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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삐딱하게 영화보기

<왕자가 된 소녀들> 여성성과 남성성 사이에서 여성국극이라는 것을 ‘왕자가 된 소녀들’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런데 좀 묘한 건, ‘왕자가 된 소녀들’이 담은 영상들은 여성국국의 현재 모습들이겠지만, 이는 사실상 ‘왜 여성국극은 이렇게까지 쇠퇴하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영화를 보면서 나의 위치는 좀 애매해질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보기 전, 여성국극이라는 것은 여성들로서만 이루어진 극의 형태이다, 하는 정도의 조잡한 사전 지식만을 갖추고서 플레이 버튼을 누를 때 내가 우선적으로 마련했던 것은 변명이었다. 지금까지 여성 국극이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이 미천한 교양 수준에 대해서 어떻게 변명할 수 있을까. 말하자면, 나에게 이 영화는 무엇보다 먼저 엄한 선생님이 되어야만 했다. 필사적으로 나.. 더보기
<우리가 들려줄 이야기> 다큐멘터리의 존재방식 는 연출을 맡은 사라 폴리 자신에 대한 다큐멘터리다. 영화는 그녀의 가족, 특히 어머니에 관해 얘기하지만 그건 사실상 폴리에 대한 이야기와 다르지 않다. 영화 내내 폴리는 가족과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좇는다. 그 과정에서 폴리의 이야기가 은연중에, 혹은 직접 드러난다. 하지만 이게 다는 아니다. 단지 가족, 어머니를 경유해 궁극적으로 폴리를 향하는 것이 영화의 전부가 아니라는 말이다. 중요한 건 그녀가 활용한 영화라는 형식이며, 중간중간 ‘의도적으로’ 배치한 과잉적인 요소들이다. 그런 것들을 통해, 궁극적으로 폴리는 기록으로서 영화(엄밀히는 다큐멘터리)에 대해 얘기한다. 과잉적 요소의 배치 – 인터뷰와 이야기의 어긋남 영화는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다. 우선, 녹음 스튜디오 씬이 있다. 거기서 폴리의.. 더보기
<자유의 언덕> 시간과 인과의 전복적 배치란 “시간은 우리 몸이나 이 탁자 같은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 뇌가 과거, 현재, 미래란 시간의 틀을 만들어내는 거죠. 하지만 우리가 꼭 그런 틀을 통해 삶을 경험할 필요는 없습니다.” 영선(문소리 분)과 마주한 모리(카세 료 분)의 말이다. 그리고 은 정말로 시간에 대하여,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시한다. 영화는 크게 두 부분의 시점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모리가 영선을 찾으러 한국에 온 이후로 영선이 모리의 편지를 보기 전까지의 시간. 이걸 ‘A시간’이라 부르기로 하자. 또한, 영선이 모리의 편지를 접한 이후의 시간. 이건 ‘B시간’이라 이름 붙여보겠다. 영화는 A시간과 B시간을 교차 편집해 보여준다. 그리고 A시간이 보이는 방식은, B시간에서 영선이 읽는 편지와 이어진다. .. 더보기
<인투 더 와일드> 로드 무비와 보이지 무비 사이의 삶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영화는 로드(road) 무비가 아니라 보이지(voayage) 무비로 봐달라.” 자신의 마스터피스 중 하나로 꼽히는 (My Own Private Idaho, 1991)에 대해 구스 반 산트(Gus Van Sant)는 이렇게 말했다. 로드무비란 길(road) 영화, 쉽게 말해 길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 영화다. 말하자면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는 인물의 편력을 담은 영화가 바로 로드 무비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작품 하나를 들자면, 청년 체게바라(아르네스토 게바라)의 라틴 아메리카 여행기 (월터 살레스, 2004)가 있다. 보이지 무비는 로드 무비와 어떤 점이 다른 걸까? 보이지 무비는 ‘여행 영화’쯤으로 번역되기 때문에 로드 무비와의 차이를 식별하기 쉽지 않다. 구스 반.. 더보기
<엘리펀트> 말하기 방식을 나눈 까닭은 영화는 아무런 정보 없이 봐야 제맛이다. 를 무턱대고 봤다. 처음엔 별다를 것 없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단조롭게 다룬 영화인 줄만 알았다. 하지만 후반부에 들어서 영화는 전혀 다른 것들을 보여줬다. 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그리고 둘 사이에는 넘어설 수 없는 경계가 그어져 있다. 둘 다 같은 학교를 배경으로 하고, 같은 인물들이 등장한다. 하지만 후반부에서 영화가 보이는 방식은 전반부와 전혀 다르다. 어떤 의미에서 영화의 전반부와 후반부는 아예 별개로 볼 수 있다. 그 정도로 앞뒤는 동떨어져 있다. 영화는 어떤 식으로 말하고 있는가? 전반부는 다양한 인물들의 시점을 따라가며 그네들의 일상을 담는다. 다소 지루할 정도로. 그다지 친절하지도 않다. 그네들은 모두 나름 고민거리와 갈등이 있는 것 같.. 더보기
<부에나 비스타 소셜 클럽> 쿠바와 미국 사이에서 조만간(2월 26일) 빔 벤더스의 다큐멘터리 영화 이 개봉한다. 빔 벤더스의 영화 중 내가 본 거라곤 (1987)가 전부였다. 물론 그 한 작품만으로 빔 벤더스란 이름은 내 머릿속에 강렬히 각인되었다. 하지만 그의 다큐멘터리란 좀처럼 상상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번에 를 보기 전, 선행학습의 하나로 을 봤다. 흔히 은 음악 영화로 알려졌다. 실제로 영화에선 낯선 듯 낯익은 풍의 음악들이 여러 방식으로(공연 실황, BGM 혹은 가벼운 연주/노래) 흘러넘쳤다. 그런데 영화가 오직 음악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당연히 영화는 소리뿐만 아니라 영상을 송출하는 매체다. 아무리 음악 영화라고 해도 거기서 단순히 ‘음악’에 집중하는 것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처사다. 나는 영화에서 뛰어난 음악적 재능을.. 더보기
<메콩호텔> 영화에서 음악은 무엇일 수 있는가? 영화에서 음악은 무엇인가? 음악은 영화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질문을 건네는 게 의미가 있을까. 요새 개봉한 한국영화들을 줄지어 본 관객이라면 다소 낯선 이 두 질문에 갸우뚱할지도 모르겠다. 영화에서 서사면 서사고, 배우면 배우지 뜬금없이 음악이라니. 나도 마찬가지였다. 올 1월 들어 본 (‘, 비판적으로 보기 위한 다섯 가지 팁’)과 (‘, '감독' 하정우에 대한 첫 번째 기대와 실망’)에서 음악이란 영화의 편리한 소재 정도에 불과했다. 거기서 음악은 적재적소를 가리키는 지시 도구이자 텅 빈 기호였다. 울어야 할 때, 혹은 웃어야 할 때를 은연중에 ‘강제’하고, 감정적 효과를 증폭시키는 복병이었다. BGM이라는 말 자체가 그렇듯, 음악은 시종일관 영화의 뒤에 숨어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 관객을 저.. 더보기
<우리선희> 솔직히 말해줘, 다만 내가 원하는 걸 “선희야!” 세 명의 남자가 여자를 부른다. 여자는 ‘선희’로 호명된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여자에게 여러 속성을 강제한다. 제목에서처럼 여자는 ‘우리(의) 선희’가 된다. 여기서 방점은 ‘우리’에 찍혀야 한다. 우리가 없다면 선희도 없다. 그런데, 정말 그러한가? 선희는 정말 일방적으로 호명을 당하는가? 우리는 영화에서 ‘진짜’ 선희를 고민해야 하는가? 다시, “선희야!” 세 명의 남자가 여자를 부른다. 하지만 여자는 대답하지 않는다. 그건 “선희야!”가 결코 호명이 아니기 때문이다. “선희야!”는 오히려 대답이다. 선희의 부름에 대한 반응이다. 애초에 선희(정유미 분)는 영화로 침범해 들어온다. 동현(김상중 분)은 대학의 벤치에 앉아 있었고, 문수(이선균 분)는 건널목에서 막 후배와 헤어졌으며, 재학(.. 더보기
기억의 고독, 고독의 기억 <경주> * 보기에 따라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너, 괜찮냐?” 경주행은 그렇게 비뚠 핀잔 이후였다. 7년 전의 기억이다. 그저 그런 기억들이 춘원(곽자형 분)과의 회포를 뒤로 한 경주행의 모든 까닭이었다. 그러므로 경주란 기억의 도시이다. 경주에는 그들이자 찻집이자 춘화가 있었다. 아니, 그 모든 것들이 경주 자체였다. 경주야말로 기억이었다. 경주에 간 최현(박해일 분)은 마땅히 기억을 붙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묘하게도 기억은 항상 어긋나고야 만다. 경주에서 헤집은 기억들은 어떤 사실도 말해주지 못한다. 돌다리를 가로질렀던 물은 메마르고, 여정(윤진서 분)은 진즉 애를 지웠다. 윤희(신민아 분)는 사실 7년 전에 최현들을 대했었고, 불쾌함을 굳이 숨기려 하지 않았다. 어긋나버린 기억을 마주하여 경주.. 더보기
“사는 게 숨이 차요.”, <거인>의 화법 *보기에 따라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습니다. 김태용 감독의 첫 장편 영화 은 한 마디로 요약하면, 사실상 부모가 부재한 영재(최우식 분)의 지독한 성장기다. 영화는 계속해서 영재의 비극적인 행보를 아슬아슬하게 따라다닌다. 집에서 뛰쳐나온 영재는 보호원(이삭의 집)에서도 '집으로 돌아가라'는 암묵적인 압박을 받는다. 거기서 영재는 신부가 되겠다는 가녀린 희망 하나로 아등바등 삶을 버텨낸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사리 허락되지 않는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들이 계속해서 쏟아진다. 말하자면 영재는 불쌍한 아이다. 영화 초반. 사건이 아직 시작되기도 전, 그러니까 영재가 놓인 생활환경부터 안타깝다. 사건이 진행될수록 영재는 더욱 더 불쌍해진다. 영화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영재는 연민과 동정의 대상이다. 여기까지는.. 더보기