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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시간'에 대하여 [서평]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 타인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착각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조차 이해하지 못한 삶을 지속할 뿐이다. 당신의 고통에 공감한다고 말하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당신의 아픔의 저 기저까지 닿을 수 있다는 오만의 산물일지도 모른다. 이해한다는 것은 그래서 어려운 말이고, 함께 가자는 말은 그래서 더욱 힘든 말이다. 사실 에 대한 리뷰들은 이미 많다. 대개의 경우들은 이제까지 알지 못했던 열악한 시간강사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며 그 어느 때보다 절박한 '헬조선에서의 생존기'로 여기는 경우들이 많다. 카드뉴스 형태 등으로 클립화 된 책의 주목받았던 중요한 부분들은 최저시급도 안 돼 최소한의 생계조차 유지할 수 없는 대학원 조교의 열악한 삶, 맥도날드 알바도 .. 더보기
염상섭 <만세전> 은 기본적으로 (남성) 지식인 이인화의 서사이다. 그러므로 남성 서사라 불러도 무리는 없겠다. 그런데 그의 행로 중에는 계속해서 다양한 여성들이, 그것도 간헐적으로 반복되며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귀향’하는, 그리고 다시 ‘탈향’하는 과정에 있는 이인화의 심리적 불안, 모호함, 혼란 등에 있어서 의미심장한 의미를 띤 채 형상화되고 있는 여성들을 꼽아보자면 이인화의 아내, 정자, 을라, 그리고 ‘큰 형님의 둘째 아내’ 정도가 되겠다. 이들은 다시 이인화의 심리적 불안의 근저에 도사리고 있는, ‘반봉건성이 여전히 만연한 식민지 조선의 현실’과 ‘소위 지식인으로서 조국을 떠나 마주한 근대적 일본(에서 살아가는 자아)’라는 두 축을 기준으로 나눠볼 수 있겠다. 전자는 아내와 큰 형님의 둘째 부인, 후자는 정자.. 더보기
던컨 폴리 <아담의 오류> 2014년도 1학기, 그러니까 3학년 2학기부터 복수전공으로 경제학을 듣기 시작했다. 굳이 경제학을 선택한 건 무엇보다 본전공인 국문과 학위만을 가지고는 취업이 어렵다는 현실적 판단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것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문학적인) 공부를 하는 중 여러 번 사회·경제적인 사유에 맞닥뜨릴 때마다 느꼈던 좌절감을 극복하기 위한 일환이기도 했다. 본격적으로 경제학을 공부하겠다, 계획했던 건 군대에서 갓 병장을 달았을 때, 그러니까 2013년 초였다. 경제학에 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나는 경제학을 공부하던 친구에게 텍스트를 추천해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공부를 시작하는 거라면”이라고 운을 뗀 뒤, 난생처음 듣는 작가의 생소한 제목의 텍스트를 언급했다. 던컨 폴리, 『아담의 오류』. 『아담의 오류』는 .. 더보기
에르네스트 르낭 <민족이란 무엇인가> 1. 에서 드러나듯, 르낭은 프로이센의 군국주의가 독일 통일 및 유럽의 발전에 긍정적인 기능을 할 거라 믿었다. 하지만 독일이 통일된 이후로 프로이센은 소멸되어야 (독일로 흡수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는 선례로 이탈리아의 통일 과정을 제시했다. 물론 프로이센에 대한 르낭의 모호한 입장은 기본적으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 때문일 것이다. 1870년 이전까지 그는 독일의 지성, 프로이센의 남성성을 동경하는 지식인 중 하나였다. (개인적으로 의 상당부분에서 그런 뉘앙스를 느끼기도 했다.) 그랬기에 그는 전쟁 발발 이후 프로이센을 비난할 명분을 명백히 내세우기 어려웠을 것이다. 프로이센을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모호한 태도는 여기서 찾아야한다. 하지만 그런 역사적 맥락을 떠나서도, 르낭의 주장에는 철학적 문.. 더보기
<뉴스가 지겨운 기자> 특종보도에 지쳐버린 우리에게 보내는 글 졸업을 앞두고, 학교에서 쓰던 사물함을 비웠다. 나한테 이렇게 책이 많았었나 싶었는데, 역시나 그 책들은 내 것이 아니었다. 기자를 준비하던 친구 녀석이 나보다 먼저 자리를 비우면서 내게 맡겨둔 것이었다. 몇 권을 들춰보다 한 책이 눈에 들어왔다. . 기자가 되기도 전에 벌써 뉴스가 지겨워졌나 싶어 몇 장을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앉아서 책에 빠져들었다. 이 책은 신문에서 오랫동안 기자생활을 한 안수찬 기자의 글이다. 그는 정말로 (우리나라) 뉴스가 지겨워진 기자였다. 특종과 속보, 오로지 스트레이트(사실 기반의 짧은 기사)를 좇는 우리나라의 보도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는 책의 서두에서부터 ‘내러티브’라는 개념을 꺼내들었다. 어쩌면 그가 기자 생활을 하는 내내 매만지던 개념일지도.. 더보기
[서평] 단지 ‘한국이 싫어서’였을까 장강명의 소설 는 제목과 내용이 일치하는 소설이다. 주인공 계나는 평범한 한국여성이다. 대학 졸업 후 카드회사에서 멀쩡하게 직장 다니던 그가 돌연 호주로 이민 갈 생각을 한 이유는 ‘한국이 싫어서’다. 세 마디로 줄이면 ‘여기서는 못 살겠어서’고. 그 이유는 마치 압축파일과도 같다. 간단해 보이지만 실마리를 풀어볼 수록 그만한 사정과 계기들이 중첩돼 있다. 계나가 한국을 싫어하는 이유는 지옥과도 같은 출퇴근길이 싫어서고, 남자친구 지명과의 신분 격차가 싫어서고, 도리어 자신에게 짐이 되는 가족들이 싫어서고, 회식 때마다 서슴없이 음담패설을 일삼는 상사가 싫어서다. 이밖에도 수많은 ‘싫어서’들이 모여 계나의 이민 결심을 확고히 만든다. 계나의 논리는 간단명료하다. 한국에서 살면 희망도 없고 무엇보다 자신은.. 더보기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건 자신밖에 없다, <미움받을 용기> 근래 읽었던 자기계발서 중에서 가장 남는 게 많았던 책이다. 물론 책을 읽기 전 품었던 의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용기를 가질 때 나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바뀔 수 있다는 주장은 참 시원하다. 그러나 책에서 청년으로 나오는 인물이 말한 것처럼 어딘지 모르게 서늘한 구석도 있다. 용기가 없는 사람들에겐 달리 방법이 없다는 말처럼 들려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좌우지간 책은 청년과 철학자의 문답에 의해 전개되는 구조다. 주요 내용은 심리학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은 우리가 주류 심리학자로 생각하는 프로이트나 융이 아닌 아들러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책이 지루하지 않았다. 분명 자기계발서지만 책을 다 읽은 후엔 제3의 심리학에 대해 공부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책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 더보기
거리 둔 채 뉴스 보기, 알랭 드 보통의 <뉴스의 시대> 책을 펼치기 전에는 저자의 초점이 뉴스에 맞춰져 있을 것이라 예상했다. 그러나 이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알랭 드 보통은 뉴스의 시대에 살아가는 인간에 주목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미디어 전문가가 아닌 철학자임이 분명하다. 그는 뉴스가 어떻게 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 관심이 없는 듯하다. 그보다는 급변하는 뉴스 속에서 개인이 어떤 중요한 의미를 읽어낼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여주는 데 노력을 할애한다. 물론 그는 뉴스의 중요성에 대해 서론에서 충분히 인정한다. 그에 따르면 뉴스는 “구성원들을 가르치고 있는 가장 영향력 있는 수단”이다. 다만 뉴스를 수용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뉴스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이 알랭 드 보통이 경계하는 부분이다. 그래서 그는 “보다 자의식을 갖고 뉴스를 수용하려 .. 더보기
올 추석을 함께할 4권의 책 온 가족이 모이는 추석이다. 그러나 올해는 여러 이유로 시골로 내려가지 않기로 했다. 가족들에겐 참 미안한 일이지만 어쩔 수 없다. 25년 만에 처음으로 겪는 나 홀로 추석이다. 특별히 무언가를 계획하지 않았기 때문에 올 추석은 그저 그런 연휴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노는 것도 이젠 지겹다. 어차피 홀로 보내는 추석, 뭐라도 남겨야겠다. 그러려면 무언가 읽어야 한다. 지금 추천하려는 4권의 책은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에서 선정됐다.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이 아닌 나를 위한 책들이다. 책장에 오랜 시간 ‘새 책’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던 것들에 대한 알 수 없는 도전의식이 불현 듯 발현됐다고 하는 게 정확하겠다. 언제까지 저들을 낯설면서 낯설지 않은 존재로 내버려둘 수는 없으므로. .. 더보기
한국의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의 재발견 [서평] 지승호 더 인터뷰 15년 동안 전문 인터뷰어로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지승호가 서문에 밝히듯 그건 ‘운명’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장인정신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에겐 인터뷰를 계속해서 해야겠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전문 인터뷰어로 많은 사람들을 만나왔을 것이다. 는 지승호가 만난 7인의 이야기가 담긴 인터뷰집이다. 강준만, 강풀, 김난도 박순찬, 오지은, 이상호, 한희정과의 인터뷰가 차례로 수록돼 있다. 다른 인터뷰들과의 다른 점은 단연 압도적인 분량이다. 그만큼 많은 이야기가 오고갔다는 방증이다. 또 지승호가 7인에게 세세한 질문들을 던졌다는 걸 의미하기도 한다. 서평에 7인의 이야기를 모두 다 담을 수는 없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인터뷰이의 답변들을 뽑아보고 그 답변이 나오는 데 있어서 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