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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엘리펀트> 말하기 방식을 나눈 까닭은 영화는 아무런 정보 없이 봐야 제맛이다. 를 무턱대고 봤다. 처음엔 별다를 것 없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단조롭게 다룬 영화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 영화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보여줬다. 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그어져 있다. 둘 다 같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영화가 보이는 방식은 전반부와 전혀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아예 별개로 볼 수 있다. 그 정도로 앞뒤는 동떨어져 있다. 영화는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가? 전반부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네들의 일상을 담는다. 다소 지루할 정도로.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그네들은 모두 나름 고민거리와 갈등이 있는 것 같.. 더보기
<메콩호텔> 영화에서 음악은 무엇일 수 있는가? 영화에서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은 영화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건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요새 개봉한 한국영화들을 줄지어 본 관객이라면 다소 낯선 이 두 질문에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서사면 서사고, 배우면 배우지 뜬금없이 음악이라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올 1월 들어 본 (‘, 비판적으로 보기 위한 다섯 가지 팁’)과 (‘, '감독' 하정우에 대한 첫 번째 기대와 실망’)에서 음악이란 영화의 편리한 소재 정도에 불과했다. 거기서 음악은 적재적소를 가리키는 지시 도구이자 텅 빈 기호였다. 울어야 할 때, 혹은 웃어야 할 때를 은연중에 ‘강제’하고, 감정적 효과를 증폭시키는 복병이었다. BGM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듯, 음악은 시종일관 영화의 뒤에 숨어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 관객을 저.. 더보기
<강남 1970>과 유하에 대한 3가지 키워드 *본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내게 유하는 영화감독 이전에 시인이었다. ‘이 지독한 마음의 잉잉거림’( 중). 한때 유하는 내게 사랑의 이름이었다. 하지만 ‘영화감독’ 유하는 유하라는 이름에 건 나의 기대를 와르르 무너뜨렸다. , . 나는 지금까지 유하의 이런 뚝심 혹은 비뚤린 행보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심지어 이후로 유하를 이해하려는 시도조차 포기했던 적이 있었다. 유하가 변했다! 혹은 유하는 원래 이런 사람이었구나. ()의 개봉 소식을 접한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유하구나. 하지만 문득 궁금해졌다. 도무지 지워지지 않는 물음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두 번까지는 그렇다 쳐도, 세 번이나? 앞의 두 영화도 그렇고 은 사실상 ‘조폭’ 영화다. 물론 배경이나 상황 설정은 다르지.. 더보기
<우리선희> 솔직히 말해줘, 다만 내가 원하는 걸 “선희야!” 세 명의 남자가 여자를 부른다. 여자는 ‘선희’로 호명된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여자에게 여러 속성을 강제한다. 제목에서처럼 여자는 ‘우리(의) 선희’가 된다. 여기서 방점은 ‘우리’에 찍혀야 한다. 우리가 없다면 선희도 없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선희는 정말 일방적으로 호명을 당하는가? 우리는 영화에서 ‘진짜’ 선희를 고민해야 하는가? 다시, “선희야!” 세 명의 남자가 여자를 부른다. 하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건 “선희야!”가 결코 호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희야!”는 오히려 대답이다. 선희의 부름에 대한 반응이다. 애초에 선희(정유미 분)는 영화로 침범해 들어온다. 동현(김상중 분)은 대학의 벤치에 앉아 있었고, 문수(이선균 분)는 건널목에서 막 후배와 헤어졌으며, 재학(.. 더보기
<허삼관>, '감독' 하정우에 대한 첫 번째 기대와 실망 *보기에 따라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얼마 전, 1월의 기대작을 소개한 적이 있었다.(‘지극히 주관적인 1월의 기대작 세 편’) 하정우가 메가폰을 잡은 도 그 중 하나였다. 글에 적어놨듯, 은 이후 내가 접한 ‘감독’ 하정우의 두 번째 영화였다. 하지만 은 내가 ‘감독’ 하정우에 대해 처음으로 기대한 영화였다. ‘역시 하정우는 연기자야.’ 영화관을 나오면서 강렬히 떠오른 생각이었다. 적잖은 실망과 함께. 하지만 이상하게도 하정우에 대한 애정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처음으로 ‘감독’ 하정우에 대한 기대가 와르르 무너진 것 맞지만, 결코 하정우의 새로운 영화를 외면할 순 없을 것만 같다. 다르게 말하면, 에서 나는 ‘감독’ 하정우에 대한 실망과 동시에 가능성을 보았던 셈이다. 이해를 돕기 위해.. 더보기
기억의 고독, 고독의 기억 <경주> * 보기에 따라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너, 괜찮냐?” 경주행은 그렇게 비뚠 핀잔 이후였다. 7년 전의 기억이다. 그저 그런 기억들이 춘원(곽자형 분)과의 회포를 뒤로 한 경주행의 모든 까닭이었다. 그러므로 경주란 기억의 도시이다. 경주에는 그들이자 찻집이자 춘화가 있었다. 아니, 그 모든 것들이 경주 자체였다. 경주야말로 기억이었다. 경주에 간 최현(박해일 분)은 마땅히 기억을 붙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묘하게도 기억은 항상 어긋나고야 만다. 경주에서 헤집은 기억들은 어떤 사실도 말해주지 못한다. 돌다리를 가로질렀던 물은 메마르고, 여정(윤진서 분)은 진즉 애를 지웠다. 윤희(신민아 분)는 사실 7년 전에 최현들을 대했었고, 불쾌함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어긋나버린 기억을 마주하여 경주.. 더보기
<언브로큰>을 보고 <국제시장>이 연상된 네 가지 이유 어제 안젤리나 졸리의 첫 연출작 을 설레는 마음으로 보러 갔다. ‘감독’ 안젤리나 졸리 혹은 영화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았다. 다만 안젤리나 졸리라는 이름 혹은 사람에 대한 기대랄까. 사실 그녀의 연기를 좋아하는 편도, 그녀의 외모에 그렇게 큰 매력을 느끼는 편도 아니다. 왜, 그냥 누군가 이름만으로도 아우라가 풍겨 나오는 사람. 뒤에선 욕하다가도 막상 마주치면 입도 뻥끗 못 할 것 같은 그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내게 안젤리나 졸 리가 그런 존재라는 걸 영화를 보러 가는 길에 깨달았다. 하지만 을 보는 내내 (안젤리나 졸리가 이 글을 볼 리 없으므로 하는 말이지만) 고통스러웠다. 아래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지겨웠고(지루하진 않았다), 뻔했고, 민망했고, 오글거렸다. 일전에 (윤제균, 2014)에 대해서.. 더보기
“사는 게 숨이 차요.”, <거인>의 화법 *보기에 따라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태용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실상 부모가 부재한 영재(최우식 분)의 지독한 성장기다. 영화는 계속해서 영재의 비극적인 행보를 아슬아슬하게 따라다닌다. 집에서 뛰쳐나온 영재는 보호원(이삭의 집)에서도 '집으로 돌아가라'는 암묵적인 압박을 받는다. 거기서 영재는 신부가 되겠다는 가녀린 희망 하나로 아등바등 삶을 버텨낸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말하자면 영재는 불쌍한 아이다. 영화 초반. 사건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 그러니까 영재가 놓인 생활환경부터 안타깝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영재는 더욱 더 불쌍해진다.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재는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다. 여기까지는.. 더보기
<마미>, 놓쳐선 안 될 세 가지 물음들 는 내가 본 자비에 돌란의 첫 번째 영화이지만, 자비에 돌란에게 있어서는 다섯 번째 영화였다. '칸의 총애', '25살의 천재', '게이', '칸 영화제 최연소 심사위원상'의 감독. 그를 따라다니는 수많은 수식어들을 뒤로 한 채 영화를 보러 갔다. 나는 영화를 보기 전에나 본 후에나 영화 밖의 어떤 문맥도(예컨대 영화의 비하인드 스토리라든지, 감독의 말이라든지,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이라든지) 외면하려는 편이다. 영화를 영화 그 자체로 보고 읽는 것만으로도 벅차기 때문이다. 유일한 예외가 있다면 감독의 자장 내에 있는 다른 영화들의 문맥 속에 영화를 위치시켜보는 것 정도라고나 할까. 아무런 정보도 없이 선뜻 '문제적' 감독의 영화를 보러 간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사전에 영화나 감독에 대한 .. 더보기
여우주연상의 그녀, 천우희의 영화 <한공주> 나는 와 를 비교한다든지, 한공주를 보고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꼈다든지 하는 얘기들을 선뜻 이해할 수 없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어떤 감정의 과잉을 참을 수 없었던 것은 나도 마찬가지였으나, 그걸 분노라고 생각진 않았다. 누군가는 끓어오르는 분노를 도대체 어떤 인물에게 분출해야할지 몰라 답답했노라 말했다. 당연하다. 는 결코 고발영화가 아니니까. 는 밀양 성폭행 사건을 재구성하여 사회적 관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목적으로 제작된 영화가 아니다. "소녀가 포기하지 않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감독의 작의(作意)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입니다' 라는 흔한 문구조차 제시되지 않는다. 그러니까 는 허구와 실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지 않다. 감독은 이 영화가 단지 허구로 읽혀도 좋다고..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