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영화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다큐멘터리의 존재방식 는 연출을 맡은 사라 폴리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그녀의 가족, 특히 어머니에 관해 얘기하지만 그건 사실상 폴리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영화 내내 폴리는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좇는다. 그 과정에서 폴리의 이야기가 은연중에, 혹은 직접 드러난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단지 가족, 어머니를 경유해 궁극적으로 폴리를 향하는 것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중요한 건 그녀가 활용한 영화라는 형식이며, 중간중간 ‘의도적으로’ 배치한 과잉적인 요소들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폴리는 기록으로서 영화(엄밀히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얘기한다. 과잉적 요소의 배치 – 인터뷰와 이야기의 어긋남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우선, 녹음 스튜디오 씬이 있다. 거기서 폴리의.. 더보기
<리바이어던> 불가항력으로서 리바이어던이란? 에 대해 얘기할 때 굳이 홉스Th. Hobbes가 인용될 필요는 없다. 달리 말해, 은 단지 국가 권력에 대한 영화가 아니다. 물론, ‘리바이어던’하면 우선 홉스가 떠오르고, 자연스레 권력을 위임받은 강력한 국가의 비유적 형상(작은 인간들로 구성된 거인)이 떠오른다. 그런데 이러한 의미나 비유로서의 리바이어던은 사실 홉스의 주석 혹은 해석이다. 무시무시한 괴물로서 리바이어던 그 본래의 형상은 성경 몇 군데(특히 )에 드러나 있다. 리바이어던의 본디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간략히만 를 살펴보자. 욥은 신을 충실히 섬기고, 죄를 짓지 않으며, 부족함 없이 살고 있었다. 그때, “욥의 신실함은 그저 그의 풍족함 때문”이라고 사탄이 도발하자, 신(하나님)은 욥을 시험하기에 이른다. 끔찍한 사건들이 연달아 발생하고.. 더보기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빔 벤더스(Wim Wenders)의 세 번째 다큐멘터리 ()은 말할 것도 없이 사진작가 세바스치앙 살가두(Sebastião Salgado)에 바치는 헌사다. 이 말은 혹시 이 영화를 ‘사진’에 대한 영화쯤으로 알고 보러 갈, 혹은 보고 온 사람들에게 던지는 화두다. 는 수많은 사진을 헤집지만, 언제나 에두른다. 말하자면 사진들은 하나의 거울이다. 그리고 거울은 앞에 있는 살가두를 비춘다. 영화는 살가두의 삶에서 무엇을, 어떻게 보여주는가. 1. 무엇 - ‘제네시스’를 향해 온 살가두의 삶 누군가는 원제엔 Genesis라는 단어가 없고, 단지 The Salt of the Earth라는 점을 근거로 ‘제네시스’를 지워야 한다는 취지의 글을 썼다. 얼마 전 끝난 동명의 사진전을 홍보하려는 게 아니냐는 의혹은 .. 더보기
<자유의 언덕> 시간과 인과의 전복적 배치란 “시간은 우리 몸이나 이 탁자 같은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 뇌가 과거, 현재, 미래란 시간의 틀을 만들어내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꼭 그런 틀을 통해 삶을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선(문소리 분)과 마주한 모리(카세 료 분)의 말이다. 그리고 은 정말로 시간에 대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의 시점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모리가 영선을 찾으러 한국에 온 이후로 영선이 모리의 편지를 보기 전까지의 시간. 이걸 ‘A시간’이라 부르기로 하자. 또한, 영선이 모리의 편지를 접한 이후의 시간. 이건 ‘B시간’이라 이름 붙여보겠다. 영화는 A시간과 B시간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그리고 A시간이 보이는 방식은, B시간에서 영선이 읽는 편지와 이어진다. .. 더보기
<해피 해피 와이너리>에 대한 두 가지 키워드 좋은 기회로 (이후 ) 시사회를 보고 왔다. 여성 감독 미시마 유키코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했고, 그의 전작이자 의 전편이라고 할만한 도 보지 못했다. 말하자면 나는 아무런 기대 없이 영화를 보러 갔던 셈이다. 직전에 (알레한드로 곤잘레즈 이냐리투, 2014)에 대한 글(‘ 알레한드로 곤잘레즈 이냐리투만의 '연극적 롱테이크'’)에서, 나는 ‘기대가 높을수록 실망할 여지가 많다’라는 경험적 확신이 보란 듯이 깨졌다고 밝혔다. 그리고 정 반대의 측면에서, 도 지금껏 축적된 경험이 결코 보편적인 진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방증해주었다. 그러니까, 를 나는 아무런 기대 없이 봤지만, 영화는 (생각지도 못했지만) 생각보다 별로였다. 하지만 실망했다는 표현은 쓰고 싶지 않다. 기대 자체가 없었으니까.(기대와 실.. 더보기
<버드맨> 알레한드로 곤잘레즈 이냐리투만의 '연극적 롱테이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기대감을 애써 누르며 영화관을 찾았다. 기대가 높아서 좋을게 없다는 걸 경험상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란 게 누른다고 눌러지는 건 아닐 터. 솔직히 말해, 기대를 잔뜩 숨긴 표정만을 겨우 남긴 채 영화를 보러 갔다. 물론, 그 아래엔 터질 듯한 기대감이 들끓고 있었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경험이 모든 걸 설명해주는 건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 근래에 보러 간 영화들을 다 합친 것 보다 더 큰 기대를 안고 갔지만, 늘 그렇듯 을 보고 기대가 꺾이긴 커녕 기대를 넘어서는 강렬한 울림을 받았다. 영화를 둘러싼 수많은 호평들이 결코 공허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했다. 영화관을 나설 때의 그 충만함을 공유하고 싶다. 에 대한 호평 중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촬영’이다... 더보기
지극히 주관적인 3월 개봉 영화 기대작 다섯 편 삼월은 새로운 시작의 달이다. 아직 학교에 다니기 때문인지 몰라도, 내게 새해의 시작은 일월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삼월이다. 그렇다. 삼월은 누가 뭐래도 개강(혹은 개학)의 달이다. 세 달여 만에 찾아간 학교는 학생들로 붐볐다. 모두 다시 돌아온, 하지만 늘 새로운 삼월을 맞이하느라 분주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바쁘다’는 이유로 삼월에 개봉할 아름다운 영화들을 놓쳐서야 되겠나. 짬이 안 나면 짬을 내서라도 영화관을 찾아가자. 원래 없어야 진정한 ‘짬’이다. 그대들이 애써 마련해 놓은 황금 같은 공강 시간은 이런 데 활용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첫 수업을 오후로 잡은 이들이라면, 브라보! 그대들의 게으름 탓이 아니라, 조조 영화를 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것을 내 알기에. 착각이라면, 죄송하다. 그렇지만 이번 .. 더보기
<킹스맨>에 대한 세 가지 키워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조악한 포스터와 가볍고 우스꽝스러운 예고편을 봤을 때만 해도 한 편의 코믹물인 줄만 알았다. 얘기다. 하지만 막상 열어본 영화는 생각보다 진지했고, 또 복잡했다. 개봉한 지 이 주도 넘은 이 시점에, 새로운 영화를 소개하는 코너에 을 올리는 까닭이다. 애초에 나는 머리 식힐 겸, 킬링타임용 정도로 를 보러 갔음을 시인해야겠다. 정신없이 싸우고, 정신없이 웃긴 영화 정도로만 알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영화를 보고 난 뒤 풀리지 않은 궁금증들이 머리를 맴돌았고, 하고 싶은 말들은 또 너무 많았다. 이 영화를 ‘아 그 영화. 얼마 전에 봤었지. 근데, 무슨 내용이더라.’ 정도로 회상한다면 굉장히 안타까울 것만 같았다. 그래서 이렇게 생각을 정리할 겸 글을 남긴다. 세 가지 키워드를 중심으.. 더보기
<나이트 크롤러> 로버트 엘스윗과 제이크 질렌할 덕분에 (나이트)의 내러티브는 명확했다. 다른 말로 하면 의 내러티브에 대한 의문이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인과관계는 뚜렷했고, 기-승-전-결의 전형적인 구조도 거의 완벽했다. 는 마치 한 편의 첩보물 같았다. 사실상 영화는 한 민간 촬영기사에 대한 내용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위에서 말한 내러티브뿐만 아니라, 영화 내내 이어지는 긴장감도 그러했다. 이에 대한 의문은 감독에 대한 정보를 찾아본 뒤 해소되었다. 댄 길로이(Dan Gilroy)는 각본가 출신이다. (숀 레비, 2011), (토니 길로이, 2012)같이 잘 알려진 영화 외에도 6편의 영화 시나리오를 쓴 경력이 있다. 그리고 는 그가 처음으로 메가폰을 잡은 영화다. 그는 이 영화에서 각본과 연출을 동시에 맡았다. 즉, 각본가 출신인 길로이는 에서 자신이.. 더보기
<인투 더 와일드> 로드 무비와 보이지 무비 사이의 삶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로드(road) 무비가 아니라 보이지(voayage) 무비로 봐달라.” 자신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로 꼽히는 (My Own Private Idaho, 1991)에 대해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는 이렇게 말했다. 로드무비란 길(road) 영화, 쉽게 말해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말하자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인물의 편력을 담은 영화가 바로 로드 무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 하나를 들자면, 청년 체게바라(아르네스토 게바라)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 (월터 살레스, 2004)가 있다. 보이지 무비는 로드 무비와 어떤 점이 다른 걸까? 보이지 무비는 ‘여행 영화’쯤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로드 무비와의 차이를 식별하기 쉽지 않다. 구스 반..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