇게 영화를 진지하게 봐?'에 답함 * 원래 에 대한 리뷰를 쓰려 했는데, 의도치 않게 서문이 길어지고 따른 얘기가 되어버려서 따로 옮깁니다. ‘천만’ 영화가 판치는 세상이라 그런가. 돈 좀 들인 영화의 개봉이 가까워질수록 호들갑은 사방에서 한층 부풀어 오른다. “손익분기점이 얼마야?” “오백 만은 넘어야 뭐라도 좀 남을 거 같은데, 글쎄...” 심지어 경영계에서나 쓰였던 전문용어 ‘비피BP(손익분기점)’가 영화를 얘기하는 와중에 종종 튀어나오기도 한다. 아무리 영화의 실질적인 출발점이 (토마스 인스로 대표되는 헐리우드 영화) 산업화에 있었다고는 하지만, 영화가 그저 자동차나 냉장고, 전자레인지와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자동차 시동을 켜며 눈물을 훔치거나, 냉장고 문을 닫으며 벅차하거나, 전자레인지를 작동시키면.. 더보기
<우먼 인 골드>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 사이는 얼마나 먼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것이 있다. 이를테면 1980년의 광주. 그곳에서 처참히 죽어간 이들과, 그들과 연대한 시민들, 믿을 수 없이 아름다웠던 광주의 코뮌, 그리고 그들에게 총구를 겨눈 이들. 그런 것들을. 당시의 분위기나 냄새, 함성, 총성은 물론 광주에 발 디딘 모든 이들의 표정조차 나는 가늠할 수 없다. 짐작할 순 있으나, 결코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있다. “나는 왜 광주에서 죽지 않았는가?” 1980년 5월을 지낸 이들은 둘로 나뉜다. 죽은 자와 죽지 않은 자. 죽지 않은 자에게 삶이란 죄책감의 연속이었다. 죽지 않아 사는 삶. 80년 광주에서 죽지 않은 이유를 끊임없이 되물으며 사는 삶. 80년 5월이라는 시간과 광주라는 공간 밖의 모든 존재들에게 삶은 곧 죽지 않음이었다. 그리고 2015년 7.. 더보기
<숏 텀 12>에 대한 두 가지 키워드 영화 홍보가 부족한 탓인지, ‘힐링’이라는 표현을 여기저기 갖다 붙이는 유행이 지났기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그 이유야 어쨌건, 다행히도 을 다룬 글들에는 ‘힐링 영화’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 그런데 도대체 ‘힐링’이란 무엇인가. ‘힐링’은 치유와 다르다. 물론 영어사전을 찾아보면 ‘healing’은 ‘치유’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나는 지금 단순히 사전적 의미를 얘기하고 있는 게 아니다. 중요한 건 지난 몇 년 동안 사회 문화적인 형성물로서 ‘힐링’, 그러니까 우리가 추상적으로 어렴풋하게 떠올리는 개념이 아니라 그동안 다양한 매체를 통해 직접 느끼고 경험해온 대상으로서 ‘힐링’이다. 이런 관점에서 ‘힐링’의 주요 특징을 두 개 정도로 추려볼 수 있다. 우선 힐러, 즉 치유자가 분명히 존재한다. 곧, 힐.. 더보기
<손님>이 기대되는 이유. 류승룡과 천우희! 개봉하지도 않은 영화를 기대하게 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매달 ‘지극히 주관적인’ 영화 기대작들을 소개해왔는데,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첫째가 감독의 필모그래피고, 둘째는 ‘신박’한 네러티브이며, 셋째는 바람에 실려 오는 영화에 대한 평가, 혹은 영화제 수상 이력 등이고, 마지막으로, 영화에 참여한 배우들이 주된 고려사항들이다. 그런데 7월에 개봉하는 에 대한 나의 기대는 좀 특이하다. 감독 김광태는 이 첫 연출작이며, 특이할 만한 영화에 대한 평가는 없었다. 한국의 토속적 배경과 유럽 풍 이야기를 섞은 네러티브는 흥미롭긴 하지만, 공포 장르는 평소 잘 찾아보지 않는다. 어딘가 익숙한 분위기도 영화의 개성에 대한 기대를 다소 낮춘다. 하지만 그럼에도 에 대한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것은 바로 배우들 때문이.. 더보기
<도쿄 트라이브>에 대한 두 가지 키워드 화끈하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움! 자극적이다. 통쾌하다. 섹시하다! 여기까지가 에 대한 나의 긍정적인 감상평들이다. 는 인상적인 작품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영화에서 시각, 청각을 자극하는 ‘인상’이란 가장 기본적인 층위이긴 하더라도, 반대로 1차적인 감상에 불과하다. 거기서 그친다면, 해당 영화에 대해 웰메이드라는 수식어를 붙이기 어렵다. 그런데 문제는 에 이 같은 잣대를 들이대기란 간단치 않은 문제다. 이건 소노 시온이라는 이름, 더 나아가 B급 영화라는 장르의 개성이자 동시에 한계이기도 하다. 에 대한 실망감을 본격적으로 펼치기 이전에, 짧지 않은 변명부터 늘어놓을 수밖에 없는 이유기도 하다. 1. B급 영화 B급 영화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저급’ 영화를 가리킨다. 대공황기 미국 영화 산업.. 더보기
<마이 페어 웨딩>에 대한 두 가지 키워드 결혼식에서 ‘서로 인사하고 축하하고,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고. 거기에 참여하지 못하는 사람은 앞에 서서 사랑을 맹세하는 두 남녀뿐이다.’ 적지 않은 나이임에도 청춘을, 사랑을, 연애를 매번 풀어내는 소설가는 언젠가 이렇게 썼다. ‘결혼식을 치르고 난 뒤에야 광수는 결혼이 남녀 사이가 아니라 집단 사이에 성립되는 상호증여의 한 형식이라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이런 말도 덧붙였다. 전적으로 동의한다. 결혼은 제도고, 계약이자 규약이다. 속 김조광수의 말을 빌리자면, 연애에서 ‘일 번’은 사랑이지만, 결혼에서 ‘일 번’은 계약이다. 결혼의 밑바닥에는 감정적 상호작용(사랑)이 아니라, ‘계약 기간 동안 당신만을 사랑하겠다.’는 암묵적 의무이자 금기가 굳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2..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6월 개봉 기대작 세 편 갑갑한 유월이 찾아왔다. 머지않은 기말고사가 끝나면 방학이다. 방학인데 왜 갑갑하냐고? 지금까진 나한테도 방학은 단꿈이었다. 짧지 않은 꿈은 늘 짧았다. 벌게진 팔뚝과 그 위에 말라붙은 침만이 내가 헤매이지 못한 꿈 밖 시간들을 보증하듯, 방학 이후 남는 거라곤 삭제된 알람 어플과 새까맣게 탄 팔둑, 혹은 두둑하니 불어난 살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방학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맞다. 막 학기가 끝나간다. 이제 대학교를 떠나 취업전선에 뛰어들어야 할 시기가 왔다. 어쩐지 마지막 방학까지 남은 시간이 금방 갈지도 모르겠다. 단꿈처럼. 어쩌면 지금껏 시험공부를 유예하고 있는 것도 다 얼마나 길지 모를 방학을 맞이하기 두려워서가 아닐까. (물론 팔 할은 변명이지만.) 갑갑한 유월에도 단꿈처럼 여러 영화들이 개봉한.. 더보기
<써드 퍼슨>에 대한 두 가지 키워드 은 파리, 로마, 뉴욕에서 각각 벌어지는 세 이야기를 다룬다. 하지만 세 곳에서 벌어지는 세 이야기는 마냥 독립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이야기들은 기묘하게 서로 연결되어있다. 이를테면, 파리에서 마이클(리암 니스 분)과 안나(올리비아 와일드) 묵는 호텔과 뉴욕에서 줄리아(밀라 쿠니스 분)가 근무하는 호텔은 마치 하나의 공간인양 이어진다. 또한, 줄리아의 뉴욕과 스콧(애드리언 브로디 분)과 모니카(모란 아티아스 분)의 로마 사이는 비슷하지만 다른 풍의 멜로디로 이어진다. 말하자면 영화 전체는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다. 별 다른 사건 없이 영화가 진행되는데도 불구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끊을 쉽사리 놓지 못하는 까닭이다. 영화는 끊임없이 미세한 수수께끼를 던진다. 서로 연결될 수 없는 지점들을 마구잡이.. 더보기
<매드맥스: 분노의 도로>에 대한 세 가지 키워드 아니, 이 영화의 러닝 타임이 정녕 두 시간이라니.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이후 )의 상영 시간은 네이버나 다음이나 어딜 가서 찾든 ‘120분’이라 명시되어있다. 혹시 아직도 영화에 홀려있는 이라면 믿기지 않을 숫자일 테다. 직접 찾아봐도 좋다. 그 덕분일까. 영화관에서 으레 밝혀지곤 하는 핸드폰 액정이 이번만큼은 잠잠했다. 요새 중고등 학생들이 영화관에 가는 것을 기피하는 이유 중 하나가 핸드폰을 볼 수 없기 때문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그렇다면 야말로 중고등 학생들에게 추천해야할 영화 1순위리라. 그야말로 영화에 압도되어 모든 것을 잊을 테니까. 그들뿐만 아니라 영화를 데이트 수단 등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주목하길! 를 통해 그대들은 영화가 시각뿐만 아니라, 청각을 좌지우지하고, 숨을 가파르게.. 더보기
<포스 마쥬어: 화이트 베케이션>에 대한 세 가지 키워드 모처럼 토마스(요하네스 쿤케 분)는 휴가를 내고 가족과 함께 프랑스의 스키장으로 놀러간다. 다음 날, 설경으로 둘러싸인 전망을 즐기며 그들은 야외 테라스에서 식사를 한다. 갑자기 퍼펑! 하는 소리와 함께 눈사태가 발생한다. “다 통제되었다.”며 토마스는 가족을 안심시킨다. 하지만 좀처럼 눈사태는 멈출 기미를 보이지 않고, 결국 테라스를 뒤덮는다. 위급한 상황에서도 아내 에바(리사 로벤 콩슬리 역)는 두 아이를 품에 안아 보호한다. 그런데 거기에는 토마스가 없다. 그는 눈사태가 막 테라스를 덮치기 이전에 ‘혼자’ 빠져나갔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눈사태는 가짜였다. 사실은 눈사태가 아니라 눈 먼지에 불과했던 것. 도망쳤던 사람들이 우왕좌왕 테라스로 돌아오고 뒤늦게 토마스도 가족에게 돌아간다. 여기서부터 (이후..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